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3.01.03 14:41
  • 수정 2023.01.03 19:59

복수초(福壽草): 새해 아침에 복과 건강을 빌다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얼음을 녹이며 이른 봄에 피는 꽃
'복수초' 이름은 일본에서 전해진 듯
곧 개화할 시기...한 그루 키워보길

1월에 핀 세복수초(제주도)
1월에 핀 세복수초(제주도)

복수초는?

복수초<Adonis amurensis Regel & Radde>는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중부 내륙의 산지에서 자란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지역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널리 분포한다. 높이 10~20cm 정도로 자라며 잎은 깃 모양으로 잘게 갈라지고 꽃은 양성화(한 꽃에 암술, 수술이 모두 들어 있는 꽃-편집자 주)로 이른 봄에 피어난다. 지역에 따라서는 빨리 피는 개체는 1월에 개화하기도 한다. 열매는 5~6월에 성숙한다. 일찍 꽃을 피워 봄 한철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봄살이 식물(spring ephemeral)이다.

한반도에 분포하는 같은 속의 종으로 개복수초(A. pseudoamurensis)와 세복수초(A. multiflora)가 있다. 개복수초는 서해안 남부와 중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복수초에 비해 다소 크며 줄기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세복수초는 주로 제주도에 분포하고 개복수초와 비슷하지만 잎이 보다 가는 점 등에서 구별된다.

복수초라는 이름의 뜻과 유래

학명 중 속명 Adonis는 그리스 신화와 나오는 청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고, 종소명은 amurensis는 러시아의 아무르 지방에서 자란다는 뜻으로 최초 발견된 지역을 나타낸다. 복수초라는 우리말 명칭은 한자어로 福壽草(복수초)이고 겨울 또는 이른 봄에 피는 꽃을 보며 한 해의 복과 장수(건강)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A. ramosa라는 종(한반도에 분포하는 개복수초와 비슷함)에 대한 명칭으로 福寿草(후쿠쥬소우)라 하고, 중국에서도 A. amurensis(복수초)를 侧金盏花(세진잔후아)라고 하면서도 다른이름(속칭)으로 福寿草(푸소우카오)도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3국이 유사한 식물을 일컫는 이름으로 명칭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서는 1964년 이래로 ‘복풀’로 개칭하여 부르고 있으나 이 역시 복수초와 그 뜻이 별반 다르지 않다.

3월에 핀 개복수초(서해의 풍도)
3월에 핀 개복수초(서해의 풍도)

그런데 일본은 17세기 중엽경부터 이미 ‘福壽草’(복수초)라는 명칭이 문헌에서 발견되고 그 시기에 원예용으로 기르는 풍속이 기록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월 초하루에 피는 꽃이라는 뜻의 元日花(원일화)라는 이름이 같은 시기에 복수초와 함께 기록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899년에 일본인 거류지역(왜장터)에 있는 육종원에서 화분에 담아 ‘福壽草’ 또는 ‘복슈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위해 『매일신문』과 『皇城新聞』(황성신문) 등에 광고를 한 것이 최초의 기록으로 보이고, 중국에서는 1950년대의 문헌에서 약재로 사용한 기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점들을 비추어 보면 福壽草(복수초)는 일본에서 시작되어 우리와 중국으로 파급된 이름으로 보인다.

복수초에 대한 우리의 옛 민속은?

19세기 말경에 일본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기 이전에 우리의 문헌에서 복수초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이를 약재로 사용한 기록도 보이지 않고, 독성이 있고 잎과 꽃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기 때문에 먹거리로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위주로 한 선비 문화에 어울리지 않아 원예용으로 재배한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3월에 핀 복수초(경기도 축령산)
3월에 핀 복수초(경기도 축령산)

다만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북쪽의 삼수갑산 지역에 유배를 갔다가 기록한 것으로, “有客採山 適見草花於氷雪中 斫草筒蒔來 亦足聳目 其花一本一莖戴一葩 莖之長二寸許 瓣之大如金錢石竹 而色如金 不知其名或云俗號消氷花”(어떤 객이 산에서 나무하다가 마침 얼음과 눈 속에서 풀꽃을 발견하고는 그 풀을 뽑아 통에 옮겨 심어 가져왔으니, 이 역시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일이었다. 그 꽃은 하나의 뿌리와 하나의 줄기에 하나의 꽃잎을 달고 있었는데, 줄기는 길이가 2치쯤 되었고, 꽃잎은 크기가 금전화와 석죽화와 같았으며 색은 황금빛이었다. 그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혹자는 민간에서 ‘소빙화’라고 부른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유일하게 발견된다. 분포 지역과 묘사된 모습을 살피면, 현재의 복수초(A. amurensis)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화분에 심는 것은 풍속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얼음을 녹이는 꽃이라는 뜻의 ‘消氷花’(소빙화)라는 명칭도 계승되지는 않았다.

전래된 문화와 명칭에 대한 이해

혹자는 복수초라는 명칭과 한 해의 복과 건강을 비는 풍속은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고 우리의 문화를 없앤 일제강점기의 잔재이기 때문에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과의 악연을 고려하면 일응 수긍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주장은 복수초에 대한 우리의 옛 문화와 명칭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남는다.

또한 일본에서 전래된 모든 문화는 청산되어야 한다면 날 생선을 밥에 싸서 먹는 초밥(すし)도 청산되어야 하는 것일까? 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본에서 먼저 번역하여 우리에게 일상화된 자유와 민주주의. 신문, 출판, 도서관, 헌법, 철학, 과학, 진화 등의 용어도 모두 청산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 말들을 바꾸어 얻는 이익을 논하기 이전에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후쿠쥬소우’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식물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니다. 빈자리에 새롭게 전래된 풍속은 옛 것과 합쳐져 새로운 우리의 문화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곧 난류의 영향을 받아 일찍 개화하는 곳에서는 복수초 종류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 사진을 담아 한 해의 안부를 묻고 복과 건강을 빌기도 할 것이다. 필자로서는 이런 일들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씨앗을 통한 재배에 성공한 농가들이 화분에 담아 꽃시장에 상품으로 내어 놓은 것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올해는 복수초 한 그루를 사서 창가에 두고 키워 볼 요량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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