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2.06.21 10:11
  • 수정 2022.11.29 15:23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양귀비

[조민제 변호사의 식물이야기]
양귀비는 어떻게 미인의 이름을 얻었을까

양귀비의 꽃
양귀비의 꽃

사진 속 꽃은 양귀비과(Papaveraceae)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서남아시아와 유럽남동부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약용 목적으로 도입되어 재배되는 식물이다. 봄에 싹이 나서 5~6월에 붉은색, 자주색, 분홍색 또는 흰색 등의 다양한 색깔의 꽃이 핀다. 잎과 줄기에 털이 거의 없고, 열매가 상대적으로 둥근 모양을 하는 점 등에서 원예용으로 흔히 키우는 개양귀비(P. rhoeas)와 구별된다. 양귀비의 꽃이 지고 나서 설익은 열매껍질에 상처를 내어 흘러나오는 유액(乳液)을 굳힌 것이 그 유명한 아편(鴉片)이다. 아편을 정제하면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Morphine)과 헤로인(Heroin) 등이 만들어진다.

양귀비 이름, 현종의 애첩에서 왔을까

양귀비는 중국의 당나라 현종(685~762년)의 애첩인 양귀비(楊貴妃, 719~756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종이 총애하다가 국사를 등한시하여 나라가 어지럽게 되었다고 하여 '경국지색'이라 일컫기도 하는 그 양귀비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罂粟(yīng sù)이라 불리울 뿐 예로부터 양귀비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앵속(罌粟)은 아랫쪽이 볼록하고 목이 좁고 짧은 병(罌)에 들어 있는 곡식(粟)이라는 뜻으로 약재로 사용하는 열매와 씨앗의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양귀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 세종 때 편찬된 『향약채취월령』(1431년)과 『향약집성방』(1433년)이다. 이들 문헌은 약재명을 甖子粟(앵자속)과 甖粟殼(앵속각)으로 하여 우리말을 ‘陽古米’(양고미)와 ‘羊古米’(양고미)로 표기했다. 이는 한글 창제 이전의 이두식 차자 표기인데 한자의 음을 빌어 ‘양고미’를 나타낸 것이다.

국어학자의 어원 해석에 따르면 양고미는 앵(罌: 목이 좁고 짧은 병)과 고미(菰米: 벼과 식물인 ‘줄’의 열매)가 합해진 말로 중국명 앵속과 같은 뜻의 이름이다. 17세기 말엽 이후에 편찬된 『역어유해』(1690년)와 『방언유석』(1778년)의 ‘양구비’라는 이름을 거쳐 19세기 이후에 『광재물보』(19세기초)와 『물명고』(1820년대)에서 ‘양귀비’로 변화하여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양고미에서 양구비와 양귀비로 변화한 것은 발음이 비슷하였을 뿐만 아니라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더해져 생겨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양귀비라는 명칭은 한자이지만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셈이다.

19세기말쯤 중국 광동지역에서 아편을 피고있는 중국인들.
19세기말쯤 중국 광동지역에서 아편을 피고있는 중국인들.

아편전쟁의 화근이 된 양귀비

양귀비 재배는 약용이 주된 목적이었다. 열매껍질(앵속각)과 씨앗(앵자속)을 주로 이용하다가 17세기 『동의보감』에 이르러 열매에서 추출한 진액(아편)도 약용했다. 양귀비와 아편은 설사, 해열, 소화불량, 진통 등에 두루 효능이 있어 널리 일반 가정의 상비약이었다. 『동의보감』에는 아편을 이용할 때 성질이 급하므로 많이 사용하면 안된다는 주의 문구가 있기도 했지만, 특별히 이로 인한 중독과 사회적 문제가 생겼다는 등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영국과 중국 사이의 흡연용 아편을 둘러싼 아편전쟁 이후에 우리나라에도 아편의 흡연에 따른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청나라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아편 흡연이 합법화됨으로써 국경을 통해 흡연용 아편과 흡연기구가 밀려 왔고, 조선과 대한제국의 정부는 아편연과 흡연기구의 수입, 제조, 판매를 처벌하였지만, 당시 혼란한 정국으로 인해 엄격한 법 집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편의 흡연은 늘어갔다.

게다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는 형식적으로는 1912년의 『조선형사령』을 통해 아편의 흡연을 금지하였으나, 1910년대 말에 재원 마련을 위해 조선을 아편과 모르핀의 생산을 위한 기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때 의약용 모르핀 제조를 독점하기 위해 조선에 설립된 '대정제약' 주식회사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 판로가 막힌 의약용 모르핀을 식민지 조선에서 유통했다. 아편 흡연과 더불어 주사기를 통한 모르핀 투여 행위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고 중독은 온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아편 흡연과 모르핀 주사를 통한 중독을 해결하는 것은 국가·사회적 차원의 시대적 과제로 인식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7년에 『마약법』이 제정되었는데, 앵속(양귀비), 아편 및 그로부터 추출되는 모든 알칼로이드 성분을 마약으로 지정하고 그 생산과 제조 등을 금지함으로써 양귀비의 재배 자체가 불법화되었다. 이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정부가 양귀비 재배를 강력히 단속함으로써 중독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약사범 2000명, 양귀비는 유죄인가

이제 양귀비와 아편으로 인한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을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 마약류범죄 백서』에 따르면 마약사범은 2010년도 중반경까지 한해에 700여명 정도 수준이었으나, 이후 계속 증가해 2020년도에는 2,1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또한 그 “마약사범의 대부분은 농촌, 산간 및 도서지역 등의 고령층 주민들이 관상용, 가정상비약 및 가축의 질병 치료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양귀비를 밀경작한 것을 단속한 결과”였다. 현대 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 놓았으나, 뼈와 근육 등의 신체 기관이 노쇠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자 농촌 등에서 그에 대한 치료 방법을 옛 전통과 민속에 의존하게 되었고 양귀비 재배가 다시 늘어난 것이다.

앞서 살폈듯이 아편과 그 합성물의 중독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아편을 흡연하거나 정제물인 모르핀을 주사기로 투여해 발생하는 중독이 주된 것이었다. 양귀비 재배와 그 단속 과정에서 중독 현상이 보고되거나 통계적으로 확인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양귀비 재배가 합법화된 다른 나라로부터 씨앗 등이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단속을 통해 재배를 근절하는 것이 쉽지도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단속은 몇십년 째 다람쥐 쳇바퀴처럼 계속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아편 흡연과 모르핀 투여 등이 아니라 양귀비와 아편을 약용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치명적 중독이 발생하는지 제대로 연구하고, 제한과 규제의 범위를 어디에서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재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거부할 수 없는 양귀비의 유혹은 근육노동에 의존하여 평생을 살았던 고령층을 한해에 2,000여명씩 전과자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우리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언제까지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 것인가?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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