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오 나와라~~ 7남매의 ‘병아리 키우기’ 소동

[김미영의 7남매 홈스쿨 일기] 병아리 4마리 육아에 빠진 아이들 이야기 “자신이 부모된 듯...도서관 가서 연구도 하고”

훌쩍 커버린 병아리들. 아파트 베란다 박스위에서 아침마다 꼬끼오를 외친다. 사진= 김미영
훌쩍 커버린 병아리들. 아파트 베란다 박스위에서 아침마다 꼬끼오를 외친다. 사진= 김미영

[김미영 전업주부] “꼬 끼오~꼬~옥”

새벽에 전기 불을 켜자 해가 떴는 줄 알았는지 닭이 운다. 베란다에 다 커버린 닭이 네 마리. 으악~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 빨리 어디론가 보내야한다.

아이들이 병아리를 부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년 전 현재 열아홉 살인 큰딸이 직접 부화기를 만들어 병아리 부화에 도전했다. 마트에서 산 유정란 다섯 알 중 두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어미닭이 없어서인지 마치 산모가 초산의 고통을 겪듯이 밤새도록 껍질을 깨고 나오느라 병아리도 아이들도 애를 먹었다. 습도와 온도를 수동으로 일일이 맞추어 주며 밤 낮 가리지 않고 전란을 해준 정성이 아이들에게 어미 닭의 마음을 갖게 한 것 같다.

그런데 한 마리가 많이 아프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병아리를 살리고자 두 딸들은 정성을 다했다. 가는 주사기에 노른자 물을 넣어 먹여주고 밤을 지새워 돌보아주곤 했다. 곧 죽을 것같던 병아리는 그렇게 2주를 살고 떠났다.

혼자 남은 닭 콜라. 콜라는 큰 딸이 지어준 이름인데 아주 우아했다. 암탉이었지만 힘차게 날아오를 정도로 커버린 닭이 알까지 낳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울기 시작하기 전에 빨리 보내야했다. 수소문 끝에 지방에 사시는 할머니가 아는 집으로 보내게 되었다. 콜라를 떠나보내는 날, 닭을 싫어했던 나조차 딸을 시집 보내는 기분이었다.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보냈으니 콜라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는 위로로 모두 눈물을 참았다.

큰 딸의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가득히 쓰다만 편지가 있다. 콜라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모이는 입 맛에 맞니?”, “다른 닭들이 텃새를 부려 힘들지는 않니?”등 안부와 당부의 편지였다.

이번에 태어난 병아리 4남매. 사진제공=김미영
이번에 태어난 병아리 4남매. 사진제공=김미영

그 뒤로 닭으로는 두 번째 부화다. 큰 딸보다 다섯 살 아래인 아들이 그 당시 큰 딸 나이만큼 되었을 때다. 1년이 넘도록 잠만 자고, 만사에 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없다면서 빈둥거리다가 갑자기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며 벌떡 일어났다. 누나들의 도움으로 부화기를 만들고 일일이 온도 습도를 조절하며 포장된 지 일주일이나 지난 메추라기를 부화시키더니 우연히 얻게 된 유정란 다섯 알을 부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솔직히 나는 한두 마리가 태어나길 바랐다. 그런데 다섯 마리가 다 태어난 것이다. 그 중 한 마리는 아파서 떠났고 네 마리가 아주 튼튼하게 자랐다.

부화를 시작할 때부터 나는 선을 그었다. 엄마는 동생 똥밖에는 못 치운다고. 아이들이 절대 걱정 말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도 아니고...

아... 애도 많은데 닭도 많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크는 거니? 병아리는 귀엽기나 하지 점점 닭이 되어 가는데 닭장도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 재활용 버리는 날이면 점점 큰 박스를 주우러 다닌다. 그런데 일 났다. 닭도 박스 안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루 몇 차례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 강아지라면 데리고 나갈텐데... 애들이 닭 발에 실을 묶어 나가잔다. 그런데 위험하다. 길바닥에 쉴 새 없이 깔릴 똥도 문제지만 우리 아파트엔 고양이가 많다.

그래서 베란다에 풀어놓고 산책을 시킨다. 아들은 바닥에 떨어진 똥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자기 자식처럼 느껴지는지 닭장 안과 밖의 똥을, 방에 냄새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치워냈다. 닭은 의욕 없던 아들을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관심 없던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으며 소규모 닭 기르기에 관한 다양한 책을 빌리고 우리 집 닭들의 진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아들은 자식 같은 닭 때문에 자기 성격의 가장 큰 단점인 부끄러움도 극복하게 된다.

사실 닭이 울 때마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한 밤 중에 아기가 울 때의 기분이다. 그러나 애들은 마치 아기가 말을 배울 때의 부모처럼, 막 울기 시작한 닭이 대견한가보다.

아침나절에 닭이 운다. 지나가던 주민이 멈칫하고 선다. 잘못 들었겠지 생각한 듯 다시 걸음을 시작한다. 두 번째 운다. 뒤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걸음을 뗀다. 세 번째 운다. 그러면 발걸음을 돌려 우리 베란다 앞으로 온다. 그 중에 어린 꼬마가 있다. 이제 우리 집에 닭이 있는 줄 안다. 아침나절, 닭이 울기도 전에 베란다 앞에 와서 닭을 부른다. ‘꼬~끼오 나~와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양계장에 닭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가 직접 밭에 놓을 수 있는 닭장을 만들겠다며 설계도 끝났고 재료도 알아봤으니 조금만 시간을 달란다. 못 미더워하는 가족에게 절실히 간청을 한다. 왜냐면 암탉이 세 마리라 알 낳는 것을 꼭 보고 싶단다. 우리는 곧 이 열네살짜리 아이가 해낸 예상치 못한 일에 감탄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홈스쿨링을 통해 7남매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 김미영씨.
홈스쿨링을 통해 7남매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 김미영씨.

첫아이 출산과 동시에 이른바 홈스쿨을 시작한지 올 해로 19년차다. 그 사이 큰 아이에게는 여섯 명의 동생들이 태어났다. 내가 계획했던 인생은 전혀 아니다. 남편은 더더구나 아니다. 넷째 출산 때부터 엄마한테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지금은 손주들 때문에 행복하시다.

다시 산다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여기에 오기까지 있었던 숱한 웃음과 눈물들은 가족이라는 견고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둥지를 만들어 주었다. 또 때로는 다른 이들도 함께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쉼터가 되어 주었다. 한 번도 풀어보지 않은 이야기들을 이제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글쓴이

김미영 전업주부

전업주부 김미영 씨는 7남매와 함께 날마다 성장하기를 힘쓰는 19년차 홈스쿨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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