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
대중문화 독립연구가
박미숙은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대중문화를 연구했다. 영국에서 한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동아시아학이며 세부 전공은 한국학이었다. 현재 제주도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박미숙의 글
-
인문·문화
씨스루의 박진영, ‘패노메논’은 왜 불투명?
지난 8월 24일 칼럼 <팬덤의 축제? 박진영과 최휘영의 축제?> 을 통해 정부와 대형 대중문화기획사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글로벌 한류 축제 ‘패노메논’ 행사가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물었다. 어제(10월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는 그 질문을 상표권과 사업 참여 절차로 구체화했다. 팬덤을 앞세운 사업에서 기업의 권리는 어떤 과정을 통해 확보됐으며, 정부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판단하고 승인했는가가 질문의 주요 대목이다.
-
인문·문화
일본이 만들고 편집한 ‘하나의 아시아’
국제스포츠 중계는 경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흩어진 국민을 같은 시간과 감정 속에 묶어 ‘우리’를 만든다. 국가대표 선수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가 되고, 패배는 국가의 좌절이 된다. 방송은 국기와 국가, 선수의 눈물과 관중의 함성을 반복해 보여주며 이 감정을 조직한다. 스포츠 중계는 공동체를 발견하는 방송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산하는 방송이다.
-
인문·문화
팬덤의 축제? 박진영과 최휘영의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의 콜로라도 사막 내 코첼라 밸리에서 매년 봄에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음악 페스티벌이다. 미국에 코첼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패노메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최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진하기로 했다는 대형 K-컬처 축제다. 2027년 서울에서 공연과 시상식을 열고, 2028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코첼라와 그래미에 버금가는 행사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
인문·문화
친일 청산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긴 국가
배우 하영의 증조부를 둘러싼 친일 논란은 한 연예인 집안의 문제가 아니다.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국가의 역사적 실패가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뒤늦게 드러난 사건이다. 비판의 중심에 서야 할 대상은 조상을 선택할 수 없었던 후손이 아니라, 친일 세력을 보호하고 그 책임을 방치한 국가다. 하영은 2026년 8월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 한국에서 병원을 개원한 최초의 의사였다”고 소개했다. 방송 제작진도 그가 ‘고종을 치료한 인물’이라고 자막으로 설명했다. 하영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인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도 공개했다.
-
인문·문화
“그래미 거부” BTS의 탈식민·문화독립 선언
“문화독립 선언” BTS의 쾌거 방탄소년단(BTS)이 2027년 열리는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 정규 5집 《아리랑》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문화적 탈식민을 외친 ‘독립 선언’이라 할 쾌거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소감은, 지역과 언어를 기준으로 음악을 재단하는 글로벌 시상식의 관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다름아니다.
-
인문·문화
뜨겁게 분노하고 빠르게 잊는 한국 사회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분노했다. 막대한 이익을 한국 시장에서 얻으면서도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고, 사고 이후의 대응에서도 충분한 책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SPC 계열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은 노동자의 생명보다 생산과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을 비판하며 불매운동에 나섰다. 최근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쳤을 때도 전국적인 공분이 일었다. 어떻게 민주화운동의 희생을 경기장의 농담으로 소비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
인문·문화
배재고가 배운 건 결국 ‘위기관리’였다
광주제일고가 배재고 야구부에 베푼 선처는 피해자가 보여준 ‘품격’이었다. 그러나 그 품격이 가해자의 책임을 줄여주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기관과 체육단체의 공적 책임까지 대신 면제할 권한도, 의무도 없다. 대한체육회의 징계 감경은 용서와 책임을 혼동함으로써 피해자의 관용을 가해자의 구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
인문·문화
제2의 배재고 사태가 생길 것이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광주일고를 향해 외친 구호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학교는 사과했고 학생들은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충격적인 것은 학생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가 너무도 익숙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그 언어를 수없이 들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튜브에서, 정치인의 연설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그리고 기업의 마케팅에서 말이다. 운동장에서 터져 나온 혐오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떠돌던 언어가 학생들의 입을 통해 되돌아온 것이었다.
-
인문·문화
JTBC의 ‘성장주의’ 실패, 가릴 방법 있나
JTBC 사태는 단순한 기업회생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미디어 산업과 문화정책이 무엇을 성공이라고 믿어왔는지, 그리고 그 성공이 어떤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많은 언론은 이번 사태를 OTT의 성장, 광고 시장 침체, 콘텐츠 제작비 상승,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로 설명한다. 물론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시대의 변화 때문이라면 경영진도, 투자자도, 정책 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
경제
Progressive Slogans, Militaristic Memes: The Two Faces of Starbucks
The recent controversy surrounding Starbucks Korea is not merely a matter of an isolated, inappropriate marketing event. It is a symbolic case study showing a glaring contradiction: how a brand that built its empire on progressive, inclusive slogans in the West can so easily compromise with toxic, militaristic memes in the Korean market. This incident lays bare how a global brand becomes politicized, and how a corporate tycoon’s personal worldview can destabilize an entire culture of consumption.
