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생일’에 만나는 ‘반지의 제왕’ 촬영지

[김형진의 걸쭉한 뉴질랜드 이야기] 북섬·남섬으로 이뤄진 뉴질랜드 곳곳에 온천과 아름다운 빙하계곡 프로도가 ‘절대 반지’ 내던졌던 산 지구 지켜야할 의무 상기시키는 자연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f) 빙하. 코로나 시절 록다운으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찍었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f) 빙하. 코로나 시절 록다운으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찍었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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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화산섬, 차가운 빙하섬

북섬과 남섬 두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페리를 타고 불과 3시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농담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나라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두 섬에 사는 주민들은 약간은 다른 성향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곳에 들어와 살기 훨씬 이전, 이 땅이 만들어지던 과정에서 생겨난 지형적인 특징에도 역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북섬(The North Island)은 대체로 화산 활동으로 인한 융기로 형성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지도를 보시면 북섬 한가운데에 마치 총알이라도 맞은 것처럼 뻥 뚫려 있는 것을 보실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The Great Lake라고도 불리는 타우포 호수(Lake Taupo)입니다. 서울시 전체의 면적보다는 조금 크고 싱가포르보다는 조금 작은, 수만 년 동안의 화산 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인데,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강인 와이카토 강(Waikato River)의 수원지이기도 합니다. 호수의 북쪽 가장자리 한편에 후카 폭포(Huka Falls)라는 멋진 폭포가 하나 있는데, 위에서 아래로 물을 떨어뜨리는 일반적인 폭포와는 달리, 거대한 호수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옆으로 물을 쏟아내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이 폭포를 통해 1초에 수천 리터(ℓ) 씩 쏟아져 나오는 물이 앞서 말씀드렸던 와이카토강을 따라 뉴질랜드와 호주 사이에 있는 바다, 타즈만 해(Tasman Sea)로 흘러갑니다.

타우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온천으로 유명한 로토루아(Rotorua)가 있습니다. Roto는 호수라는 뜻이고 Rua는 2개라는 뜻이니, 주변에 호수가 2개 있어야 마땅할 텐데, 막상 가보면 큰 호수만 해도 대여섯 개가 있습니다. 이름을 왜 이리 인색하게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타우포와 더불어 북섬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서부터 온천 특유의 유황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서 온천욕을 해보니 그 시설이나 수질은 우리나라의 그것에 많이 못 미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한 곳

로토루아 부근에 와이망구 화산계곡(Waimangu Volcanic Valley)라는 관광지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한 화재로 계곡의 나무들이 홀라당 다 타버려 모두 잿더미가 되었는데,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덕분에 다시 울창한 숲으로 재건되었습니다. 그 숲속의 계곡을 따라 펄펄 끓는 온천수가 흐르기도 하고, 심지어 아직도 용암이 부글거리는 연못과 간헐적으로 뜨거운 스팀을 뿜어내는 바위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이곳에서 트레킹을 하고 유람선 투어도 했는데, 결코 싸지 않은 입장료와 그곳에 가는 길에 과속하다 떼었던 70불짜리 딱지가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통가리로 산(Mt. Tongariro) 정상의 붉은 분화구. 사진으로는 그 웅장함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사진= 김형진 칼럼니스트
통가리로 산(Mt. Tongariro) 정상의 붉은 분화구. 사진으로는 그 웅장함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사진= 김형진 칼럼니스트

타우포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통가리로 국립공원’(Tongariro National Park)이 나옵니다. 이 지역이야말로 뉴질랜드 북섬 화산지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북섬의 최고봉이며 ‘폭발하는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루아페후 산(Mt. Ruapehu, 2797m), 영화에서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던져버린 ‘달궈진 돌’ 나우루호에 산(Mt. Ngauruhoe), 그리고 세계 10대 트레킹 코스가 있는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 통가리로 산(Mt. Tongariro) 등 3개의 ‘신성한’ 화산을 중심으로 구성된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입니다.

이 중 통가리로는 아직도 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바위들과 눈부신 에메랄드 빛 호수를 지나 지금은 잠시 그 활동을 쉬고 있지만 바라보는 이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거대한 붉은 분화구(Red Crater)가 만들어 내는, 말 그대로 입이 쩍 벌어지는 장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곳(Tongariro Alpine Crossing)입니다. 이 세 개의 화산 모두 고대부터 마오리들에게 매우 성스러운 지역으로 여겨져 왔으며, 여러 개의 트레킹 코스가 지나가는 통가리로나, 만년설을 바라보며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루아페후와는 달리 나우루호에는 특별히 더 신성한 곳으로 지정되어 입산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제일 앞에 붉은 분화구가 있는 통가리로 산(Mt. Tongariro), 그 뒤에 차례로 나우루호에 산(Mt. Ngauruhoe), 루아페후 산(Mt. Ruapehu)이 보인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제일 앞에 붉은 분화구가 있는 통가리로 산(Mt. Tongariro), 그 뒤에 차례로 나우루호에 산(Mt. Ngauruhoe), 루아페후 산(Mt. Ruapehu)이 보인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빙하가 빚어낸 환상

