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조민제 변호사
  • 문화
  • 입력 2024.02.28 18:24
  • 수정 2024.03.05 10:34

‘개불알풀’을 위한 변명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일본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수컷 '성기' 엽기적 표현은 어디서?
예쁜 홍자색꽃인데, 어찌 이름이...
개불알풀의 누명, 그리고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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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에 활짝 꽃을 피운 개불알풀(왼쪽)와 큰개불알풀(오른쪽)
이른 봄에 활짝 꽃을 피운 개불알풀(왼쪽)와 큰개불알풀(오른쪽)

개불알풀은?

개불알풀(Veronica polita Fr.)은 현삼과 개불알풀속의 두해살이풀이다. 길가나 풀밭에서 주로 자란다. 봄철에 주로 피지만 따뜻한 양지에서는 겨울철에도 개화한다. 꽃은 연한 홍자색으로 직경 3~4㎜이다. 열매는 삭과(열매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져서, 각 칸 속에 많은 종자가 들어있는 열매의 구조-편집자주)인데, 콩팥 모양으로 전면에 부드러운 털이 있다.

같은 속으로 비슷한 명칭을 가진 식물로서, 연한 청자색의 꽃을 피우는 ‘눈개불알풀’(V. hederifolia), 짙은 청자색의 꽃을 피우는 ‘선개불알풀’(V. arvensis), 연한 청색의 꽃을 피우는 ‘좀개불알풀’(V, serpyllifolia), 보다 크고 하늘색의 꽃을 피우는 ‘큰개불알풀’(V. persica)이 있다.

개불알풀 이름의 유래는?

개불알풀은 열매의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婆婆纳(pópónà)이라고 하는데 명나라 초기인 1406년에 간행된 『구황본초』에서 구황식물로 등장한 이름이지만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명은 이누노후구리(イヌノフグリ, 犬の陰嚢)로 1856~1862년에 간행된 『초목도설』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에 형성된 이름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1년에 편찬된 『식물분류명사전』에 근거하면 개불알풀을 ‘발꼬리풀’이라 하고, 큰개불알풀은 ‘왕지금꼬리풀’이라 한다.

문제는 일본명과 우리의 이름이 같은 뜻을 가졌다는 것과 불알이라는 수컷의 성기를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에서 발생하고 있다. 혹자는 우리 풀꽃이름이 '창씨개명'되었다고 하고, 혹자는 '엽기적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순화(?)하여 ‘봄까치꽃’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불알풀의 열매
개불알풀의 열매

개불알풀은 '창씨개명' 당한 이름인가?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은 일본명 ‘이누노후구리’와 뜻이 같고, 우리보다 100여년 먼저 기록된 문헌에서 발견되므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혹자는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되어 개불알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먼저 ①개불알풀이라는 우리말 표현은 해방된 이후인 1949년의 『조선식물명집』에서 처음 발견된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일은 아니다. ②우리의 옛 기록은 1840년대에 저술된 『임원경제지』에서 중국명 ‘婆婆納’(파파납)이라는 명칭이 발견될 뿐 우리말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즉, 이미 존재하던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③난초과의 식물로 개불알풀과 유사한 ‘개불알꽃’(=복주머니란, Cypripedium macranthos)이 이미 우리 민족이 사용한 이름으로 존재하였는데, 개불알풀은 우리말 이름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 점은 『조선식물명집』에서 일본명에서 ‘の’(의)를 없애고 일본명에서 존재하지 않는 ‘풀’(草, そう)이라는 단어를 개불알꽃의 ‘꽃’과 대비될 수 있도록 추가한 것에서 확인된다. 즉, 개불알풀은 일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해방 이후에 이 식물을 일컫는 우리말을 찾기 어려워 기존에 존재하던 우리말 이름 ‘개불알꽃’을 함께 참고하여 만든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에 대해 창씨개명 운운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그런데, 혹자는 일본명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하므로 당연히 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이 맞다면, 대통령, 민족, 자유, 민주, 국기, 국어, 역사, 철학 등등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근대화 시기에 일본이 먼저 번역하거나 만든 용어들은 어떠한가? 개불알풀을 청산해야 한다면 이러한 일상용어들도 다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큰개불알풀의 열매
큰개불알풀의 열매

개불알풀은 엽기적 이름?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에는 포유류의 수컷의 성기를 나타내는 ‘불알’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이를 근거로 엽기적이어서 차마 부를 수 없는 이름이라거나, 서양 또는 일본식의 저잡한 문화가 도입된 것이라거나, 차마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는 거시기한 이름이라는 등 별의별 주장이 다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옛 문헌 『동의보감』과 『물명고』는 ‘슈자ㅎ+ ·(아래아)+ㅣ 좃’(수컷의좃), ‘ㄷ+·(아래아)+ㄹ ㄱ+·(아래아)+ㅣ의십가비’(닭의십갑이), ‘할 ㅁ+·(아래아)+ㅣ십가비’(할매십가비) 그리고 ‘홀아지좃’(홀아비좃)과 같이 성기의 명칭이 있는 식물명을 기록한 바 있다. 『동의보감』과 『물명고』가 서양이나 일본식 문화에 찌든 문헌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버젓이 실려 있는 ‘불알친구’라는 말은 엽기적이어서 없애야 하는 단어일까? 왜 아이들은 성기에 관한 우리말을 몰라야 하는 것이 될까? 박제되어 고루해져 버린 유교적 엄숙주의가 여전히 준수되어야 할 정신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면 불알은 식물명에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어떤 타당성이 있겠는가?

도대체 ‘봄까치꽃’은 어떤 식물일까?

어떤 이들은 ‘봄까치꽃’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봄까치꽃은 이해인(1945~) 수녀가 1999년에 발표한 시에서 유래한다.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이라고 묘사한 점을 고려하면, 까치의 날개 깃에 있는 하늘색과 비슷하게 꽃이 하늘색으로 피는 ‘큰개불알풀’을 일컬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어떤 식물학자는 1949년에 발간된 식물 책에서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이 먼저 있었다며 개불알풀은 고쳐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이에 대해서는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자연과 생태, 365쪽 참조). 그러나 식물학자 박만규(1906~1977) 교수가 1949년에 저술한 『우리나라 식물명감』에 기록된 이름은 ‘봄까지꽃’이었다. 이때 ‘까지’는 먹는 가지의 방언형으로 보이는데, 옛날부터 식물명에서 ‘가지’는 보랏빛이 나는 식물에 붙는 이름이었다. 봄까지꽃은 봄에 꽃이 보랏빛으로 피는 식물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박만규 교수의 봄까지꽃은 하늘색이 나는 큰개불알풀이 아니라 홍자색(보라색)이 나는 개불알풀에 대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개불알풀이 들어가는 유사한 식물들이 꽃의 색깔이 같지는 않다. 이로 인해 박만규 교수조차 그 이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1974년에 이르러 ‘지금’(地錦)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봄까치꽃은 그저 아름다운 시어일 뿐이고, 도대체 어떤 식물을 지칭하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글을 맺으며

식물을 일컫는 우리말로서 식물명은 우리의 언어권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어휘이다. 따라서 의사소통이라는 최소한 기능조차 하지 못하는 어휘가 아름답다는 몇몇의 주관적 주장만으로 식물명이 될 수 없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 식물의 생태와 그와 결부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은 채 앙상하기 그지없는 낡은 이념의 잣대로 몇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만 그럴싸한 이름으로 바꾸자고 한들 그 주장이 온전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조민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9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취미로 야생 식물 탐사와 옛 식물에 대한 기록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와 책으로 ‘한국 식물이름의 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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