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2.10.30 11:05
  • 수정 2022.12.01 12:34

'삽주'라는 이름으로 옛사람 생각을 기억하다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삽주'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삽살개의 '삽'도 같은 의미일까
'삽ᅔᆡ'에서 '삽주'까지...어떤 생각들이?

삽주의 꽃(강원도 평창)
삽주의 꽃(강원도 평창)

삽주는?

등산로에서 종종 보이는 식물인 삽주<Atractylodes ovata (Thunb.) DC.>는 국화과(Aster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 산과 들에서 자라며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한다. 높이 30~100cm가량 자란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7~10월에 흰색으로 핀다. 잔뿌리가 많아 수염처럼 보이며 9~10월에 익어 결실하고 씨앗에는 갓털이 달린다. 뿌리와 땅속줄기를 약재 또는 차로 사용하고, 어린잎을 삶아 나물 또는 묵나물로 이용한다.

삽주라는 이름을 둘러싼 의문

삽주라는 이름은 고려 말엽에 편찬된 『향약구급방』(1236년 추정)에서 ‘沙邑菜’(사읍채)라는 향명(鄕名)으로 나타나는 아주 오래된 우리말이다. 한자어로 白朮(백출) 또는 창출(蒼朮)이라고 한다. 『중국식물지』(2005년)에는 삽주(A. ovata)를 창출로, 우리나라에는 분포하지 않는 큰꽃삽주(A. macrocephala)를 백출로 하여 서로 다른 종의 식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1820년대에 저술된 『물명고』는 “朮有蒼白二種 삽쥬”(‘출’은 푸른 색과 흰 색 두종이 있고 ‘삽쥬’라고 한다)과 하여 같은 이름으로 보았고, 식물학자 정태현(1882~1971)이 중요 약재를 거래하던 대구, 평양 및 대전의 약재시장을 조사한 결과를 기록한 『조선산 야생약용식물』(1936년)에 따르면, 백출과 창출은 같은 종의 식물로 길고 오래된 뿌리를 ‘창출’로, 새로 생긴 뿌리를 백출로 부른다고 하여 중국과는 다른 인식이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우리말에 ‘삽주’ 또는 ‘삽’으로 된 단어가 많지 않아 삽주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고려사』(1451년)에 과거시험을 볼 때 시험문제가 적힌 종이를 돌돌 말아서 꽃아 놓는 작은 항아리를 뜻하는 ‘揷籌’(삽주)라는 말이 있음을 근거로 꽃 모양이 이를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하였다. 꽤나 공감을 얻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렇게 삽주의 유래를 해설하는 것이 곳곳에서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삽주를 둘러싼 민속에 대한 이해

삽주의 뿌리(경기도 분당). 촬영 후 식재함
삽주의 뿌리(경기도 분당). 촬영 후 식재함

삽주는 꽃식물(현화식물)인 국화과에 속하므로 요즘의 시각에서는 당연히 꽃을 위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삶의 상당 부분을 자연에서 나는 식물에 의존했던 옛날이 현재와 마냥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아동용 한자학습서로 편찬된 『훈몽자회』(1527년)는 ‘朮’(출)에 대해 ‘삽듀’라고 하면서 이를 ‘花品’(화품; 꽃식물)이 아닌 먹거리 식물을 뜻하는 ‘蔬菜’(소채; 나물)에 기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보여준다.

현재 문헌에 남아 있는 자료에 근거하면 삽주의 주된 용도는 백출(또는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약재로 사용하는 것과 구황식물로서 먹거리에 사용하는 것에 모여 있다. 옛 약학서인 『향약집성방』(1433년)과 『동의보감』(1613년)에는 삽주(백출 또는 창출)를 위장병 등의 약재로 사용하는 식물로 기록하였는데 그 약용 부위는 모두 뿌리이었다. 또한 구황기에 배고픔을 이기는 먹거리를 기록한 『구황보유방』(=신간 구황촬요, 1660년)에도 삽주 뿌리를 환으로 만들어 먹거나 가루를 물에 타 먹는 법을 기술하여 주된 식용 부위가 뿌리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삽주라는 이름의 유래

삽주가 기록된 현존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시대에 편찬된 『향약구급방』의 ‘沙邑菜’(사읍채)인데 언어학자들은 이를 ‘삽ᅔᆡ’(삽채=삽나물)를 이두식 차자로 표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후 1446년의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삽됴’로 기록하였고 이후 여러 약학서, 구황서적, 자전류 및 물명류 문헌에서 한글 이름이 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삽ᅔᆡ> 삽됴> 삽듀> 삽쥬> 삽주를 거쳐 현재의 ‘삽주’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한자어 揷籌(삽주)의 ‘揷’(삽)은 꽂는다는 뜻이고, ‘籌’(주)는 투호살 또는 막대기를 뜻하는 말로 두 한자가 합해져 종이를 돌돌 말아서 꽃아 놓는 작은 항아리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런데 식물이름 삽주의 어원은 ‘삽ᅔᆡ’로 이는 ‘삽’과 ‘ᅔᆡ’(채=나물)의 합성어이므로 한자어 揷籌(삽주)와는 뜻이 다르고 앞서 살폈듯이 옛사람들은 이를 꽃식물로 본 것이 아니라 뿌리를 약용 및 식용하는 식물로 보았다는 점에서도 맞지 않다. 게다가 한자어에서 유래하였다면 그 표기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런 사례도 보이지 않는다. 즉, 揷籌(삽주)는 그 어형이 비슷할 뿐이며 언어학, 민속학 및 본초학(한의학)에 따른 기록과는 맞는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삽주라는 식물이름의 어원은 ‘삽ᅔᆡ’로 ‘삽’이라는 불리우는 채소(나물)라는 뜻이다. 이때 ‘삽’이 무엇인가는 그 뜻이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 언어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토종 개의 일종인 삽살개는 옛말 ‘삽살가히’가 어원인데 이때 ‘삽’은 눈썹의 ‘섭’과 동원어로 털을 뜻한다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349쪽; 백문식, 『형태소사전』, 585쪽 등). 그리고 『훈민정음해례본』에서 나타나는 삽됴의 ‘됴’와 『훈몽자회』에 나타나는 삽듀의 ‘듀’는 옛말을 찾으면 모두 식물의 그루를 나타내는 말인데(이에 대해서는 중한번역문헌연구소, 『고어대사전(6)』, 227 쪽 468쪽 등), 이는 『향약구급방』의 ‘菜’(ᅔᆡ)와 뜻이 통한다. 이렇게 보면 삽주는 약용 및 식용하는 뿌리가 따로 이용되는데 그 뿌리 모양이 털처럼 생긴 식물(나물)이라는 뜻을 가진 셈이다.

삽주가 기록된 이러저러한 옛 문헌을 찾아 그 유래를 살피면 그 이름이 등장하여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 옛 민속의 모습이 보인다. 이 가을 삽주를 바라보면 옛 사람들의 생각을 더듬고 기억하여 본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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