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온다니, 정말 기쁘지 않아요?”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홈스쿨 성장기 첫째아이 이야기
[김미영 전업주부] 대학 시절에 잠시 뉴질랜드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룸메이트가 8남매의 맏이였고 홈스쿨을 한다했다. 가족 신문을 만들었다며 보여주었다. 두 살 아이부터 시작해서 룸메이트까지 동생들 얼굴 사진이 마치 전깃줄에 참새들 앉아있듯 나란히 붙어있었다.
이 많은 애들이 학교를 안가고 다 집에 있다고? 나는 정말이지 이게 실화인가 싶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워낙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또 집에서 학교가 멀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룸메이트와 홈스쿨에 대한 대화는 이걸로 끝이었다. 나와 관계될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 이상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20여년간 7남매를 낳고 이제껏 홈스쿨을 하고 있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 아파트 단지에서 말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학교에 둘러싸인 곳에서 홈스쿨을 하게 될 줄이야.
길가에 있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하나 마음껏 들여다보고 그 안에 있는 생명력에 감탄할 여유가 없는 환경에서 홈스쿨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홈스쿨의 불안감: 대학은 어떡하고?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이 있는 곳으로 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홈스쿨이라는 낯선 세계가 나에게 주었던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해소시켜 주었다. 하지만 평일이면, 공교육 속에서 자랐던 나는 다시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던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 않고 잘 클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나중에 대학은 잘 갈 수 있을까’였다. 이 문제에 대해 자신도 없고 답도 없었다. 주변의 시선도 그러했다. ‘대학은 어떻게 보내려고?’, ‘공부는 어떻게 시키는데?’, ‘엄마가 다 가르쳐?’ ‘똑똑한 애를 집에만 둬서 바보 만드는 거 아니야?’ 내 속에서 나오는 비교와 남들의 시선이 초창기에는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말 그대로 학교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학교에서 할 법한 것들을 집에서 하는 것이었다. 학습지도 병행했다.
아이들이 커버린 지금에야 대학이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의 과정중 하나며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고, 또 입시가 아닌 방법으로 갈 수도 있고, 여하튼 대학이 자녀교육의 목표가 아닌 것을 알고 자유로와졌지만 홈스쿨이 생소했던 그때는 이 문제로 인한 주변의 염려가 나를 많이 불안하게 했다.
홈스쿨링에 대한 큰 딸의 반항?
더군다나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녀보지 않은 큰 딸은 내가 만든 스케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마냥 놀고만 싶을 나이긴 하지만 나의 갖은 으름장에도 전혀 요동하지 않고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놀고, 저녁 먹고 놀고, 자기 전까지 놀았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기도 했다.
내가 가르치는 수학 문제집은 밀리고 학습지도 매일같이 밀렸다. 혼나고 또 혼나도 밀리고 또 밀렸다.
열 살 때의 일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데 2학년에게 3학년보다 과자를 많이 준 문제가 나왔다. ‘왜 3학년보다 아래 학년인 2학년에게 더 주었는지’ 기분이 나쁘고 의도가 이해가 안 된다 했다. 아무 감정 없는 그냥 문제일 뿐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날은 더 이상 수학 공부를 할 수 없었다.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해보고 왜 틀렸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나한테 반문한다. 자기가 왜 이 문제를 다 알아야 하냐는 거다.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못주고 그날은 그걸로 끝났다.
아이의 학업 수준이 마치 나의 홈스쿨 성적표처럼 여겨져서 내 기준만큼 공부에 관심이 없는 큰 딸을 보고 너무 속이 답답했다.
밀린 학습지를 공부하고 있으라는 암묵적인 지시를 주고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러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열을 식히고 현관문을 열자 큰 딸이 해처럼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아주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엄마 제가 아주 큰 일을 해냈어요. 뭔지 한번 보실래요.” 나는 속으로 ‘그 많은 밀린 숙제를 이 짧은 시간에 다 해냈다는 것인가’ 의아하면서도 나름 기대했다.
그런데 뒤춤에서 감추었던 무언가를 꺼낸다. 연이란다. A4용지 가운데 동그란 구멍을 뚫고 나무젓가락을 대각선으로 댄 후 실을 묶어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동생들도 다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며 뿌듯해하더니 연이 잘 난다고 베란다로 와보라는 것이다. 실을 난간사이로 늘어뜨린다. 베란다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서 실을 당길 때마다 허우적 거리는 연을 보며 잘 난다한다. 내 눈에는 낚시 같은데, 동생들도 덩달아 아주 신이 나서 잘 난다고 박수를 쳐댄다. 이런 연을 만든 누나가 너무 훌륭하단다.
흥을 깨기가 좀 부담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큰 딸에게 ‘네가 지금 뭔가 잘못하고 있어’라는 주의를 주는 어투로 물었다. “엄마가 하라고 한 숙제는?” 딸이 대답한다. “아... 깜빡했다” “어제 엄마와 세운 계획표를 가져와 봐” 주저주저 하며 대답한다. “어디다 뒀는지... 잃어버린거 같아요.” 큰 딸은 또 혼이 났다. 아이들이 마냥 즐거웠던 그날이 나에게는 또 한숨 짓는 날이었다. 나는 말없는 침묵의 화를 내며 딸이 잘못을 생각하고 반성하기를 바랐다.
‘하루가 그날의 전부’인 딸의 행복
잠자리에 들기 전, 큰 딸이 너무 행복해하며 세상 둘도 없는 해같은 웃음으로 웃었다. 나는 딸과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렇게 혼났는데 왜 즐거운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큰 딸이 말하길, 이제 곧 자고나면 오늘의 안 좋았던 기억은 다 사라지고 또 아주 새로운 날이 온단다. 그래서 딸은 내일이 오는 자기 전 시간이 너무 좋단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것은 그날로 끝이요 내일은 또 전혀 다른 새로운 날이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 나한테 아무리 혼나도 혼내는 나만 지칠뿐 딸아이는 전혀 지치지도 주눅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렇듯 나에게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동안 딸에게 하루는 그날이 전부였다. 내가 대학을 목표로 큰 딸에게 계획표를 세워주고 학습거리를 제공하는 동안 딸은 자기에게 주어진 그 하루를 벅차고 즐겁게 지내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홈스쿨에 대해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이해되지 않는 딸을 통해서 홈스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딸 아이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홈스쿨도 점점 성장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딸을 홈스쿨로 가르친게 아니라 딸이 나에게 홈스쿨을 가르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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