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7.27 10:59
  • 수정 2023.07.29 19:03

뫼제비꽃 : ‘뫼제비꽃’을 둘러싼 소동과 교훈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높은 산에 자라는 제비꽃이란 뜻
울릉도에 '크게 자라는 제비꽃' 발견
이에 갖가지 비학술적 작명 소동일어

뫼제비꽃(소백산)
뫼제비꽃(소백산)

보라색 예쁜 뫼제비꽃

뫼제비꽃(Viola selkirkii Pursh ex Goldie)은 제비꽃과(Viol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의 높은 산의 숲속에서 자라는 고산성 식물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반구 온대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개화기 때 높이 6㎝내외로 자란다. 꽃은 4~5월에 연한 보라색으로 핀다. 대개는 잎자루, 잎에 짧은 털이 있으나 옆꽃잎에 털이 없다. 잎몸은 원형에 가까운 난상 심장형이며, 꽃 뒤쪽의 거(꽃뿔)는 원통형으로 크다는 특징이 있다.

꽃의 이름, '뫼오랑캐'에서 개칭 

최초의 한글 이름(국명)은 조선인에 의해 한반도 분포 식물의 조선명을 찾고자 했던 1937년의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된 ‘뫼오랑캐’이었다. 이후 1949년의 『조선식물명집』에서 ‘뫼제비꽃’으로 개칭한 이래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뫼제비꽃은 (높은) 산에서 자라는 제비꽃 종류라는 뜻이며, 제비꽃은 당시 민간에서 널리 사용하던 이름을 채록한 것으로 꽃의 모양이 날쌘 제비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속명 Viola는 최초로 일컫은 제비꽃의 꽃색이 보라색인 것에 유래했고, 종소명 selkrikii는 사람 이름 Selkrik에서 유래하였으나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울릉도분포 뫼제비꽃의 첫번째 소동

울릉도 분포 뫼제비꽃(울릉도 성인봉)
울릉도 분포 뫼제비꽃(울릉도 성인봉)

울릉도에는 뫼제비꽃과 매우 유사하지만, 보다 크게 자라고(개화기 기준으로 10~15㎝내외), 꽃색이 보다 진한 일군의 제비꽃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찍이 1919년에 발표된 『울릉도식물조사보고서』를 비롯하여 1922년 출간된 『조선식물명휘』등을 통해 확인되었고, 이들 문헌은 모두 뫼제비꽃(V. selkirkii)으로 분류하였다. 해방 이후의 여러 식물 연구자들도 울릉도에서 표본을 채집하고 이를 뫼제비꽃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이에 대해서는 국립수목원에서 관리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뫼제비꽃에 대한 표본정보 참조).

그런데 2012년 한 아마추어 식물애호가가 초보자용 제비꽃 도감을 출판하면서 울릉도에 분포하는 뫼제비꽃으로 분류된 식물의 국명을 ‘독도제비꽃’으로 붙이고, 새로이 발견된 미기록종으로 기재한 바 있었다(이에 대해서는 박승천, 『한국의 제비꽃』, 함께 가는길, 52쪽 참조).

특정 식물이 식물학에 따라 새로운 종으로서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식물종의 명명에 관해 국제식물학회(Intenational Botanical Congress)에서 제정한 국제식물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Nomenclature for algae, fungi, and plants, “ICN”)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라틴어 학명이 기재되어야 하고, 종의 특징에 대한 기재문이 유효한 출판을 통해 라틴어(또는 영어)로 발표되어야 하며, 표본이 접근 가능한 장소에 보관되어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소위 ‘독도제비꽃’이라는 것은 그러한 형식과 내용이 없이 그저 한글로 된 국명과 형태에 대한 간단한 기술이 있는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유효한 출판(validly published)에 해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국제식물명명규약(ICN)에 따르면 유효한 출판을 통해 정확한 규칙을 준수한 것이 아닌 경우 이를 부적법명(또는 비합법명, illegimated name)이라고 하는데,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부적법할 뿐만 아니라, 아예 라틴 학명의 기재 자체가 없었다는 점에서 식물명(name)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호한 것이었다.

