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10.04 16:30
  • 수정 2023.10.05 10:56

황근: 노란색의 꽃을 피우는 무궁화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무궁화와 같은 속이지만 종은 달라
복원사업으로 멸종위기서 벗어나
자생식물이지만 학계에 늦게 알려져
자생·토종식물에 대한 넓은 이해 필요

활짝 꽃을 피운 황근의 모습(제주도)
활짝 꽃을 피운 황근의 모습(제주도)

황근은?

황근(Hibiscus hamabo Siebold & Zucc.)은 아욱과 무궁화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높이 1~2m 정도로 자라며 제주도와 남서해안의 일부 섬의 해안에서 자생하고 있다. 잎은 거꿀달걀 모양으로 두텁다. 꽃은 6~8월에 개화하고 노란색으로, 중심부는 암적색이고 꽃대는 황회색이며 별모양털이 밀생한다. 열매는 삭과로 황갈색 별모양털이 조밀하게 있으며 10~11월에 성숙한다.

무궁화와 황근의 구별

무궁화(Hibiscus syriacus L.)와는 같은 속(genus)의 식물이지만 종이 서로 다르다. 무궁화는 꽃이 분홍, 적색, 흰색과 청색으로 다양하지만 노란색으로 피지는 않는다. 황근은 오로지 노란색으로 피우는 것에서 구별된다. 그 외에도 무궁화는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작고 얇은 반면에 황근은 잎이 갈라지지 않고 거꿀달걀 모양으로 크고 두꺼운 특징이 있다. 무궁화는 중국으로부터 오래 전에 전래되어 키우는 식물인 반면에 황근은 남부 기후대의 일부 지역이기는 하지만 자생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황근의 이름 유래

황근은 한자어로 黃槿(황근)이다. 말 그대로 노란색의 무궁화라는 뜻이다. 속명 Hibiscus는 아욱 등 점액 성분이 있거나 가지가 유연한 식물을 일컫는 그리스어 ibiskos가 어원으로, 우리나라에는 없고 유럽에만 있는 약용식물인 머쉬맬로우(Althaea officinalis)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아욱과 무궁화속 식물을 일컫는다. 종을 나타내는 종소명 hamabo는 황근에 대한 일본명 하마보우(ハマポウ)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명 하마보우는 해변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浜朴)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지만 후박나무와 생김새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어원은 아직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황근의 자생지 복원과 관련 논란

몇 안되는 자생지에서 고사하는 경우 등이 있어 1998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육상식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었지만 최근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 등의 노력으로 복원사업이 성공함에 따라 2022년 말을 기준으로 멸종위기 야생생물에서 해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견해들이 제기되기도 다.

토종 무궁화속 식물은 황근이 유일하다. 샛노란 꽃잎을 가진 멸종위기종 황근은 무궁화속 식물 가운데 유일한 자생종이다. 흔히 우리가 무궁화하면 떠올리는 연분홍색 꽃잎에 안이 붉은 무궁화는 외래종이다. 관상 및 식수용으로 들어온 뒤 꽃이 오래 피고 예쁘게 보이도록 여러 차례 인공 교배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됐다. 황근은 본래 따뜻한 기후 지역에 사는 식물이라 제주와 전남 섬 지역에 널리 분포했다. - 동아일보, 2022. 8. 2.자 기사 중에서

황근의 자생지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언급되기는 했지만 주위에 분포하거나 재배하는 식물과 관련하여 중요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 주는 내용이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은 타당할까?

황근의 자생에 대한 오해

황근은 중국의 남동부 해안가와 일본의 서남부 해안가에 널리 분포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진도 등 일부 남서 해안은 황근이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우리나라에서 희귀식물일지라도 기후대가 다른 외국에서는 널리 분포하는 식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생지의 파괴로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겠지만, 한반도가 황근의 중심지가 아니라 분포의 경계 지역이기 때문에 황근이 자생지로 알려진 지역에서라도 널리 분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황근의 한반도 분포가 처음으로 알려지고 경제개발로 환경파괴가 되기 이전인 일제강점기에도 그 해안에 드물게 분포하는 식물이었다(이에 대해서는 정태현, 『조선삼림식물도설』, 조선박물연구회(1943), 507쪽 참조).

식물의 자생 여부와 역사적 인식의 차이에 관한 오해

황근은 자생하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분포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옛 문헌은 ‘槿’(근: 무궁화)의 일부로 보지 않았고 별도로 ‘黃槿’(황근)이라는 식물을 인식하지 못했다. 실학자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식물에 관하여 저술한 『본사』(1787)에는 무궁화속 식물로 ‘木槿, 무궁화’(현재의 무궁화), ‘扶桑’(부상, 현재의 하와이무궁화)과 ‘木芙蓉’(목부용, 현재의 부용)을 기록했지만, 황근에 대해서는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19세기 초반 저술된 『광재물보』와 『물명고』에도 동일하였고, 제주도에 분포하는 식물들이 수록된 1653년의 『탐라지』와 1704년의 『남환박물』에도 황근은 별도로 기록되지 않았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넓게 분포하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황근과 그 유사종에 대한 옛 기록이 꽤 보이고 있다.

한반도에 황근이 분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 제주도와 완도의 식물을 탐사하고 편찬한 『제주도 및 완도 식물조사 보고서』에 의한 것이었다. 제주도의 해안가에 분포한다고 하면서 학명과 일본명 ハマボウ(하마보우)만을 기록하였다. ‘황근’이라는 우리말 명칭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인 정태현이 1943년에 저술한 『조선삼림식물도설』이었다.

그나마 황근이라는 이름도 한자명 ‘黃槿’(황근)을 차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이름도 우리말 명칭으로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1949년에 편찬된 『우리나라 식물명감』에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아욱을 닮은 식물이라는 뜻의 ‘갯아욱’이라 하였고, 1963년에 편찬된 『한국식물명감』에서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부용을 닮은 식물이라는 뜻의 ‘갯부용’이라고 하였다.

열매가 익어 가는 황근의 모습(제주도)
열매가 익어 가는 황근의 모습(제주도)

자생식물과 토착화된 재배식물에 대한 조화로운 이해의 필요성

자생식물(native plant)은 해당 식물구계(區系)에서 본래부터 저절로 생육 또는 분포하는 식물을 뜻한다. 반면에 재래식물(heirloom plant) 또는 향토식물(indigenous plant)은 자생이 아니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도 원주민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관리에 의해 번식되는 식물과 자생식물을 모두 포함한다. 재래식물 또는 향토식물을 달리 토종식물이라고도 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사자성어는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한 농산물과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 온 쌀·보리·밀·배추·무 등은 모두 토종이 아니라고 한다면 수긍이 가능한가?

황근이라는 이름은 무궁화(槿)와는 닮았지만, 무궁화(槿)와는 다르다는 의미도 있다.한반도가 분포지의 한계선이기는 하지만 자생하는 식물로서 고유한 가치가 있다. 재배의 역사가 1000년 이상이 되었고, 우리말 이름도 1241년에 저술된 『동국이상국집』에서 발견되는 ‘무궁화’도 우리와 역사를 함께 해온 토종식물로서 가치가 있다. 복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한성에서 현저한 차이 때문에 황근은 분포지가 여전히 남부지역 일부에 한정되지만, 캐나다 등 외국의 사례에 따르면 무궁화는 한반도 전체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이다. 자생식물과 토종식물에 대한 조화로운 이해와 인식이 필요한 때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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