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로 칼럼 듣기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Peter Ware Higgs, 1929-2024)가 지난 4월 8일 월요일 에든버러의 자택에서 혈액에 관련된 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4세. 힉스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론적 도구를 개발해서 입자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힉스는 에든버러 대학의 명예교수였고, 왕립학회 및 에든버러 왕립학회의 펠로우이자 영국물리학회(IoP) 명예회원이었으며, 컴패니언 오브 아너(Companions of Honour) 서훈을 받는 등 생전에 영국
▶ 유튜브로 칼럼 듣기 다시는 실연을 볼 수 없다는 절망저는 선생님의 쇼팽 폴로네즈 음반(DG)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1976년에 세상에 선을 보인 뒤로 선생님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동시에 지금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녹음 음반이죠. 명징하고 강력하며 기교적으로 완벽하다는 이유로 찬사를 보내는 이도 있고, 냉정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저는 두 의견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지극히 선생님다운 연주라는 사실 말입
▶ 유튜브로 칼럼 듣기 일본을 슬픔에 잠기게 한 부고최근에 토리야마 아키라(鳥山 明)의 부고 뉴스를 접하고는 잠시 멍했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죽음이라니. 그의 나이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을 만큼 내게 그는 늘 젊은 감각을 가진 작가로 기억되어 왔다. 나는 올해로 40년 차가 된 셀 애니메이션 혹은 2D 애니메이션(흔히 만화영화라 부르는) 감독이다. 이런 내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의 만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언제나 첫 손가락에 토리야마 아키라를 꼽는다.지금이야 많은 자료들이 넘쳐나서
▶ 유튜브로 칼럼 듣기 베켄바우어에 대한 추억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이직으로 부산에 잠시 터를 잡았다. 내 학기 말 통지표에 적힌 유일한 칭찬이 “서울말을 잘함”이라 할 정도로 부산은 내게 너무 낯선 곳이었다. 천성이 내성적이어서 몇 달이 지나도 친구도 잘 못 사귈 즈음, 우리 반 친구 중에 빵집을 하는 아이가 나를 가게로 데리고 갔다. 그 빵집이 우리 집과 가까워서 가끔 놀러 가면 친구 아버지가 크림빵을 주셨다. 그날도 솔직히 빵을 먹고 싶어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유리창 너머 흑백 TV로 축구 중계가 있는 걸 보게 되었
종우의 부음을 듣고 며칠째 마음이 심란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무기력해졌다. 가까운 동료들조차 잘 모르지만 종우와 나는 깊은 인연이 있다. 학교는 달랐지만 우리는 우이동에서 함께 자랐다. 친구의 친구였다가 친구가 되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주말에 산에서 더 많이 만났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매주 우연히 북한산 백운산장에서 만나서 세상과 자연에 대해 얘기했다.종우는 대우경제연구소 주식 전략 담당이었고, 나는 계열사인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직원으로 출근 길에 자주 만났다. 때로는 카풀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도 비슷해졌다.
학전(學田)김민기님은 지난 2015년 한겨레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학전은 한자로 ‘배울 학’에 ‘밭 전’자다. 학전 처음 열 때 내가 한 말이 있다. 여기는 조그만 곳이기 때문에 논바닥 농사가 아니다,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거라고.”무명의 김광석이 1천회 공연을 했다는 곳. 설경구,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지금 충무로의 내노라하는 배우들이 연기 기틀을 다진 곳이라 스스로 말하던 곳. 그밖에 이곳을 거쳐간 많은 문화예술인들. 한국 소극장 문
세계 차산업의 '거인' 타계지난 7월20일 스리랑카 홍차회사 딜마(Dilmah)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메릴 페르난도(Merrill J Fernando)가 9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딜마는 유럽을 위시한 서양 국가들이 압도하는 홍차 산업에서 아시아 회사로는 나름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스리랑카 홍차 회사다.홍차는 거의 대부분이 인도, 케냐, 중국, 스리랑카, 터키 등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차 브랜드는 거의 다 영국(포트넘앤메이슨, 해러즈, 트와이닝 등), 프랑스(마리아주 프레르 등),
자신의 미모조차도 경계하는 삭발의 날카로운 감수성, 분노하는 듯하다 이내 서글퍼져버리는 깊고 아름다운 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전쟁, 부당한 권위와 천박함에 저항하는 전사, 시네이드 오코너. 2023년 7월 26일 슬픈 채로 이 별을 떠났다.시네이드 오코너본명 Sinéad Marie Bernadette O'Connor1966년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1987년 데뷔, 2014년까지 총 10장의 앨범 발매1990년 2집의 Nothing Compares 2 U' 빅히트진짜 적과 싸우자1992년 시네이드는 가톨릭계의 아동 성추행 사
탱크를 연상시키는 작가대학 시절에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담배를 피우려고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텅 빈 대학 교정에서 몇몇 군인들이 축구공을 찾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무심코 담뱃재를 허공에 털었더니, 곁에 있는 여자가 “재털이가 굉장히 크네”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 여자는 나보다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벨기에 출신 수녀님이었다.그때 휴교령으로 대학 문은 닫혔고 대학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 탱크가 버티고 있었다. 대충 사십 년 전쯤의 풍경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서울 시내에서 탱크를 보았던 기억이
며칠 전 작고하신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은 조선 후기 상공업사 부문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뒷받침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그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1978년에 출간된 사론집 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기 시대의 역사학이 사관(史觀)과 방법론 양면에서 지향해야 할 바는 ‘분단 극복’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제강점기 ‘관변(官邊) 역사학’은 식민지 통치권력의 한민족에 대한 강권적 지배와 수탈을 역사적으로 합리화·정당화
