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똥 좋아해요?”...’엄마’라 불리는 특권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나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들 일이요, 그 치다꺼리하는 것, 엄마라고 불리는 ‘특권’임을 알게 됐다

7남매중 6명의 아이들이 셀카로 자신들을 찍은 모습. 막내는 갓 태어나 엄마랑 조리원에 있어 이 사진에는 빠져있다. 사진제공=김미영
7남매중 6명의 아이들이 셀카로 자신들을 찍은 모습. 막내는 갓 태어나 엄마랑 조리원에 있어 이 사진에는 빠져있다. 사진제공=김미영

[김미영 전업주부] “엄마, 똥 닦아주세요~~~.” 마치 자명종처럼 아침을 깨우는 소리다. 자명종은 끌 수 있지만 다섯째 아이의 이 외침이 점점 커지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너 똥 싸는 거 동네가 다 알겠다.” 아침 인사처럼 내가 다섯째에게 했던 말이다.

똥 잘 쌌다고 칭찬했더니

다섯째가 여섯 살이던 지난 해까지 혼자 배변을 처리하기 힘든 애들이 세 명이었다. 한 화장실에서 세 아이가 동시에 처리할 때도 종종 있었다. 다섯째는 어른 변기에서, 여섯째는 유아변기에서, 막내는 기저귀에 말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똥을 쌌다.

어느날 다섯째가 또 산 정상에서나 부를듯한 메아리 같은 소리로 똥 쌌다고 호출을 한다. 부리나케 달려가니 진지하게 묻는다. “엄마 똥 좋아해요?” 아주 짧은 순간 지난 육아의 고충에 대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엄마, 똥 좋아해요?” 잠시 멈칫 하는 사이, 확신에 찬 어조로 “엄마, 똥 좋아하지요?” 자신감 있게 묻는다. 똥 쌌다는 외침이 들리면 단숨에 달려가고 잘 쌌다고 칭찬하니 엄마가 똥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다섯째는 똥을 쌀 때마다 엄마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처럼 목소리에도,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 있다.

김미영씨 7남매중 6명이 모여 찍은 사진. 제공=김미영
김미영씨 7남매중 6명이 모여 찍은 사진. 제공=김미영

이 질문에 웃음과 함께 기쁨이 밀려왔다. 아마 30대 중반, 정신없이 아이 넷을 키울 때였다면 내 인생이 이게 뭔가, 매일 애들 똥만 닦다가 젊고 창창한 시절 다 보내는가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치다꺼리들에 젊은 인생 전부를 쏟는 것 같아 가끔은 우울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들 일이요, 그 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이름에 요구되는 특권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사실 내 몸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던 뒤치다꺼리다. 하루 세끼 밥을 차리고 치우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들이 벌여 놓은 일들의 치다꺼리를 하다보면 하루가 간다. 밤에도 쉴 수가 없다. 밤은 씻기는 것부터 재우기까지 또 다른 일의 연속이다. 젖먹이 아기를 밤새 돌보면서 아기가 젖을 떼고 스스로 잘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젖을 떼도 아이들은 사방으로 나를 포위하고 잔다.

넷째 아이를 낳고 고기집에서 굽는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어 처음으로 외식을 시도했다. 자리에 앉아서 먹을 준비를 하는데 둘째가 냉면을 왕창 쏟았다. 큰아이는 또 똥이 마렵단다. 고기는 타고 젖먹이는 운다. 그 후 한동안 외식을 하지 않았다. 이 때만해도 큰 아이가 어려 어딜 가나 다 데리고 다녀야했다. 볼 일보다도 아이 넷을 다 데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했다. 장을 보고 쉬기 위해 푸드코너에서 음식을 먹기라도 하면 옷과 몸에 묻히는 것은 기본이고 음료수를 테이블 뿐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까지 쏟기도 한다. 쉬는 시간이 아니라 치다꺼리가 또 생기는 시간이다.

집에서는 어떤가. 아이들이 쓰는 대부분의 그릇은 플라스틱으로 바꾸었지만 어쩌다 꺼내 쓰는 유리나 도자기 그릇은 수시로 깨진다.

