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1.25 17:32
  • 수정 2023.01.26 15:46

신나무 : 산에서 나무와 인사하는 즐거움에 대해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맛이 시다(酸)'에서 신나무 이름 따왔을까
싣나무→신나무... 그렇다면 '싣'은 무슨 뜻?

신나무의 꽃(경기도 운길산)
신나무의 꽃(경기도 운길산)

신나무는?

신나무<Acer tataricum subsp. ginnala Wesm.>는 단풍나무과(Acer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 소교목이다. 전국의 산지에 자라며 중국와 일본에도 분포한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타원형으로 흔히 세 갈래로 갈라지며, 가을에 잎은 짙은 붉은색의 단풍이 든다. 꽃은 암수한꽃과 수꽃이 함께 달리는 잡성그루로 5월에 황백색으로 핀다. 열매는 시과(翅果)로 날개는 거의 평행한 모양이다.

신나무의 유래에 관한 주장에 대한 의문

“한글명 신나무는 본래 우리나라 단풍나무 종류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한자 丹楓(단풍)을 알고부터 순우리말 싣나모는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한글명 싣나무는 식초 맛이 시다(酸)라고 할 때 어간 ‘시(싣)’와 나무의 합성어다. 즉 ‘맛이 신 나무’란 의미다. 뿌리의 백색 껍질을 등창(背腫)에 약으로 썼으니, 그 맛을 모를 리 없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자연과생태(2013), 708 쪽

이 내용은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지식백과에서 무료로 검색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주장은 얼마만큼의 타당성이 있을까?

신나무의 민속적 이용에 대한 옛 기록에 대한 검토

조선 초기인 1527년에 편찬된 『훈몽자회』에는 “楓 싣나모 풍 俗稱茶條樹 又呼色 木”(楓은 ‘싣나모’ 풍인데 달리 다조수라고도 하고 색목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하면서 이를 樹木(수목)으로 보았고, 조선 중기에 편찬된 『역어유해』에도 마찬가지로 樹木(수목)으로 분류하여 “茶條樹 신나모”를 기록하였다. 즉, 수목의 일종으로 목재로 사용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또한 1759년에 편찬된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에는 체발(髢髮: 왕실 여성의 장식용 가발)을 염색하기 위한 재료로 ‘楓木’(풍목)을 사용한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1489년에 편찬된 『구급간이방언해』에는 ‘싣나못불휘’(楓根白皮)로 몸에 난 부스럼을 치료하는 내용이 실려 있고, 이후 1635년에 간행된 『의림촬요』에 눈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신나무 가지(楓枝)와 각종 악창(惡瘡)을 치료하는 약재로 풍근백피(楓根白皮)를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1871년에 저술된 『의휘』에는 신나무 껍질(楓樹皮)을 달인 물로 눈병을 치료하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편찬한 중요 의학서인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등에는 수록되지 않아 약재 사용이 아주 보편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1850년대에 저술된 『오주연문장전산고』는 ‘楓木’(풍목)에 대해 “茶條木 色木 訓신나모 秋景 訓단풍”(다조목 또는 색목을 ‘신나모’라 하고 가을 경치를 일컫어 ‘단풍’이라 한다)이라고 기록한 점에 비추어, 가을에 붉게 물드는 단풍의 풍취를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나무의 붉게 물든 가을 잎(서울 선정릉)
신나무의 붉게 물든 가을 잎(서울 선정릉)

신나무라는 이름의 유래

신나무의 옛말은 ‘싣’(나모)이었는데 최초의 한글 명칭은 한글을 창제하면서 세종대왕께서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해례본』에서 끝소리 ‘ㄷ’을 설명하기 위한 용례로 “싣爲楓”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 이후 1481년의 『분류두공부시언해』에서 ‘싣나모’로, 1527년의 『훈몽자회』로 ‘싣나모’로 사용되었다. 17세기의 『역어유해』에서 ‘신나모’로, 18세기의 『동문유해』에서 “싯나모”로 사용되다가 19세기 초의 『물명고』에 이르면 ‘신나모’로 사용되었으며 19세기말의 『한불자전』등에서 ‘신나무’로 정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즉, 옛말 ‘싣’+‘나모’가 결합되어 싣(나모)-->싯나모-->신나모(신나무)로 변화하여 정착된 이름이다.