화산지형으로 이루어진 북섬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남섬(The South Island)은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지형이 많습니다. 남섬의 남서쪽 해안을 보면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마치 톱날처럼 들쭉날쭉하게 생긴 피요르(Fiord) 지형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는데, 이곳의 이름이 아예 피요르랜드(Fiordland)입니다. 이 피요르랜드야말로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 낸 예술작품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수만 년에 걸쳐 빙하가 깎아낸 계곡을 빼곡히 채운 태고의 원시림 사이로 옥색의 바닷물이 채워져 있고, 그 잔잔한 바닷물로 만들어진 맑은 거울에 수만 년 동안 쌓여있는 만년설의 산봉우리가 비치는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 중심에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있습니다. 자연보호 등을 이유로 입장하는 등반객의 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초여름부터 늦가을 사이의 성수기에 밀포드 사운드에서 3박4일 코스의 트레킹을 하려면 1년 전에 예약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도 이곳에 꼭 가보고 싶지만, 코를 심하게 고는 제가 산장에 묵을 때 다른 등반객들에게 민폐가 될까봐 아직 못 가본 채 망설이는 중입니다.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f) 빙하. 코로나시절 록다운으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찍었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f) 빙하. 코로나시절 록다운으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찍었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f) 빙하. 코로나 시절 록다운으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찍었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f) 빙하. 코로나 시절 록다운으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찍었다. 사진=김형진 칼럼니스트

밀포드 사운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마치 우리나라의 태백산맥처럼 남섬의 서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산맥이 나옵니다. 해발 3724미터(m)로 뉴질랜드의 최고봉인 쿡 산(Mt. Cook)을 비롯해서, 8개의 3000미터가 넘는 아름다운 산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어 남반구의 알프스 즉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라 불리는 곳입니다. 이 웅장한 산맥의 동쪽 면을 따라가다 보면, 수만 년에 걸쳐 빙하가 깎아내린 계곡에 역시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호수들이 줄을 지어 있습니다. 여성적이고 우아한 에메랄드빛의 테카포 호수(Lake Tekapo), 그리고 남성적이고 웅장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와나카 호수(Lake Wanaka)도 너무너무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그중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뉴질랜드 관광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여왕의 마을’ 퀸스타운(Queenstown)에 있는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입니다. 눈 감고 아무 데나 카메라를 대고 셔터를 눌러도 그림엽서가 나온다는 바로 그곳입니다.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다는 전설 속의 거인이 잠들어 있는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서던 알프스의 남쪽 자락이 만들어 내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경관을 눈에 담으면서, 세계 최초의 번지점프인 카와라우 다리 번지(Kawarau Bridge Bungy)를 비롯해 제트보트, 스키, 골프 등 여러 가지 액티비티를 즐기기 위해 사시사철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상주인구가 불과 3만 명뿐인, 이름 대로 작은 마을인 퀸스타운의 평균 집값과 생활비는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를 넘어 뉴질랜드 최고 수준입니다.

이 호수들의 반대편, 그러니까 서던 알프스 산맥의 서쪽 면 한가운데에 프란츠 조셉 폭스 빙하지대(Franz Josef-Fox Glacier)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 자리 잡은 빙하지대로, 소철과 야자수가 우거진 열대우림(Rain Forest) 바로 옆에 수만 년 동안 얼어붙어 있는 빙하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주 특이한 지역입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하필이면 도착하자마자 코로나로 인한 록다운(lockdown)이 시행되는 바람에 모든 투어가 일체 취소 혹은 금지되어 먼발치에서만 빙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그곳에 가서 수만 년 동안 얼어붙어 있는 강을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데, 최근 그 지역의 강수량이 점점 줄고 있고 평균기온은 올라가고 있는 바람에 빙하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기념하는 포스터.
4월 22일 ‘지구의 날’을 기념하는 포스터.

오늘은 ‘지구의 날’, 우린 할수 있습니다

쓰다 보니 뉴질랜드 관광안내서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만,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와이망구 화산계곡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자연은 스스로 파괴한 것들을 다시 되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자연의 복원력도 그 자연의 일부인 인간들이 만들어 낸 파괴와 훼손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워 보입니다. 지구가 수만 년 동안 얼려왔던 빙하가 불과 100여 년간 인간이 뿜어낸 이산화탄소로 인해 녹아내리고 있으며, 우리의 부질없는 욕망 탓에 열대우림이 사라져 우리가 숨 쉴 공기마저 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4월 22일은 ‘지구의 생일’이라고도 불리는 ‘지구의 날’입니다. 이 지구의 생일 파티는 한 사람의 대학생에 의해 1969년에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현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200여 나라의 5만 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거대한 캠페인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땅과 물과 공기를 망가뜨릴 수도 있고 다시 되살릴 수도 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 런던의 공기보다는 2020년대 북경의 공기가 더 깨끗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김형진 뉴질랜드 칼럼니스트

글을 쓰는 김형진 님은 이렇게 본인을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 운전 하고 있는 꼰대심 투철한 대한의 '아재'입니다. 제가 이 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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