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7남매 아빠’가 된 사연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반대하던 넷째 아이 유산에 낙담중 이웃이 보낸 ‘사랑의 반찬’에 남편도 감동 7남매까지 낳고...가족모두 “이웃 돌보기”

요양시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김미영씨 남매들. 사진제공= 김미영
요양시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김미영씨 남매들. 사진제공= 김미영

무뚝뚝한 남편...”아이는 둘만”

7남매를 둔 우리 부부를 보고 사람들은 말하길, “아이들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두 형제로 자란 남편은 자녀는 둘이면 됐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삼남매로 자란 나는 커보니 셋도 많지 않은데 최소한 셋은 있어야할 것 같았다. 어찌하다 셋째 아이까지 낳고 셋을 키우기까지 육아는 전부 내 몫이었다.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편은 아이와 어떻게 눈을 마주치며 사랑을 표현해야하는지를 몰랐다. 그럼에도 셋째 아들을 낳고 나서는 왠지 아들에게 남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어떻겠느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가 “터무니 없는 소리”라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러다 어떻게 된 일인지 넷째 아이가 왔다. 남편의 반응은 석연찮았지만 내심 기대했던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그런데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는게 아닌가. 심장이 뛰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10주 가까이를 기다린 것 같다.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어 계류유산(稽留流産, 유산의 한 종류)으로 수술을 했다. 넷째라 친정에도 알리지 않았고 친한 지인 몇 명만 알고 있었다.

김미영씨네 가족들. 요양시설을 방문한 후 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김미영
김미영씨네 가족들. 요양시설을 방문한 후 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김미영

유산 뒤의 ‘위로’...남편의 변신

토요일 오전에 수술을 하게 됐는데 수술 직후 남편은 일이 생겨서 외출을 하게 됐다. 하루종일 세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 밤을 맞은 나는 아픈 마음과 몸을 어떻게 가누어야할지를 몰라 밤새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내일을 살 용기를 내야할지 까마득히 앞이 보이지 않던 밤이었다.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그다음날 아침에 문자가 왔다. “집사님, 현관 문 좀 열어보세요.” 문을 열어보니 미역국이랑 각종 반찬과 과일이 한 아름 담긴 선물 보따리가 있었다. 식탁에 펼쳐 놓았지만 쏟아지는 감사의 눈물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먹기 시작했는데, 점심시간이 됐다. 다시 문자가 왔다. “집사님, 현관 문 좀 열어보세요.” 아까와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분이었다. 함께 홈스쿨을 시작한 교회 집사님들이었는데 내가 수술한다고 흘렸던 말을 기억하고는 서로 아침, 점심을 나누어 음식을 집 앞에 놓기로 약속하신 거였다. 문을 열어보니 좀전에처럼 국과 맛있는 반찬들, 그리고 또 과일이 한아름 놓여있었다. 선물을 풀어놓자마자 정말 꺼억꺼억 속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음이 터져올라왔다.

아침부터 예기치 않은 위로의 선물을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던 남편이 나즈막한 소리로 한마디를 했다. “남편이란 사람이 동네 아줌마보다도 못하네. 뭐 먹고 싶은거 있어?” 나는 눈물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치킨이랑 아이스크림”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던 아이들에게 생기가 넘쳐났다. 아이들답게 아빠를 재촉하며 “아빠, 엄마가 치킨이랑 아이스크림 먹고 싶대요. 빨리 사러가요, 네~, 빨리 사러가요”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아팠던 만큼 아이들의 마음도,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많이 아프고 상했었다는 것을 아빠 바지가랑이를 잡고 재촉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말해주었다. 이날 세 아이들과 남편까지 우리 모두는 예기치 못한 이웃의 선물로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아프기만했던 그날 깊은 어둠의 밤, 해가 다시 떠올라도 여전히 어둠의 터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그 선물은 소망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빛과 같았다.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이들은 웃음을 되찾았고 남편과 나도 멋적은 웃음으로나마 서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 일은 홈스쿨을 하는 우리 가정에 큰 교훈을 주었다. 우리 자신만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됨으로써 그 부족함을 서로 채워주고 소망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그 사랑은 다시 살 소망이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의 치유를 거쳐 남편은 넷째를 낳는 일에 동의해 주었고 몇 개월 후 우리는 넷째아이를 선물로 받았다. 딸로서는 세번째인 넷째아이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축복의 선물’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런 넷째로 인해 남편은 180도 태도가 바뀌어버렸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무릎에 앉혀 밥도 먹이면서 첫째에게 왜 이렇게 해주지 않았을까 늦은 후회를 하며 기억도 못하는 아이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가족 모두 이웃돌보기...아이들이 앞장

나는 이때부터 마음을 다치거나 몸이 힘들어서 반찬 만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으면 반찬을 만들어 내가 받았던 것과 똑같이 집현관 앞에 놓아두고 오곤 했다. 그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너희도 아픈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아라.”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의 가치라고 말하면서.

우리 가정이 홈스쿨을 하기에 아무 때나 필요한 때에 큰 아이들은 함께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작은 아이들은 잔심부름을 하며 이 모든 과정을 등 뒤에서 보고 따라배울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다 큰 아들이 장난섞인 심퉁맞은 소리로 “왜 우리는 이런 거 안 만들어줘요”라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 약이야.”

그리고 우리는 축복의 선물인 넷째가 태어난 이후 한동안 외로운 할머니들을 위로하러 다른 홈스쿨 가정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요양원을 방문했다. 아이들 중에 제일 어렸던 넷째는 그야말로 연예인 급이었다.

요양시설내 할머니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넷째. 사진제공=김미영
요양시설내 할머니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넷째. 사진제공=김미영

할머니들이 우리 넷째의 손을 한번 잡아보기 위해 여기저기서 팔을 내미셨다. 넷째는 할머니들의 넘치는 사랑과 인기에 힘입어 말을 조금씩 하게 되면서부터 무대에서 노래로 할머니들을 사로잡았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넷째가 서투른 발음으로 부를 때마다 할머니들은 기억의 언저리를 맴도는 미소를 띠시며 세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따라 부르시기도 했다. 4남매의 출동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위해 큰 아이들은 방문일 일주일 전부터 선곡한 노래에 맞는 율동을 만들고 말 안듣는 남동생을 타이르고 협박하면서 나름의 공연 준비를 열심히 했다.

할머니들의 사랑에 아이들은 넘치는 생기로 보답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꿈은, 아이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살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빛이 되는 것이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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