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4.13 16:40
  • 수정 2023.04.15 08:49

'봄꽃의 대명사' 진달래에 얽힌 몇 이야기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진달래 종류 다양...왜철쭉·영산홍도
중국 유래한 '두견화'와는 생김새 달라
척촉이 철쭉으로...盡月背가 진달래로
진달래를 '국화'로 하자는 황당한 주장도

활짝 핀 진달래의 모습. 사진제공= 경북에서 조혜자님.
활짝 핀 진달래의 모습. 사진제공= 경북에서 조혜자님.

진달래는?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는 진달래과(Ericaceae)에 속하고 높이 2~3m 정도 자라는 낙엽 활엽 관목이다. 중국, 내몽고, 일본, 러시아에 분포하고, 우리나라 전역의 저지대 부터 높은 고산지대 까지 자란다. 꽃은 3~4월에 개화하며 잎보다 먼저 피고, 꽃부리는 벌어진 깔때기 모양으로 연한 붉은색으로 핀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긴타원 모양이다. 열매는 삭과인데 원통형으로 11월에 익는다.

진달래속(Rhododendron) 식물들

한반도에 자생하거나 도입되어 흔히 재배되는 진달래속(Rhododendron) 식물들은 매우 많고 다양하다. 자생하는 식물로는 진달래와 더불어 산진달래(R. dauricum)와 꼬리진달래(R. micranthum), 만병초(R. brachycarpum)와 노랑만병초(R. aureum), 철쭉(R. schlippenbachii)과 산철쭉(R. yedoense f. poukhanense), 참꽃나무(R. weyrichii), 좀참꽃(R. redowskianum) 그리고 흰참꽃(R. tschonoskii), 백산차(R. tomentosum)와 황산차(R. lapponicum)가 있다. 재배하는 식물로는 수많은 외국종과 재배품종들이 도입되거나 개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식별이 어려울 정도이지만, 전통적으로 조선 초기에 일본으로부터 진상받아 키워온 왜철쭉(일본철쭉, R. indicum, 현재에는 이를 ‘영산홍’이라 함)과 영산홍(映山紅, R. obtusum, 현재에는 이를 ‘무산철쭉’이라 함) 및 그 개량종들이 주변에 식재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진달래, 철쭉과 산철쭉은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진달래는 잎이 없이 꽃이 먼저 피고, 나머지 둘은 잎과 꽃이 동시에 피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철쭉 꽃은 연분홍색으로 월등히 크지만, 진달래와 산철쭉은 꽃의 색깔과 크기가 비슷하여 초심자들이 쉽게 혼동하기도 하는데, 1840년대에 저술된 『임원경제지』에서도 철쭉(躑躅花)와 진달래(杜鵑花)는 비슷하여 구별이 어렵다고 기술하기도 하였다.

철쭉(왼쪽)과 산철쭉.
철쭉(왼쪽)과 산철쭉.

진달래를 둘러싼 민속들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산의 개간과 목재의 연료 사용이 증가하면서 산에서 관목들이 즐비하게 되었고, 진달래는 봄철에 전국 산을 가득 채우던 흔한 꽃이 되었다. 그런만큼 민속적 이용도 역시 높았는데 꽃을 따서 생으로 먹거나 꽃전이나 술과 차를 만들어 먹거리로 주로 이용했다. 약용으로도 사용하기도 했는데, 조선 중후기에 저술된 『언해구급방』(1607년)과 『의휘』(1871년) 등에 드물게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화훼식물로 재배한 기록은, 화훼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선 초기의 『양화소록』과 조선 후기 『임원경제지』에 일본으로부터 공물로 진상을 받은 왜철쭉(일본철쭉) 또는 영산홍이 화훼식물로 기록되었을 뿐 진달래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18세기 후반에 저술된 『화암수록』에는 분홍색과 흰색 변이종을 함께 식재하여 관상하였음이 기록되기도 하였다.

