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2.12.04 19:00
  • 수정 2022.12.05 10:29

들국화 '개미취'를 아시나요?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들국화는 없어...국화 닮았다는 꽃들뿐
쑥부쟁이, 구절초, 산국 등이 '들국화'
훤칠한 키 뽐내는 '개미취'도 그중 하나

개미취의 꽃과 전초(강원도)
개미취의 꽃과 전초(강원도)

개미취는?

개미취 <Aster tataricus L.f.> 는 국화과(Aster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의 높은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계곡 주변이나 풀밭에서 잘 자란다. 일본, 중국의 동북부, 몽골 및 시베리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높이 1~1.5m가량에 이르도록 높게 자란다. 꽃은 7~10월에 보라색(또는 하늘색)으로 핀다. 씨앗으로도 번식하지만 땅속줄기가 있어 옆으로 뻗으면서 마디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들국화라는 식물은 없다 

가을녘에 산이나 들판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 중에 잎이나 꽃의 모양이 재배하는 국화(Chrysanthemum morifolium)를 닮은 식물이 보이면 사람들은 흔히들 ‘들국화’라 부른다. 들국화는 유명한 록밴드의 이름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러나 정작 들국화라는 식물은 없다. 쑥부쟁이(A. yomena), 산국(Dendranthema boreale), 구절초(D. naktongensis)라는 종의 식물은 있을지라도 말이다. 들국화는 구체적 식물종의 명칭이 아니라, 가을에 국화처럼 보이는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라는 식물이라는 뜻의 일반명사이다. 가을에 산지 풀밭에서 피는 국화를 닮은 식물 중에 개미취는 독특하다. 쑥부쟁이를 닮아 늦여름 가을 사이에 보라색을 꽃을 피우면서도 훤칠한 키로 다른 유사한 종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땅속줄기를 통한 무성 번식을 함께 하기 때문에 무리지어 자라는 특성이 있기도 하다.

개미취의 뿌리의 모양
개미취의 뿌리의 모양

사라져가는 개미취를 둘러싼 민속들

개미취는 고려시대부터 이미 약재로 기록된 이름난 식물이었다. 1236년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향약구급방』은 그 생약명을 ‘紫菀’(자완)이라 하고, 우리말을 ‘扡加 乙’(ㅌ·ㅣ 갈)로 하여 2~3월에 뿌리를 채취하여 말려 약재로 사용하는 식물로 기록했다. 그 이후 1433년에 편찬된 『향약집성방』과 1613년에 편찬된 『동의보감』에서도 유사하게 기록된 약용식물이었다.

더불어 개미취의 어린잎과 뿌리를 포함한 땅속줄기는 중요한 식재료이기도 하였다. 1820년대 저술된 『물명고』에는 紫菀(자완)의 별칭으로 ‘仙菜’(선채)라는 이름이 있고, “仙菜 連根葉浸醋藏者”(선채는 뿌리와 잎을 함께 식초에 넣어 담근 것을 말한다)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즉, 개미취의 뿌리와 잎을 함께 장아찌를 만들어 식용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신선의 음식으로 보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일제강 점기인 1942년에 저술된 『조선산야생식용식물』에는 개미취를 산과 들에서 야생할 뿐만 아니라 정원에서 재배하는 식물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립수목원이 조사한 민속자료(『한국의 민속식물』, 1123쪽)에 의하면 일부 지방에서 여전히 개미취의 어린잎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땅속줄기를 식용하는 풍속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개미취라는 이름의 유래

개미취라는 우리말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저술된 『조선산야생약용식물』에서 조선인 식물학자가 강원도 영월에서 사용하는 방언을 채록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땅속줄기와 뿌리를 식용하는 풍속이 사라지면서 이름의 유래에 대한 갖가지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현재의 민속조사에서도 개미취 또는 그것이 변형된 개미추, 개미초 및 깨미초 등은 각 지방에서 널리 사용하는 말로 확인되고, 개미의 옛 말에서 비롯된 개암추 등이 방언에서 확인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개미취라는 이름은 약용 및 식용하던 뿌리를 말리거나 장아찌로 만든 모습이 곤충 개미(蟻)를 닮았고 나물(취)로 식용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원에 식재된 개미취. 사진=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영수 회원
정원에 식재된 개미취. 사진=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영수 회원

한편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려시대에 편찬된 『향약구급방』에는 ‘扡加乙’(ㅌ·ㅣ갈)이라는 이두식 차자로 표기된 우리말 이름이 있었고, 17세기 초엽 편찬된 『동의보감』에는 한글로 우리말 이름을 ‘ㅌ·ㅣㅇ알’이라고 기록했으며, 19세기 초엽 편찬된 『물명고』에도 우리말 이름을 ‘ㅌ·ㅣㅇ알’이라 하였다. 이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일부 문헌에서 여전히 발견되지만 식물분류학이 도입될 때 식물명으로 채택되지 않았고, 최근의 방언 조사에서도 어느 지역에서도 사용하지 않은 이름으로 확인되고 있다. 아마도 본초학과 관련하여 어느 시기에 사용된 이름이었으나 문헌으로만 전승되었을 뿐 현실에서는 사라진 이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탱알’이야말로 아름다운 고유 이름이기에 되살려야 한다며 식물분류명명규약에서 정한 '선취권 규정'에 따라서 지금이라도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식물학자의 주장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개미취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우리의 고유 이름이 아닌지도 의문스럽지만, 소위 세계식물명명규약(ICN)에 따른 선취권의 적용 대상은 학문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명 (scientific name)에만 해당될 뿐 각 고유한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국명(common name)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타당성이 없는 주장이다. 만일 우리말 이름에도 선취권을 적용해야 한다면 아마도 『향약구급방』의 이두식 차자 표기인 ‘扡加乙’이 될 것인데 우리말의 표현을 한글 창제 이전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 되어 전혀 이치에도 닿지 않은 주장이기도 하다.

민속의 계승을 위하여

개미취는 흔히 들국화라고 불리우는 식물 중에서는 훤칠한 키에 땅속줄기로 번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정원의 뒤편 또는 한켠에 심어 놓으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을을 수놓을 수 있다.

옛 민속에서는 먹거리를 위해 정원에 식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그 풍속이 사라져가고 있을지라도 아름다운 눈요기를 위해 정원식물로 가꾸어 보면 어떨까? 정원에서 가을을 풍요롭게 할 개미취의 모습을 통해 오랫 동안 선조들이 이 식물을 가까이 했던 그 민속과 이름을 한번쯤 기억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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