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3.12 11:28
  • 수정 2023.03.13 11:06

'봄의 전령사' 개나리 이름에 대한 오해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한국 특산종이지만 中·日에도 있어
'야생 백합' 뜻하는 '나리'에서 유래
'노란꽃+나무' 뜻에서 '나무' 탈락해
'개나리로 부르면 안돼'라는 주장은 억지

활짝 핀 개나리의 모습(경기도 분당)
활짝 핀 개나리의 모습(경기도 분당)

개나리는?

개나리<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는 물푸레나무과(Ole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키작은나무)이다. 평안남도 이남 지역에서 식재하고, 한반도 특산식물로 분류되고 있다. 꽃은 3~4월에 피고 밝은 노란색이며 잎겨드랑이에 1~3개씩 달린다. 꽃받침은 4갈래로 갈라지며, 꽃부리는 깊게 4개로 갈라진다. 높이 3m 내외로 자란다. 열매는 삭과인데 달걀모양으로 편평하다. 열매의 결실율이 낮아 주로 꺾꽂이(삽목)로 번식한다.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기 때문에 곳곳에 식재되고 노란색으로 길거리를 수 놓는 모습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와 같다.

개나리의 자생에 대한 오해

개나리의 학명 중에 한국 특산종이라는 뜻의 ‘koreana’(한국의)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이라고 잘못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개나리의 자생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은 산개나리(F. saxatilis)와 만리화(F. ovata)이다. 열매를 약용할 목적으로 중국에서 도입되어 식재되고 있는 의성개나리(F. viridissima)라는 종도 있다. 식물분류학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면 유사한 종들을 개나리와 식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쉽게 식별이 어려운 비슷한 식물이 중국이나 일본에도 분포하기 때문에 개나리가 한국 특산식물이라고 하여 다른 나라에는 개나리와 비슷한 식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개나리 꽃의 특이한 생태

개나리의 단주화와 장주화(경기도 분당)
개나리의 단주화와 장주화(경기도 분당)

꽃은 꽃받침, 꽃잎, 수술과 암술이라는 4가지의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가지 기관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에 이를 갖춘꽃(complet flower)라 하고, 한 가지라도 부족하게 되면 이를 안갖춘꽃(incomplet flower)라고 한다. 보통 암수가 서로 다른 꽃으로 나누어지게 되면 한 꽃에는 수술이, 다른 꽃에는 암술이 비게 되므로 안갖춘꽃이 된다. 그런데 개나리속(Forsythia) 식물은 갖춘꽃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꽃은 수술이 길게 발달하고(이를 ‘단주화’라고 한다), 다른 한 꽃은 암술이 길게 발달하는(이를 ‘장주화’라 한다) 특이한 생태를 가지고 있다. 둘 다 열매를 맺지만 상대적으로 암술이 발달한 장주화가 열매가 더 잘 달리는 특성이 있다. 이 생태를 보고 있노라면, 암수가 확연히 구별된다는 성(sex)에 대한 관념이 일종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개나리의 민속적 이용

독특한 꽃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개나리는 단주화이든 장주화이든 열매의 결실율은 매우 낮은 편인데, 이 열매를 본초학에서는 連翹(연교)라고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連翹(연교)의 ‘翹’(교)는 새의 긴 꼬리 깃털을 뜻하므로 연교는 열매가 벌어져 조각처럼 보이는 모습이 새 꼬리의 깃털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런데 국내에는 분포하는 개나리속 식물의 결실율이 높지 않다 보니 고려말의 『향약구급방』이나 조선 초기에 편찬된 『향약집성방』과 같은 의학서에는 국내산 연교를 약재로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 초기인 세종 5년(1423년) 2월의 기록에는 대마도에서 연교를 조공한 내용이 기록되기도 하였다.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비로소 連교(연교)에 대한 우리말 이름 ‘어어리나모’가 등장하고,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약재가 아닌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즉, 이 시기에 이르러 열매의 약재화에 대한 국산화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 이름은 1715년경 저술된 『산림경제』에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개나리의 열매(서울 양재)
개나리의 열매(서울 양재)

'개나리'라는 이름의 유래

18세기 말에 이르러면 새로운 우리말 이름이 등장하는데 1798년에 저술된 『재물보』에는 연교에 대한 우리말 명칭으로 ‘나모ㄱ·(아래아)ㅣ날이’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1820년대에 저술된 『물명고』에는 ‘개나리나모’라는 이름이 기록되었다. 이것이 현재로 이어져 ‘나모’(나무)라는 표기는 사라지고 ‘개나리’라는 이름이 정착된 것이다.

그런데 원래 ‘개나리’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저술된 『향약구급방』에는 百合(백합)에 대해 이두식 차자 표기로 ‘犬伊那里’(견이나리: ‘가히나리’의 표기) 및 “犬乃里花‘(견내리화: ’가히나리곶‘의 표기)로 기록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개나리’의 옛표현으로서 약용하는 야생 백합 종류, 즉 현재의 참나리(L. lancifolium)를 일컫는 이름이었다. 이는 百合(백합)을 ‘나리’로 보고, 이와 비슷하다는 뜻에서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 형성된 이름으로 이해되고 있다.