실험의 중요성 강조...'실험적 실재론' 제창한 달 전인 지난 5월 10일, 저명한 과학철학자인 이언 해킹(Ian Hacking)이 87세의 나이로 캐나다 토론토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그는 단지 과학철학에만 국한된 이는 아니었다. 다양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 걸친 활동으로 주목받은 전형적인 유형의 연구자였다.그는 1965년에 출판된 ‘통계 추론의 논리’로 그가 속한 집단 내에서는 이미 알려진 학자였지만, 그를 국
사카모토 류이치는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3살 때부터 피아노를, 10살부터 작곡을 배웠습니다. 도쿄예술대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1978년 라는 곡으로 솔로 데뷔를 한 뒤 같은 해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했으나, 1983년에 해산합니다. 그 해에 본인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 로 영국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수상했고 1987년 로 아카데미상 작곡상,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그래미상 영화·TV 음악상 등을 수상합니다. 1999년 제작한 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술자리에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선생님 소식을 들었습니다. 출판사 관계자들도 아주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부고를 들었습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오에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방한하셨을 때 한두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동그란 안경과 단아하고 자그마하신 모습이 인상에 남습니다.삶과 문학은 떨어져있지 않다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에히메현(愛媛県)에 태어나 열 살에 일본의 패전을 맞았
나는 좀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실수도 많이 하고,길눈도 어둡고잘 넘어지고좀 똑똑하지 못 해요.적고 보니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이 말은 배우 윤정희씨가 2010년 KBS 인터뷰(감성다큐, 2010년 4월 17일 방영)에서 했던 말입니다. 지난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배우 윤정희씨가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지막에 '진짜 죽음'을 연기한 배우 한 시대를 대표했던 배우의 죽음은 어쩐지 현실 같지 않습니다. 수없는 삶을 살고 죽지만, 진짜 죽음은 한 번뿐이라는 걸 상기합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나
조세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저는 2022년 12월 26일, 하루 늦게 접했습니다.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올해 80세로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하필 인천역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올봄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지병이 악화한 게 선생님의 사인이었습니다. 목적지를 지나치는 바람에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러다가 인천역에서 만석동 일대까지 걷던 지난해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공장지대의 굴뚝이 눈에 들어왔고 을 책장이 닳도록 읽던 옛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습니다.북성포구가
한국전쟁이 터지던 해 태어나서 젊은 시절을 온갖 고생으로 점철한 인생. 그 후반기에 각고의 도전 끝에 보람있는 성취를 이뤘을 때 기쁨은 어떨까. "수능 시험때 받았던 샤프와 컴퓨터 사인펜을 달라는 손녀에게 왜 필요할까 궁금했는데, 그걸 학교에 가져가서 '우리 할머니, 수능 보셨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해요. 그 샤프, 컴퓨터 사인펜으로 공부하면 공부가 잘될 거 같다고 함께 좋아해주었어요."성취란 72살의 나이에 받아든 '대학교 합격증'이다. 대학교 입학이 뭐라고, 거기 나와도 일자리 잡기 어려운 시대다. 하지만 전말다 씨에겐 공
매해 3월 초 우리 동아리는 항상 바빴다. 호기심으로 문을 두드리든 작심하고 찾아오든 동아리방을 찾는 신입생들이 드글거렸고 그들에게 술과 밥 사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입생 환영 공연을 연중행사로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후배를 맞았던 1989년 3월도 다르지 않았다. 노래 연습하고 멘트 준비하고 대본 준비팀은 날밤을 몇 번이나 까면서 공연을 만들어 갔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순서가 슬라이드였다.2022년에 이르러 ‘슬라이드’를 논하매 어언 박물관 품목에서나 찾을 듯한 물건이 돼 버렸지만 당시로서는 관객
알랑 들롱 연상시킨 용모나는 그의 부음을 직접 받지 못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에서 그의 죽음을 짐작했고, 이를 계기로 다른 경로를 통해 그가 죽었음을 확인했다. 그와 나는 제법 인연이 깊은 사이였으나, 수 년 전에 무슨 모임에서 딱 한번 만난 것을 제외하면 30년 이상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 상태로 지냈다.나는 그를 1984년에 처음 만났다. 우리는 똑같이 광주 출신이지만 출신 고등학교와 대학이 달라서 그 이전에는 조우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와 그를 이어준 사람은 내가 가장 존경하던 친구이자 그의 고등학교 동
조순 부총리의 부음을 듣는 순간 책장을 향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그 분의 저서 『J.M. 케인즈(비봉출판사 1982년}』을 펼쳤다. 그 분이 쓰신 수 많은 저서 가운데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다. 일부 언론의 부고 기사에도 고인을 '한국의 케인즈'라고 소개했다. 고인에게서 배운 후학들은 그 분께서 얼마나 케인즈를 추앙하고 닮으려고 했는지 잘 안다. 학문적 업적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서도 케인즈의 행적을 좇아가보려고 노력하셨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관직을 맡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도 "훌륭한 경제학자라면 경세가로서도 성공
김지하 선생이 돌아가셨다. 편찮으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소문으로 돌았지만, 선생은 끈질기게 죽음과의 줄다리기를 이어 나가셨다. 선생의 병을 걱정하시던 사모님, 즉 토지문학관의 김영주 관장님이 2019년에 먼저 돌아가셔서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생전에 부부의 정이 무척 애틋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 해 10월에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와 함께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까지 부부가 함께 오셨었다.선생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이는 1980년 감옥에서 나오시면서 민족문학 대신 생명사상을 들고 나왔다. 그이의 생명 사상은 죽음에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