7남매의 겨울놀이와 ‘초원의 집’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일기] 7남매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엄마의 어린 시절 겨울놀이
나는 강원도 횡성에서도 버스를 타고 30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서 자랐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은 놀거리가 풍성한 여름과는 또다른 환상적인 놀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처마 밑에 달리는 고드름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매일 먹을 수 있는 신나는 얼음과자였고, 지붕아래에 석순처럼 생긴 아주 작은 얼음산은 양발로 올라서서 미끄러져 내리는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함박눈이 올 때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네 아이들이 삽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와 눈 집을 짓기도 하고, 꽁꽁 언 논과 저수지에서는 굵은 철사를 이용하거나 고급스럽게는 망가진 스케이트날을 활용해 만든 앉은뱅이 썰매를 타는 것이 그야말로 겨울을 기다리게 만드는 놀이였다.
그리고 한겨울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시골교회에서 항상 새벽송을 불러주었다. 그러면 엄마는 준비한 사탕과 초코파이를 드리곤 하셨는데, 어린 나는 눈을 비벼가며 그 시간을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자연을 경험할 수 없는 도심 한복판에서, 눈이 오자마자 다 쓸려버리는 아파트 단지에서 어떻게 겨울에 대한 추억을 아이들이 가질 수 있게 할까? 크리스마스나 새해맞이 때에는 어린 동심을 어떻게 설레게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게 됐다.

한강공원에 새벽 눈밟으러
필자의 아이가 아직 넷이었을 때다. 솜덩이 같은 함박눈이 펑펑 온 날에는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마치 강아지 새끼들처럼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저 신기하고 예쁜 눈송이들을 그칠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아파트(겨울에는 아파트 생활)는 한강에 나가기가 수월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꽁꽁 싸매고 한강의 눈밭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막 내려온듯한 하얀 세상은 햇빛으로 인해 반짝반짝 빛이 나기까지 했다.
“와~!, 야~~! ” 탄성을 지르며 눈밭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작은 발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눈이 쌓여있었지만 손발이 시린 것을 의식할 틈이 없이 하얀세상 위에 뒹굴고 서로에게 눈을 던지며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보고만 있기엔 너무 아까운 함박눈이 올 때면 우리는 이렇게 아주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우리의 흔적을 한강의 눈밭 위에 즐겁게 남겨놓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아파트에서 새벽송이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마다 종이컵에 끼운 초에 불을 붙여 주었다. 넓지도 않은 집 안에서 집안 곳곳을 돌며 작은 소리로 함께 성탄 노래를 부르고 서로서로 성탄을 축하하는 시간을 보냈다. 별 것 아닌데도 촛불 하나에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줄을 서서 촛불 들고 집안을 돌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너무 우스꽝스러운지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도 아이들은 이 행사를 즐거워했다.
큰 딸이 열 세 살이었던 몇년 전 크리스마스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선물을 놓았다. 사실 특별한 날마다 아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챙기기는 경제적으로 부담이었다. 그래도 큰딸에겐 마지막 어린이 해 크리스마스였기에 선물을 주고 싶어 들키지 않게 어렵사리 숨겨두었다가 깜짝 선물을 했는데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놀라고 기뻐했다. 큰 딸은 “산타가 없는 줄 알았는데 진짜 있었구나”했다. 그동안 자기가 착한 일을 많이 안 해서 선물을 못 받았었던 거란다. 아, 이 나이까지 이런 동심이 있었을 줄이야. 이 날 하루 종일 아이들의 마음은 천국에 있었다.
집안에서 보물찾기 놀이도
한 겨울의 칼바람으로 집 앞 놀이터도 나가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자 아이들은 집 안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만들기도 했다. 하루는 군데군데 의자를 놓고 그것을 기둥삼아 이불을 덮어 동굴을 만들고 어떤 방에서는 카세트 테이프에서 테이프를 빼내어 의자 다리며 책상 다리, 가구 곳곳 걸만한 고리들에 마치 거미줄처럼 줄을 쳐 놓았다. 그리고는 A4용지에 ‘보물지도’를 그려 여러 조각으로 찢어 곳곳에 숨긴 후 각자 배낭을 맸다. 가위바위보로 대장을 정하고 그 대장은 문구점에서 산 후레쉬를 들고 보물 지도를 찾는 길에 앞장을 섰다.

배낭 안에는 아이들이 아껴놓은 간식거리들을 넣어주었는데 조난을 당해서 먹을 것이 초콜릿 한 조각만 남았다며 손을 벌벌 떨면서 그 한 조각을 아이들 넷이 소중하게 나누어 먹는 장면도 연출했다. 후레쉬를 들고 들어간 이불 속 동굴 안에선 마치 괴물이라도 튀어나온 듯이 나즈막한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테이프로 만든 거미줄은 닿으면 죽는 레이저라고 이름 지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조심스럽게 건너다녔다. 보물 지도 한 조각을 찾아낼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비명을 질렀는데, 정말로 탐험대가 동화속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어둠이 길어진 밤에는 작은 스텐드 불을 켜고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책을 읽었다. 긴 겨울은 아홉권이나 되는 ‘초원의 집’을 읽기에 딱 좋았다. 주인공인 로라네 집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마치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대초원에 집을 지은 것처럼 뿌듯해지고 내일이 너무 기대되어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한겨울에 로라와 엘먼조가 신나게 말이 끄는 썰매를 타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들은 ‘와~!’ 탄성을 질렀고, 모두 그 썰매를 타고 싶어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모두 눈을 감게 하고 아이들이 탄 썰매를 엄마가 아주 아슬아슬하게 모는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가 방향을 바꾸거나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몸이 휩쓸리거나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숨죽여 작은 비명을 지르며 스릴을 즐겼다.
‘초원의 집’에서 자랐던 사랑
이렇게 책을 읽고 나서도 아이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굳이 방 한 구석에 이불을 둘둘 말아 커다란 둥지를 만들었다. 둥지 밖은 바다인데 파도가 험하게 치고 있고 빠지면 죽는단다. 한 아이가 누워서 말아놓은 이불 위로 팔이나 다리를 걸치지기라도 하면 빠지면 안 된다고 끌어 댕기느라 난리였고, 바다에 빠질것같은 아이는 살려달라고 난리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하고 제발 좀 자라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다 때 아닌 야단을 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자연에서 누렸던 겨울에 대한 기억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도시에서 그 추웠던 겨울에 가족과 함께 엉겨붙어 매일같이 모험과 웃음을 만들어냈던 우리들의 기억은 생각만해도 그립고 따뜻한 추억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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