개나리가 백합 종류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 초기를 거쳐 조선 중기의 『동의보감』과 『산림경제』에까지 이어졌다. 그 후 18세기말 『재물보』에 이르러 ‘ㅊ·(아래아)ㅁㄴ·(아래아)리’(참나리)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 현재로 이어졌다. 그리고 ‘개나리’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재물보』에서 ‘나모ㄱ·(아래아)ㅣ날이’로, 『물명고』에서 ‘개나리나모’가 되어 현재의 개나리(F. Koreana)를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는데, 이는 개나리(현재의 참나리)를 닮았는데 나무(목본성 식물)이라는 뜻이다. 즉, 현재의 개나리는 노란 꽃의 모습이 참나리를 닮았고 목본성 식물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이름인 것이다.

한편 고려시대 이후 조선 중기까지 야생하는 백합 종류를 지칭한 개나리가 참나리라는 이름으로 변하고, 어어리나모가 개나리나모로 변천하는 과정에는 과도적 형태의 명칭 사용이 있었다. 1778년에 저술된 『방언집석』에서는 현재의 목련과 식물을 일컫는 辛夷花(신이화)에 대한 우리말 명칭으로 ‘개ㄴ·(아래아)리곳’이라고 하여 야생 백합을 지칭하던 이름이 목련 종류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약재로 사용한 것과 원예용으로 식재한 민속들이 혼재되면서 이름의 통일성을 이루기 어려웠던 옛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혼선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1820년대의 『물명고』에 이르러면 辛夷(신이)는 목련 종류의 자목련(Magnolia liliiflora)을 치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우리말 이름을 ‘붓ㅅㄱㅗㅅ’(붓꽃) 또는 ‘가디ㅅㄱㅗㅅ’(가지꽃)이라고 하였는데, 붓꽃은 꽃봉오리의 모습이 붓(筆)을 연상시키는 것에서, 가지꽃은 꽃의 색깔이 가지색(자주색)이 나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혼선 과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다음의 느닷없는 주장을 하는 식물학자가 있다.

“봄의 전령사 영춘화(迎春化)로 알려진 지금 개나리의 본래 최초 한글명은 개나리가 아니다. 한자명은 신이(辛夷)이고, 한글명은 가지ㅅㄱㅗㅅ, 붓ㅅㄱㅗㅅ 또는 개나리나모이다. 일제강점기의 기록 이후로 개나리로 사용되었고,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 백합 종류를 통칭하던 전통 명칭인 나리로서의 개나리와 큰 혼란이 생기고 만 것이다. 백합(百合)을 한방 약재 및 재배종으로서 그 유용성이 큰 나리 종류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참’나리라는 명칭을 새로 만들고, 백합 종류를 지칭하는 오래된 고유 명칭 개나리는 물푸레나무과의 나무이름으로 가지고 가버린 것이다. 물푸레나무과의 개나리는 적어도 ‘가지꽃나무’ 또는 ‘가지꽃’이라고 고쳐 불러야 한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1086쪽

신이(辛夷)의 한글 이름을 ‘가지ㅅㄱㅗㅅ, 붓ㅅㄱㅗㅅ 또는 개나리나모’라고 사용했다는 문헌은 1820년대의 『물명고』를 말하는 것인데, 앞서 살펴 보았듯이 『물명고』에서 辛夷(신이)를 ‘붓ㅅㄱㅗㅅ’(붓꽃) 또는 ‘가디ㅅㄱㅗㅅ’이라고 한 것은 자목련을 치징하는 것이었고, ‘개나리나모’는 連翹(연교)에 대한 우리말 이름으로 현재의 개나리를 일컫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을 일컬었던 이름을 마구잡이 섞고서는 18세기 중엽에서부터 19세기 초반에 일어난 우리말 명칭의 변경 과정을 갑자기 일제강점기로 치환하여 이데올로기화하고서는 개나리를 개나리라고 부르면 마치 친일파라도 되는 듯이 몰아부친다.

이 말이 맞다면 현재의 참나리와 개나리라는 이름이 확립된 19세기 초엽부터는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강점이 있었던 것이 된다. 우리의 역사를 일본의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친일이 아닌가? 게다가 개나리를 ‘가지꽃’으로 불러야 한다면 그 이름은 가지색(자주색)이 나는 꽃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노란색으로 봄을 수놓는 개나리에게 조금이라도 어울리는 이름인가? 이쯤되면 학문이 아니라 막말 대잔치인 셈이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

겨울을 이겨내고 봄은 어김없이 돌아 또 찾아왔다. 벌써 남쪽에서는 개나리의 개화 소식이 들리고 수도권에서도 겨울눈이 부풀어 올라 꽃봉오리로 변하고 있다. 이제 곧 샛노란 개나리들이 길가를 수 놓을 것이다. 봄을 만끽하면서 개나리에 얽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상기해 보면 어떨까? 봄은 개나리만큼이나 화사하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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