진달래라는 이름의 유래

진달래를 일컫는 것으로 우리 문헌에서 주로 나타나는 한자명은 꽃에 있는 반점이 뻐꾹새의 목에 있는 얼룩무늬와 닮았다는 뜻에서 사용된 杜鵑花(두견화)이었다. 그런데 한자명 杜鵑花(두견화)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었는데, 중국에서는 꽃이 진한 붉은 색을 띠는 R. simsii라는 종에 사용된 이름이어서 우리와 동일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약재로 사용된 진달래속 식물로 洋躑躅(양척촉)이라는 식물이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노란색의 꽃이 피는 철쭉 종류인 R. molle이라는 종을 의미했던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에 편찬된 『향약집성방』에는 이에 대한 향명(우리말 이름)을 ‘盡月背’(‘진달래’에 대한 이두식 차자 표기)라고 하기도 했다.

이후 17세기 초에 저술된 『동의보감』에서는 ‘洋躑躅’(양척촉)에 대한 우리말 이름을 ‘텩툑’이라고 하여 현재의 철쭉을 지칭하는 것으로 명칭 분화가 일어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즉, 옛 문헌에는 한자명 ‘杜鵑花’(두견화)와 ‘洋躑躅’(양척촉)이 중국과 다른 식물을 지칭하게 됨에 따라 여러 혼용과 혼선들이 있었던 셈인데, 이로 인해 국어학에서조차 진달래에 대한 어원 또는 유래에 대해서는 제대로 해명이 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어쨌든 야생하는 식물로 진달래와 철쭉은 대별되어 왔던 것인데, 그러한 점을 고려하면 진달래는 진한 색깔이 나는 들꽃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초반에 이르면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는 철쭉에 비해 진달래는 먹을 수 있다고 하여 ‘眞花’(참꽃)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고, 이러한 형태의 방언이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진달래를 국화(國花)로 삼자는 ‘소동’

최근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진달래를 국화를 삼자는 해묵은 주장을 실은 책을 발간하고,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맛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이가 동조를 하는 모양이다. 민주국가에서 국화를 무엇으로 할지 논의하는 것을 뉘라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전래되어 중요한 역사적 고비 때마다 민족과 함께해 온 무궁화(Hibiscus syriacus)에 대한 모든 역사를 '일본의 것'으로 왜곡하는 - 특히 일제강점기에 무궁화를 매개로 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모두 친일로 치환하는 - 것도 문제이거니와, 진달래를 둘러싼 식물학이나 화훼를 비롯한 민속적 이해에 대한 결핍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진달래속 식물 중 진달래만 야생하고 철쭉은 거의 자생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황당하고, 여러 민속적 이용에도 불구하고 화훼산업이 꽃식물에 대한 주요한 이용 형태로 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예부터 현재까지 진달래속 식물 중에 진달래와 꽃이 매우 유사하면서도 잎이 상록(반상록성)으로 겨울에도 상존하는 일본 원산 또는 일본에서 개량된 왜철쭉, 영산홍 또는 산철쭉의 재배품종이 전국에 식재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국화로만 지정하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오히려 국가 상징물조차 일본의 것으로 치환시킬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그 주장이 실린 책의 표지에 잎과 꽃이 함께 달린 모습으로 형상한 그림이 진달래가 아니라 개량종 산철쭉을 연상시키는 것은, 의문이 단지 의문만으로 끝나지 않게 하고 있다. 진달래를 칭찬하기 위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거나 그 비슷한 행위로 지탄받는 이들을 무수히 재소환하는 것은 오히려 그 주장의 실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산지 녹화가 이루어진 이후 진달래는 산지의 높은 곳이나 절벽 등으로 자생지를 옮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처럼 진달래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다시 민둥산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아닐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낙화한 진달래의 모습. 장소=경기도
낙화한 진달래의 모습. 장소=경기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

겨울을 이겨내고 봄은 어김없이 돌아 또 찾아왔고 진달래는 피었다가 다시 진다. 식물 생태와 민속적 이용의 여러 형태가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지를 등산하다 보면 간혹 보이는 진달래는 여전히 우리에게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 '전령사'다.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이 아름다운 식물을 양지바른 곳에 심어, 제 모습대로 자라 이른 봄 만개한 모습을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다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할 수 없을까? 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소박한 생각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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