한편 A. tataricum subsp. ginnala라는 종(species)에 대한 명칭으로 ‘신나무’를 사용한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식물학자들이 외국으로부터 전래한 식물학에 기초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결합시키고자 한 『조선식물향명집』에서 경기도 지역에서 사용하는 용례에 따라 정한데서 비롯한 것이다.

더불어 당시 같은 단풍나무속(Acer)에 속하는 A. komarovii라는 종에 대해서는 평안북도 지역에서 사용하는 용례에 따라 ‘시닥나무’라고 사정(査定)하였고, 이와 유사한 A. barbenerve라는 종에서 대해서는 ‘청시닥나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였다. 여기서 ‘시닥나무’라는 이름은 ‘싣’(단풍나무류를 뜻한 옛말 ‘싣’)+‘악/앙’(작음을 뜻한 접미사)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신나무와 마찬가지로 옛 이름 ‘싣’(나모)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자 丹楓(단풍)을 알고부터 순우리말 싣나모는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는 앞서 언급된 식물학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긴 세월을 거치면서 어형이 변화하여 왔을 뿐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뿌리의 흰색 껍질을 등창에 약으로 썼을 때 신 맛이 나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시다(酸)의 15세기에 사용된 옛 표현은 ‘싀다’이므로 신나무의 옛말 ‘싣나모’와는 그 어형에서 전혀 같지 않다. 

조선 초중기 약재 사용이 보편적이지 않았고, 그나마 15세기에 약재로 사용했음을 기록한 『구급간이방언해』에서는 뿌리의 껍질을 갈아 술(酒)에 달여서 사용한다는 내용이어서 뿌리의 맛을 제대로 알기도 어려웠다. 모든 면에서 타당성이 전혀 없는 주장이다.

그러면 싣(나모)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싣’으로 사용되었거나 남아 있는 단어에서 그 뜻을 추론한 용례들이 많지 않아 정확한 유래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①옛 문헌 『훈몽자회』, 『역어유해』 및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는 별칭으로 붉게 물드는 잎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되는 ‘色木’(색목)이라고도 했고, ②『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신나모’의 가을 경치를 단풍으로 새길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가을에 곱게 드는 붉은 잎의 모습을 대표적인 이미지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③옛말 ‘싣’은 이후 ‘싯’ 또는 ‘신’으로 변화하였는데 현재에도 ‘싯’누렇다와 ‘싯’멀겋다라는 등의 표현에서 ‘싯’은 ‘매우 짙고 선명하게’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서 색깔을 강조하는 의미이고, ④평안북도의 방언에서는 싯누렇다는 ‘신누렇다’라고도 쓰는데 이는 ‘신’이 색의 짙고 선명함으로 나타내는 ‘싯’ 과 동원어임을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가을에 붉게 물드는 단풍의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신나무의 겨울 열매(경기 불곡산)
신나무의 겨울 열매(경기 불곡산)

산행에서 나무와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

신나무는 전국의 산지 낮은 곳의 계곡가 등 습한 곳에 주로 분포한다. 나무가 그리 크게 자라지 않고 열매는 단풍나무류의 일반적 모양을 취하면서도 양쪽의 날개가 상대적으로 평행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산행 초입의 계곡 부근에서 이런 나무를 만나면 바로 신나무이다. ‘아, 네가 신나무구나’라고 인사하고 옛 사람들이 붉게 물드는 잎의 색깔을 보고서 이름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그 나무라고 되새김해 보면, 아마도 신나무도 반갑게 맞이하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추억이 쌓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산행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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