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2.07.20 12:15
  • 수정 2022.07.20 13:32

무궁화 ①: 꽃의 정치화에 반대하며 오늘도 심는다

[조민제 변호사의 식물 이름 이야기]
한자어 無窮花서 유래된 듯하지만 '정반대'
우리말 무궁화에서 한자어 표기가 생긴 듯
"일본 군국주의 꽃"이란 주장도 잘못

강릉 방동리 소재 강릉 박씨 재실의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0호).
강릉 방동리 소재 강릉 박씨 재실의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0호).

무궁화란?

무궁화(Hibiscus syriacus L.)는 아욱과(Malv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성 식물이다. 높이 1~4m 내외이다. 햇볕과 물을 좋아하며 물 빠짐이 잘 되는 지역에서 잘 자란다. 꽃은 5장의 꽃잎이 있고 흰색, 분홍색, 푸른색 및 붉은색의 다양한 색깔이 있다. 잎겨드랑이에서 생겨난 꽃은 대체로 핀 지 하루 만에 지는데, 6월 말경부터 10월 초순까지 지속적으로 개화한다. 화훼용으로 전세계 온대 지방에서 널리 키우는 식물이다.

원산지는 흔히들 중국과 인도에 걸친 지역(China to India)으로 보고 있으나, 현재 자생하는 곳이 확인되지 않아 여전히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897년에 최치원(857~?) 선생이 초안한 「사불허북국거상표」에서 신라를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의 근화향(槿花鄕)으로 일컫었던 점에 비추어 그 이전부터 전래되어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궁화는 자생하는 곳이 확인되지 않아 원산지가 불분명하다.
무궁화는 자생하는 곳이 확인되지 않아 원산지가 불분명하다.

무궁화라는 이름의 유래

무궁화라는 이름은 흔히들 한자어 無窮花(무궁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옛 문헌을 살피면 고려 시대인 1241년에 편찬된 『동국이상국집』에 ‘無窮(花), 無宮(花)’(무궁화)로, 조선 시대로 한글이 창제되기 전인 1433년 편찬된 『향약집성방』에 ‘無窮花木’(무궁화나모)로, 조선 중기인 1715년경에 저술된 『산림경제』에 ‘舞宮花’(무궁화)로, 18세기 말에 저술된 『화암수록』에 ‘蕪藭花’(무궁화)로 다양한 한자로 표기되었던 점에 비추어 우리말 ‘무궁화’가 먼저 형성된 이후 한자의 음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우리말 무궁화에서 한자어 ‘無窮花’(무궁화)라는 한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어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무궁화는 중국의 진·한 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한자 사전류인 『이아』(爾雅)에 등장하는 ‘木槿(花)’(목근화)의 옛 발음이 무긴화(중국은 현재 ‘무진후아’라고 발음함)이었는데, 이를 우리말로 발음하는 과정에서 무긴화>무깅화>무궁화로 정착되어 형성된 이름으로 이해되고 있다. 중국어 木槿花(목근화)를 발음하는 과정에서 우리말 무궁화가 형성되었고 이를 한자 문헌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표기가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일반적 표현이 ‘無窮花’(무궁화)이었던 것이다. 한자어가 우리말을 낳고 다시 우리말이 한자어를 낳은 상당히 독특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이름인 셈이다.

한글로 된 ‘무궁화’라는 표현은 한글 창제 이후인 1517년에 편찬된 음운서인 『사성통해』, 1527년에 편찬된 아동용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 1613년에 국가가 편찬한 종합의서인 『동의보감』, 1690년에 편찬된 중국어 학습서인 『역어유해』, 1778년에 저술된 외국어 학습서인 『방언유석』, 1820년대에 저술된 물명류 사전인 『물명고』, 1909년에 사전류로 편찬된 『자전석요』 등 여러 곳에서 그 명칭이 뚜렷하게 변함없이 기록되어 왔다.

無窮花(무궁화)라는 한자어는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의 고유한 표현이다. 중국에서는 무궁화를 뜻하는 ‘槿’(근)에 대해 유학의 5대 경전 중의 하나인 『예기』(禮記)에서 “木堇榮”(순간의 영광을 뜻하는 나무)이라고 해석한 이래로 '한순간 피었다 지는' 꽃으로 이해하지만, 우리는 '피었다 지지만 또 피어 다함이 없는' 꽃으로 인식하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무궁화에 대한 정치화와 근거없는 왜곡

모 법학전문대의 교수가 2020년에 무궁화라는 이름은 팽창 또는 부종을 뜻하는 일본명 무쿠게(ムクゲ)의 번역어이고,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이식한 식물이며, 일제 군국주의 상징꽃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무궁화를 뽑아 버려야만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선동하는 내용을 담은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황당한 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책은 수백 곳에서 역사적인 자료와 사실을 곡해하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왜곡·조작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러한 책에 대해 전 광복회장 김원웅씨는 무궁화 식재가 일제의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감수사를 적었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도 맛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인사도 이 책의 자료를 꼼꼼히 살피니 허위정보에 대한 깨어난 시민의 지식이라는 취지로 추천사를 적었고, 꽤나 유명한 연극연출가도 무궁화는 한국 사회의 일본 식민 지배의 내면화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취지로 추천사를 적었다.

무궁화라는 우리말이 일본명의 번역어라는 주장은 황당하게도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외국어 번역프로그램에서 그렇게 안내한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된 책이었다. 수천만 번을 양보하여 그 책의 주장이 다 맞다고 가정해도 어떻게 꽃을 뽑는 행위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더니, 꽤나 유명한 식물도감의 공동 저자로 알려져 있고 스스로 수십년 동안 숲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했다는 사람도 필자를 향해 '왜 같은 편을 공격하냐'는 취지로 나무라기까지 하였다. 놀랍게도 정치를 둘러싼 진영론은 좌와 우, 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전형적 가짜뉴스(fake news)조차 사실로 받아들이고 꽃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왜곡도 쉽게 수용하는 현실을 만들어 놓고 있다.

다시 무궁화를 심으며

식물학의 선구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가 무궁화의 학명을 발표한 1753년에 무궁화는 이미 유럽에도 전래되어 재배했던 식물이었다. 현재는 전 세계 온대 지방에서 여름 정원수로 널리 각광받는 식물이기도 하다. 다시 무궁화를 심고 가꾸며, 세계와 우리의 전통이 그랬던 것처럼 여름날의 아침을 화사하게 장식하는 화훼식물로서 가치를 되새겨 본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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