울릉도 분포 뫼제비꽃의 두번째 소동

2012년 가을경 식물 전문가에 의해 울릉도에 분포하고 뫼제비꽃(V. selkirkii)으로 분류되던 식물 개체의 일부에 대해 새로운 신종으로 분류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신종의 학명을 Viola ulleungdoensis M.Kim & J.Lee으로 하고 국명을 ‘울릉제비꽃’으로 한 것이었다(이정심 외, 「제비꽃속(제비꽃과)의 신종: 울릉제비꽃」, 한국식물분류학회지 제42권 3호, 202쪽 이하). 울릉도에 분포하는 뫼제비꽃으로 분류되던 식물을 해발 600m을 기준으로 저지대에 자라는 개체들로서, 부정아(不定芽)가 없고, 개화 후 잎이 커지며, 식물체가 상대적으로 큰 점을 특징으로 하여 이를 ‘울릉제비꽃’(V. ulleungdoensis)이라고 한 것이었다.

신종 울릉제비꽃을 발표한 논문은 학문적 규칙에 적합한 학명을 부여하였고 표본을 보관하여 이를 공개하는 등 국제식물명명규약(ICN)에 준수한 것이었지만, 학문적 권위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의심과 논란을 키워낸 꼴이 되고 말았다. 울릉도 내에서 해발 600m를 기준으로 저지대와 고지대에 분포한 개체들의 형태가 별반 다르지 않고, 부정아가 없거나 개화기 잎이 커지는 형태는 다른 지역의 뫼제비꽃에서도 흔히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논문에서 새로운 종이라 한 것은 식물체가 다소 크다는 점 밖에는 없어 이를 기준으로 신종 분류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었고, 해당 논문은 신종 분류의 근거로서 유전자 조사에 따른 분자생물학적인 결과를 언급하고서도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전문가의 논문이 맞는지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독도제비꽃’을 발표한 아마추어 식물애호가에 의해 위 논문이 “남의 연구성과를 도용했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져, 식물학에서 국제식물명명규약(ICN)을 준수하지 않는 것도 연구성과가 되는 황당한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새로운 연구성과, 또 다른 소동 그리고 교훈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제비꽃에 대한 다른 전문적인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게 이르렀다(고아름 및 유기억, 「Comparative genomics of Viola selkirkii and V. ulleungdoensis(Violaceae)」, 한국식물분류학회지 제53권 1호, 38쪽 이하 참조).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 분포하는 뫼제비꽃(V. selkirkii)과 이와 유사한 울릉도 분포 개체들의 유전자를 조사하여 같은 종인지 여부를 살펴본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①‘울릉제비꽃’을 발표한 논문에서 형태적 특징으로 열거된 대부분이 실제 관찰 결과 구별 형질로서 유효하지 못하고, ②울릉도에 분포하는 뫼제비꽃(V. selkirkii)과 울릉제비꽃(V. ulleungdoensis)으로 주장된 개체들은 단일한 분류군으로 이해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③다른 지역에 분포하는 뫼제비꽃(V. selkirkii)과 이와 유사한 것으로 울릉도에 분포하는 개체(V. selkirkii V. ulleungdoensis 포함) 사이에는 분자계통학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다른 지역에 분포하는 뫼제비꽃과 울릉도에 분포하는 유사의 제비꽃 종류가 다른 종인지, 아니면 생태적 변이에 불과한지 대해서는 결론이 도출되지 못하였고,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과제는 뫼제비꽃(V. selkirkii)이 북반구 온대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특히 중국, 북미 및 일본에서 높이 10cm 이상이 되는 뫼제비꽃(V. selkirkii)이 있다는 점이 보고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까지 함께 고찰이 필요한 학문적 영역이기도 하다(이에 대해서는 영문판 중국식물지 및 북미식물지 그리고 Jisaburo Ohwi, 『FLORA OF JAPAN』, Smithsonian institution, 638쪽 참조).

그런데 ‘독도제비꽃’이라는 국명을 임의적으로 만들었던 아마추어 식물애호가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일제의 소행인지, 일제 앞잡이의 소행인지”를 운운하며, 식물분류에 비합법명이라는 용어는 영어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잘못된 단어라면서 전 세계 식물학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세계식물명명규약(ICN)의 내용조차 부정하면서 또 다른 소동을 벌이고 있다.

과학의 영역에서 일제를 운운하는 것은 명백히 학문을 정치화한 주장이다. 이를 통해 개인적 명예나 이익이 생길지는 몰라도, 우리 모두가 자연을 보다 정확하고 풍부하게 이해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렇게 학문을 정치화하는 소동이 발생한 원인에는 전문가의 연구가 학문적 방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것에 있기도 하다. 소위 ‘전라도 천년사’의 문제를 둘러싸고 학문을 정치화하여 공적인 과제를 무산시키는 행위는 비단 인문학 영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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