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한요한 애니메이션 감독
  • 오비추어리
  • 입력 2024.03.24 19:03
  • 수정 2024.04.01 08:33

애니메이션 감독이 추억하는 '거장' 토리야마 아키라

[토리야마 아키라를 추모하며]
탄탄한 데생력에 잘 계산된 디자인감각
작품마다 예술적 독창성과 상품성 갖춰
'드래곤 볼', '닥터 슬럼프' 등 위대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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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슬픔에 잠기게 한 부고

최근에 토리야마 아키라(鳥山 明)의 부고 뉴스를 접하고는 잠시 멍했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죽음이라니. 그의 나이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을 만큼 내게 그는 늘 젊은 감각을 가진 작가로 기억되어 왔다. 나는 올해로 40년 차가 된 셀 애니메이션 혹은 2D 애니메이션(흔히 만화영화라 부르는) 감독이다. 이런 내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의 만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언제나 첫 손가락에 토리야마 아키라를 꼽는다.

지금이야 많은 자료들이 넘쳐나서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내가 처음 시작하던 1980년대 초는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 미국과 일본에서 간헐적으로 수입되던 애니메이션과 만화 관련 서적들이 유일한 참고 서적들이었는데, 특히나 일본의 출판 만화들이 국내 출판 만화나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본 만화캐릭터 드래래곤볼과 원작자인 토리야마 아키라(오른쪽). 지난 3월 1일 향년 68세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가 추모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일본 만화캐릭터 드래래곤볼과 원작자인 토리야마 아키라(오른쪽). 지난 3월 1일 향년 68세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가 추모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일본 출판만화는 어떻게 발전했나

1980년대 초를 되돌아보면, 국내는 물론 일본 역시도 1970년대까지의 옛 스타일 화풍과 펜(Pen) 터치, 연출에서 새로운 스타일로의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한 발 뒤쫓아가던 국내 만화 관련 아티스트들에게도 일본의 그런 변화는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이케가미 료이치, 오토모 카츠히로, 하라 테츠오 등의 작품은 만화를 그리던 모든 젊은 세대들에게 깊은 각인을 남겼다. 그런 당시의 내게 각별히 다가왔던 것은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래곤 볼>의 작가로 더 많이 기억하겠지만 내게는 <닥터 슬럼프>의 작가로 더 깊게 남아있다.

<드래곤 볼>의 초기 내용과 함께 토리야마의 초기 그림 스타일은 액션 삽화체 보다는 명랑 만화체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후지코 후지오, 우스이 요시토 같은 완전 명랑 만화체도 아니었다.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런 스타일을 반만화체, 혹은 반삽화체라고 통상적으로 부른다. 그런 중에서도 토리야마의 그림 스타일은 당시에 매우 신선하고 독보적이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귀여운 만화체의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삽화체 캐릭터와 맞먹는 데생력(力)을 갖고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 디자인적인 감각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만화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이 담긴 스타일리시한 그림 스타일을 갖고 있었으나, 스타일리시한 그림이 모두 디자인적인 그림인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토리야마 아키라의 화풍을 표현한다면, 탄탄한 데생력에 꼼꼼히 계산된 디자인 감각의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1980년대의 일본 출판만화계는 사업적으로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물론 일본 출판만화 시장의 규모가 크고, 그 파생 시장이라 할 재패니메이션(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편집자주)의 시장도 큰 상황이었지만, 일본 출판만화 회사들은 미국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시장처럼 좀 더 확장된 시장을 갖고 싶어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외한 파생상품이라 하면 팬시 사업 정도가 고작이던 시절이다. 만화 관련 회사들은 단순히 팬시 사업을 넘어서 좀 더 확장된 캐릭터 사업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팬시 캐릭터라면 고양이 ‘헬로 키티’일텐데, 키티는 만화가 원작인 캐릭터가 아니고 팬시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키티는 다양한 감정 표현의 제약 때문에 한계를 갖고있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만화가 원작인 캐릭터의 다양한 사업화가 매력적인 이유다.

만화가 원작인 캐릭터로서 비교적 성공한 캐릭터라면 ‘도라에몽’과 ‘크레용 신짱’ 정도가 떠오른다. 작가의 개성이 담긴 스타일리시한 캐릭터를 상품화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다. 그 캐릭터를 디자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이현세 등 유명 작가의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을 몇 차례 했었지만, 결과물에서 원작의 그 고유한 멋이 제대로 재현되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의 경우에도 시대에 따라 여러 번 디자인의 변화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만화 캐릭터를 원작의 멋을 훼손시키지 않고 시대 상황에 맞춰서 디자인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토리야마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특별했나

나 역시도 디자인적인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던 그 시절에 만났던 토리야마의 작품은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이었다. 도라에몽류의 만화체보다는 좀 더 정교한 그림체이면서도 고유한 디자인으로서의 완성도마저 갖춘 캐릭터는 예술적 독창성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상품성으로도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메카닉한 소품들의 디자인 또한 인물들의 스타일과 완벽한 일치를 이루고 있어서, 딱히 별도의 디자인화 작업이 없더라도 그대로 사용 가능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드레곤볼 표지.
드레곤볼 표지.

귀여움과 역동성, 세련됨과 정교함이 잘 조화된 그림 스타일. 그것이 내가 처음 토리야마의 만화책을 펼쳐들면서 느꼈던 생각이고 놀라움이었다. 이후  <드래곤 볼>의 연재가 계속되고 스토리가 확장되어 나가면서 그의 그림 스타일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곡선적이고 아기자기하던 펜 터치들은 액션이 많아지면서 좀 더 직선적이고 직관적인 펜 터치로 변화를 주며 자신이 또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잘 보여주었다.

이후 출판 만화의 원고 제작 방식이 펜과 종이를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에서 태블릿을 이용한 디지털 드로잉 방식으로 바뀌게 되면서, 토리야마 화풍에 대한 팬들의 애정은 조금씩 식어간 모양이다. 역시 토리야마의 그림은 종이 위에 먹과 펜을 이용해서 정교하고 다양한 펜 터치로 완성되었을 때가 가장 맛깔스럽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선 시대의 변화가 아쉬울 때도 있다. 이건 비단 토리야마의 경우 만이 아니고 지난 시절 아날로그 시대의 거장들 모두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과 생애를 다룬 동영상

젊은 시절 가장 큰 영향을 준 만화가

사실 1980년 대 중반의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와서 많은 고민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영화 감독의 길을 가기 위해서 현재 일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일을 정리하고 충무로로 들어갈까, 아니면 좀 더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대학으로 진로를 향할까 모색을 하던 시간. 그러던 차에 만난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들은 내게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과 애정을 다시 갖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토리야마 아키라와 함께 했던 나의 젊은 시간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오랜 시간 고단한 삶의 시간에 쫓기며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리던 시절, 그 젊은 시절 품었던 꿈도 이제는 희미해진 이 시점에 느닷없이 찾아온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부고 소식에 내 뒤통수는 여전히 얼얼한 느낌이다.

※ 한요한은 2D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디즈니, 넷플릭스 등 주로 OEM 작업에 참여하고 있으나, 가끔씩은 국내 작품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84 수퍼 태권V>,<떠돌이 까치>,<마루치 아라치>,<비둘기 합창>,<달려라 하니>,<내 친구 우비소년 2>등에 스탭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