‘왜 애를 많이 낳아 이 고생인가’ 눈물도

치다꺼리 중 내가 가장 힘들어 했던 일은 쏟아진 우유를 치우는 일이다. 식탁에서 바닥으로 엎질러진 우유는 그 반경이 눈에 띄지 않게 넓다. 닦아도 닦아도 비린내가 나고 미처 닦아내지 못하고 마르면 주변가구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생긴다. 그리고 이제 막 숟가락질을 배운 아이는 밥만 먹었다하면 목욕을 시켜야할 수준으로 온 몸이 엉망진창이 된다.

아기 식탁에서 음식을 다 먹었다며 칭찬을 기다리는 김미영씨의 여섯째 아이(왼쪽). 대부분 흘리면서 요란하게(^^) 음식을 먹는 일곱째 아이. 사진제공=김미영
아기 식탁에서 음식을 다 먹었다며 칭찬을 기다리는 김미영씨의 여섯째 아이(왼쪽). 대부분 흘리면서 요란하게(^^) 음식을 먹는 일곱째 아이. 사진제공=김미영

넷째가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날이었다. 당시 막내였던 넷째는 낮잠을 자야했고 나는 피곤함 때문에 몸에 피부병이 생겨서 쉼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당부하고 아기를 재우러 방에 들어갔다. 겨우 힘들게 아기가 잠 들려는 찰나 다섯살짜리 셋째가 “엄마 일어나요” 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제발 더 부르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대답이 없자 “엄마 일어나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기는 결국 잠들지 못했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기를 안고 문을 박차고 나와 장난감을 집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때 셋째의 눈망울은 단지 ‘나도 엄마가 필요해요’를 말하고 있었다. 내 사정을 이해했더라면 어른이지 아이였을까. 셋째가 기억 못하는 그 일이 나는 아직도 미안하다.

어느날, 둘째 생일에 외식을 하기 위해 남편이 퇴근한 후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편과 큰 아이들 셋은 식당근처에서 이미 만나고 있는데 집에서 나랑 같이 있던 다섯째가 그릇을 깼다. 여섯째를 업고 힘들게 치우고 나서 청소기를 정리하는 순간 이불 위에 잠시 올려놓은 큰 액자 위를 또 다섯째가 맨발로 뛰어 액자 유리가 박살이 났다. 신기하게 아이 발은 멀쩡했다. 그런데 액자가 부서지면서 이불에 흘려진 유리파편들은 어찌할까. 정말 눈물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생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자. 외식이 가당키나 한가. 순간 내가 왜 애를 많이 낳아서 사서 이 고생인가. 부주의한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일로 모두 기대에 차 있는 생일파티를 망칠 것인가. 격한 감정을 잠시 내려놓으니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내가 평안만 잃지 않으면 이 일이 자녀를 낳은 것을 후회할 만큼 큰일도 아니고 그냥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다행히 그날 아이들도 나도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엄마’라는 이 귀한 선물이 자격없는 내게 오다니

이기적인 화가 날 것 같을 때마다 나는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러면 그 몇 초 사이에 화가 가라앉고 이 일이 ‘특권’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내 인생의 가장 반짝거리며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이 크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기쁨이다. 여전히 내 손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이 있지만, 마치 행복한 꿈을 꾸었던 듯 아득한 기억이 되어버린 큰 아이들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사랑의 수고를 먹고 이제는 내 키를 훌쩍 넘어 커버린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 마치 어른 같은 아이들이 함박웃음으로 나를 엄마라고 부를 때 이 귀한 선물이 자격 없는 내게 어떻게 왔는지 감격스러울 때가 많다. 그 때 힘들었던 일들은 오늘 아이들과 함께 회상하며 웃게 만드는 추억이 됐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7남매들. 막내는 갓 태어나 조리원에 있어서 사진촬영에는 빠져있다. 사진제공=김미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7남매들. 막내는 갓 태어나 조리원에 있어서 사진촬영에는 빠져있다. 사진제공=김미영

치다꺼리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을 먹이는 수고이며 그런 수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언젠가는 또 사무치게 이 날이 그리울 줄 알기에 오늘 똥을 닦아주는 이 일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도 내가 그렇게 보인다니 참 감사하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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