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5.12 12:00
  • 수정 2023.05.13 11:53

금낭화: 비단으로 만든 듯, 며느리를 닮은 꽃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예쁜 사람 얼굴이 나란히 있는 모습
중국에 없어...우리가 만든 한자어 이름
사랑스런 며느리 빗댄 '며느리주머니'로도
불교 폄하한다는 엉뚱한 오해 사기도

금낭화의 꽃(경기도)
금낭화의 꽃(경기도)

금낭화는?

금낭화<Dicentra spectabilis (L.) Lem.>는 양귀비과(Papaver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중부 지방의 산지 계곡 근처 등에서 자생한다. 오래 전부터 원예화 되어 화단에서 키우는 식물이기도 하다. 꽃은 4~5월에 피고 분홍빛 또는 붉은빛이 나지만 안쪽꽃잎이 흰색이어서 꽃의 아래쪽은 흰색이 강하다. '총상꽃차례(짧은 꽃자루를 가진 꽃들이 꽃대에 모여 달려 있는 꽃차례; 總狀~)'로 꽃줄기의 한쪽에 지우쳐 꽃이 주렁주렁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2개로 빨리 떨어지며, 꽃잎은 4개가 모여 편평한 삼각형을 이룬다. 꽃의 수술은 6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높이 40~50cm 가량 자란다.

금낭화에 관한 민속

최근 국립수목원에서 금낭화에 대한 민속적 이용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거의 전 지역에서 여전히 어린순이나 잎을 먹거리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말려 묵나물을 만들거나 잎을 전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이 그것이다. 가난한 시절의 농경문화가 낳은 옛 풍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금낭화는 꽃이 아름다워 오래전부터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초기의 문신이었던 성현(成俔, 1439~1504)의 개인 문집인 『허백당집』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紅白茶蘼交發其下又有錦囊花盛開(홍백의 장미가 섞여 피더니 그 아래에 또 금낭화가 활짝 피다)

玉顔紅頰兩爭嬌    옥같은 얼굴 붉은 뺨이 고운 자태 다투는데

卯酒初酣暈半消    술에 취한 불그레한 기운 절반은 사라졌네

欲識春衣香動處    어디에서 봄옷의 향기 나오는지 알고자 하니

錦囊斜帶繫纖腰    가는 허리에 금낭화가 비스듬히 조롱조롱 달려 있네

美人新試素羅裳    미인이 비단 치마 처음으로 입어본 듯

冒雨淋漓半濕粧    비를 맞아 화장이 반쯤 젖은 모습인 듯

恰似明妃初出塞    왕소군이 흉노로 처음 길을 나서던 때에

龍鍾雙袖淚千行    남루한 소매에 줄지어 눈물 짓는 것 같구나

금낭화는 4개의 꽃잎이 서로 색깔을 달리하면서 피어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성현의 위 시는 관상용으로 키울 때 금낭화의 꽃이 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여 노래하고 있다.

금낭화 꽃의 구조
금낭화 꽃의 구조

금낭화라는 이름의 유래

금낭화라는 이름은 한자어 錦囊花(금낭화)가 어원이며, 말 그대로 풀이하면 비단 주머니 모양의 꽃이라는 뜻이다. 즉, 꽃의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국은 이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한자로 이해된다. 錦囊花(금낭화)는 15세기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허백당집』과 프랑스 선교사의 조선어 교육을 위해 1880년에 편찬된 『한불자전』에서 그 이름이 확인된다. 한편 실학자 유희(柳僖, 1773~1837)가 1820년대에 저술한 『물명고』에는 중국명 ‘荷包牡丹’(하포모단)과 더불어 우리말 ‘녜계꽃’(기생을 닮은 꽃이라는 뜻)이라는 이름도 기록되었으나 현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중국에서는 荷包牡丹(hé‧bāo mǔdān)이라 하는데, 꽃이 작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차고 다니던 주머니인 荷包(hé‧bāo)를 닮았고 새싹과 잎이 모란(牡丹)을 닮았다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ケマンソウ(華鬘草)라고 부르는데, 불전을 장식하는 꽃다발인 華鬘(화만)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華鬘(화만)은 불교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이를 금낭화를 일컫는 식물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일본에만 있는 문화이다. 학명 중 속명 Dicentra는 고대 그리스어 dis(2)와 centron(꽃뿔, 거)의 합성어로, 2개의 바깥꽃잎에 뿔모양의 거가 있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종소명 spectabilis는 '장관의, 아름다운, 명료한'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꽃의 모양을 빗댄 것이다.

한편 식물학에 근거하여 우리 식물이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는 ‘금낭화’라는 이름과 더불어 ‘며누리주머니’라는 이름을 함께 기재했는데, 아름다운 꽃의 모양을 며느리의 얼굴과 주머니가 연상된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최근 국립수목원에서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을 조사한 바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며누리주머니(며느리주머니)와 유사한 형태의 ‘며느리꽃’, ‘며느리치’, ‘며늘치’, ‘며느리취’, ‘매늘취’, ‘며눌치’, ‘며느리밥풀떼기’, ‘며느리싹’, ‘며늘취’ 등의 이름이 확인되는데, 아름다운 꽃의 모양을 며느리의 얼굴에 비유하고 먹거리로 사용한 풍습에 근거하여 먹은 나물을 뜻하는 ‘취’ 또는 그는 유사한 말로서 ‘치’와 ‘싹’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상한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불교 폄하 이름은 또 있다. 며느리주머니가 그것이다. 며느리주머니의 일본 이름은 게만소(華鬘草)이다. 화만(華鬘, 게만)이란 절에서 쓰는 장엄구(莊嚴具)의 하나로, 부처님 앞에 바치는 화환의 일종이다. 원래는 생화로 만들었으나 후예 금속으로 만들게 되었다. 불전을 장식하는 불구(佛具)에서 온 이름인데 며느리주머니라고 부르는 통에 원뜻과는 의미가 상당히 멀어졌다. 요즘은 금낭화錦囊花라고 부르지만 여전히 장엄한 불구의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윤옥의 『창씨개명된 우리풀꽃』, 인물과 사상사, 144쪽 중에서

이 주장의 요지는 일본명 ケマンソウ(華鬘草)가 불교에서 사용하는 도구에서 유래했으므로 우리의 방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며누리주머니’(며느리주머니)는 불교를 폄하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며느리라는 우리말을 폄하어로 보는 것도 당혹스럽지만, 우리 식물이름이 일제강점기로 인해 창씨개명되었다고 보고 이를 바로 잡자는 주장을 하면서, 실제 내용은 일본명을 제대로 살려 부르자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우리의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없이 식물이름에 친일과 반일이라는 정치 논리를 함부로 대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금낭화의 새싹(경기도)
금낭화의 새싹(경기도)

사라져가는 이름의 중요성

금낭화는 꽃의 아름다움에서 유래하였고 비록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불리워진 이름이어서 계속해서 보편성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며느리주머니는 꽃의 아름다움을 친숙한 며느리에 빗대어 부른 우리말로서 멋스러움이 있다. 먹거리로 사용한 풍습에 따라 형성되고 불리워졌던 ‘며늘취’ 또는 ‘며느리취’ 같은 우리말 이름도 우리의 토대가 된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 이러한 이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도 식물을 둘러싼 우리 문화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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