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6.17 14:14
  • 수정 2023.07.26 15:46

모란에 얽힌 몇 이야기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작약과 비슷하지만 '木본성'인 모란
신라 선덕여왕 설화에 향 없는 꽃으로
牡丹에서 모란으로...설측음화 현상
'목단'은 오기에서 비롯...쓸 이유없는데

모란의 꽃(경기도)
모란의 꽃(경기도)

모란은?

모란<Paeonia × suffruticosa Andrews>은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관목이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자생하는 분포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는 1500여년 경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지에서 재배하는 식물이다. 높이 2m가량 자라며, 꽃은 암수한꽃으로 4~5월에 새로 나온 가지 끝에 크고 소담스럽게 한 송이씩 핀다. 꽃색은 자주색이 보통이나 최근에는 짙은 빨강, 분홍, 노랑, 흰빛, 보라색 등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고 홑겹 외에 겹꽃도 있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꽃잎은 8개 이상이고 크기와 형태가 같지 않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2~6개로서 털이 있으며, 꽃턱(화탁)은 주머니처럼 되어 씨방을 둘러싼다.

작약과 구별

같은 속(genus)의 식물로 작약(함박꽃, P. lactiflora)이 있다. 작약과 모란은 생김새가 비슷하여 얼핏 구별이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작약은  ① 꽃이 필 때 꽃턱이 씨방을 감싸지 않고, ② 꽃봉오리 때 꽃받침이 길게 자라지 않으며, ③ 겨울에 줄기가 마르기 때문에 겨울눈이 없고, ④ 잎은 대체로 갈라지지 않고 짙은 녹색으로 윤기가 도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모란은 ① 꽃턱이 씨방을 감싸고, ② 꽃봉오리 시기에 꽃받침이 길게 자라며,  ③ 겨울에 줄기가 목본성으로 남아 겨울눈을 만들며,  ④ 잎은 대체로 갈라지면서 녹색인데도 윤기가 돌지 않는다. 무엇보다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으로, 작약은 여러해살이풀로 초본성 식물이지만 모란은 줄기가 목질로 되어 겨울을 나는 목본성 식물이라는 점이다. 하여 모란을 목작약(木芍藥)이라 부르기도 한다.

작약의 꽃(경기도)
작약의 꽃(경기도)

모란과 선덕여왕의 고사

모란과 신라의 선덕여왕 사이에 널리 알려진 옛 이야기가 있다.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 꽃의 그림과 꽃씨를 공주인 선덕여왕(덕만)에게 보였는데, 모란의 그림을 보고 꽃에 벌과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기에 꽃은 매우 아름답지만 향기는 없는 꽃이라고 예측하였다는 일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일화는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수록됐고,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도 수록되어 있다. 다만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이 공주였던 시절의 이야기로 기술되었지만, 『삼국유사』에는 왕으로 재위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기록된 점 등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란은 꽃이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꽤 짙은 향기를 내뿜는 식물이기도 하다. 당시 당나라 화풍에서는 모란이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였는데, 지금도 모란을 별칭으로 '부귀화(富貴花)'라 부르기도 한다. 벌과 나비는 그 기간을 한정하는 의미가 있어 모란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관례였는데, 당시 선덕여왕은 지레짐작으로 그림의 의미를 위와 같이 해석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은 선덕여왕 재위 기간 즈음에 모란이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었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으로 재배하던 식물이 아니어서 꽃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 어려웠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란의 꽃에 모여든 꿀벌의 모습(충남)
모란의 꽃에 모여든 꿀벌의 모습(충남)

모란인가? 목단인가?

김영랑(1903~1950)의 그 유명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에는 이름이 ‘모란’으로 표현되었다. 반면에 민간 놀이에 사용되는 화투의 6월 그림을 흔히 ‘목단’으로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같은 식물을 두고 서로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란인가? 또는 목단인가? 의문이 인터넷 곳곳에서 펼쳐져 있다.

중국에서 모란은 꽃을 즐기는 화훼식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뿌리의 껍질을 약재로 사용한 식물이기도 했다. 그 기원이 되는 후한 시대의 『신농본초경』 등에서 일찍이 牡丹(모단)으로 기록하였고 이 이름이 중국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명칭(현재 중국에서는 ‘mǔ‧dan’으로 발음)이기도 하다. 명나라 때 『본초강목』을 저술한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은 牡丹(모단)은 새싹이 붉고 수컷을 연상시킨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취지로 해설하기도 했다.

선덕여왕의 고사가 실린 『삼국사기』에서도 ‘牡丹’(모단)으로 기록되었다. 한글로 ‘모란’이라는 이름을 기록한 1510년의 『번역노걸대』, 1576년의 『신증유합』, 1613년의 『동의보감』, 1670년의 『노걸대언해』 등에서 모두 한자를 牡丹(모단)으로 기록했다. 이러한 연유로 국어학계에서는 대체로 우리말 ‘모란’은 한자어 牡丹(모단)을 발음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말로서 道場(도장)을 ‘도량’으로 읽는 것과 유사한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를 '설측음화 현상'이라고 일컫기도 한다(이러한 견해로 김민수편, 『우리말 어원사전』과 김무림의 『한국어 어원사전』 등 참조). 국립국어원이 국어기본법에 따라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는 아예 한자어 牡丹(모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丹’(단)을 ‘란’으로 발음한다고 해설해 놓고 있다.

그러면 牧丹(목단)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중국 문헌에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대개는 牡丹(모단)으로 표기되었으나, 간혹 일부 문헌에는 牧丹(목단)으로 표기한 것이 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牡’(모)와 ‘牧’(목)이 중국어 발음으로는 ‘mu’(무)로 유사했기에 기인한 '이자체'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굳이 횟수가 더 많은 ‘牧’을 사용한 이유가 마땅하지 않아 한자의 형태가 유사한 것에서 비롯한 '잘못된 기록(오기)'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의 옛 문헌에서는 『삼국유사』의 선덕여왕에 관한 고사를 비롯하여 중국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빈도로 牧丹(목단)으로 기록하고 있다. 牡丹(모란)과 牧丹(목단)이라는 명칭이 공존한 셈인데, 그 결과 현재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모란’과 ‘목단’ 모두를 함께 사용하는 말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어에서 기원하기는 했지만 우리말의 발음에 따라 오래 전부터 우리말화가 훨씬 더 깊게 진행되었고, 여러 문헌에서 한글로 표기되었던 ‘모란’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굳이 오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한자어를 그대로 발음하는 ‘목단’이라는 이름을 지금에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는 ‘모란’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다.

모란이 지고 나면

모란이 지고 나면 작약이 피고, 작약이 지고 나면 원추리와 수국이 이어 핀다. 그리고 무궁화가 피고 가을의 국화로 이어진다. 한 해는 아직 다 가지 않았다. 찬란한 봄은 모란이 지는 것과 함께 사라졌을지라도 계절은 순환하고 또 다시 봄이 오면 화려하고 풍성하며 향기롭게 모란이 필 것이다. 집 앞 화단에는 모란이 지고 난 자리에 씨앗이 영글어 가고 있다. 늦어도 선덕여왕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정원 풍경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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