-
인문·문화
포용과 탱크 사이, 스타벅스의 이중성?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은 이벤트 하나가 부적절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글로벌 브랜드가 어떻게 정치화되고, 기업 총수의 개인적 세계관이 어떻게 소비문화 전체를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은 ‘정용진’이라는 인물의 반복적인 정치적 퍼포먼스, Starbucks Korea(스타벅스 코리아)의 무감각한 마케팅, 그리고 Starbucks Corporation 본사의 선택적 윤리 의식이 동시에 겹쳐 드러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
인문·문화
돌아온 프라다, 사라진 1988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어떤 새로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변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란다(편집장, 메릴 스트립 분)는 여전히 날카로운 표정으로 회의실을 장악하고, 앤디(비서, 앤 해서웨이 분) 역시 익숙한 분위기로 화면 안에 돌아온다. 그런데 그 익숙함 위로 20년 가까운 시간이 함께 겹쳐 보인다.
-
인문·문화
중립: ‘예술’은 살 수 있을까?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광주 이전 논쟁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지만, 문화산업의 핵심 회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교육·산업·인력 구조의 분절을 심화시킬 위험이 더 크다. 이 정책의 성패는 이전 자체가 아니라 이후 문화 생산 체계를 어떻게 재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논쟁은 특정 정치인의 단일 발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중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 이후 축적된 국가균형발전 담론 위에서, 광주시의 유치 전략과 지역 정치권의 지속적 문제 제기가 결합되면서 2010년대 후반 재점화된 구조적 의제다.
-
인문·문화
② 월드컵 중계 독점, JTBC는 괜찮을까
JTBC의 월드컵 중계 독점(중계권료 1900억 원)은 공공성의 훼손이라는 규범적 문제를 넘어, 결국 방송사 스스로에게도 적자 구조를 안기는 비효율적 선택이다. FIFA 월드컵은 국민 다수가 동시에 경험하는 공적 사건이며, 그 핵심 가치는 ‘동시에 함께 본다’는 집합적 경험에 있다. 그러나 특정 사업자인 JTBC가 이를 독점중계하는 순간, 이 경험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독점 자체가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지 않은 구조를 만든다.
-
인문·문화
① 월드컵 중계권,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
JTBC의 월드컵 중계 독점은 단순한 사업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시청권’을 제도적으로 설계하지 못한 정책 공백이 낳은 구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FIFA 월드컵은 국민 다수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면을 공유하는 ‘공적 사건’이다. 이 사건의 핵심 가치는 ‘동시성’과 ‘집합적 경험’에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시간대에 모든 국민이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 이것이 ‘공동체의 서사’가 되고 공동체를 지키는 핵심가치로 자라게 된다.
-
인문·문화
BTS공연, ‘감동’이 아니라 ‘경고’다
지난 토요일(21일) BTS 광화문 공연은 공적 영역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사유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 공연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공공 공간·플랫폼·행정 권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공간은 점점 더 통제되고 동원되는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우리는 공연을 즐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공공성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경험한 것이다.
-
인문·문화
서울의 광장은 누구의 것인가
히피 문화에 취한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상상하는지. 전설적 그룹 퀸이 공연했던 웸블리 스타디움의 환상을 기대하는지. BTS(방탄소년단)가 오는 3월 21일 ‘완전체’로 컴백하는 첫 공연으로 서울의 광화문 광장 일대를 이용하게 된다. 국내 팬들은 물론 해외에서 팬덤이 몰려오고, 서울시, 문화체육부는 행정지원까지 나섰다. BTS는 경복궁 근정문에서 시작해 홍례문,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걷는 오프닝, 아리랑 국악단과 협업해 보이는 대규모 퍼포먼스를 펼친다. OTT플랫폼 기업 넷플릭스는 공짜로 구한 광화문광장과 수십만 응원단을 배경으로 한 공연을 전세계 190여개 국에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
인문·문화
KBS가 대하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요즘 사극 드라마의 풍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보듯 오늘날 많은 사극은 역사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극의 외피만을 입은 채 역사적 사실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궁중 의상과 시대적 배경만 차용할 뿐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 구조,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정통 사극은 빠르게 사라지는 장르가 되었다.
-
인문·문화
넷플릭스 10년, K-서사는 플랫폼 감옥에 갇혔다
지난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한국을 포함한 130여 개국에 서비스를 동시 개시한 후 올해로 진출 10년을 맞았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은 한국 드라마를 세계로 확장시킨 사건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 산업의 기준을 플랫폼 자본으로 이전시킨 구조적 전환이었다고 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반복된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성공”이라는 표현은 산업의 외형을 설명할 뿐, 권력의 이동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제작은 한국이 담당했지만 유통과 평가 기준, 데이터 접근 권한, 수익 구조의 핵심은 플랫폼이 장악했다.
-
인문·문화
영국 BBC, 한국 EBS 본받았어야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최근 2035년을 목표로 정규 지상파 방송을 폐지하고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겠다고 빌표했다. 이 구상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공영방송이 스스로 공영성을 축소하는 선택이다. 이 결정은 시청 행태 변화에 대한 ‘적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간 누적된 재정 압박과 정치적 공격 속에서 공공 인프라를 유지하는 책임을 포기하고 플랫폼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후퇴하는 전략에 가깝다. 공영방송의 위기를 해결하는 해법이 아니라, 공영방송이라는 제도 자체를 가볍게 만드는 선택이다. 우리 공영방송에게는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는가.
-
인문·문화
‘더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TV속 외국인
JTBC의《싱어게인 4 - 무명가수전》에 출연한 도라도와 SBS의《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의 전태풍은 더 이상 ‘외국인 출연자’라는 말로 따로 분리해 설명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의 단계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가장 일상적인 장면에 가깝다. 한국 텔레비전은 더 이상 단일민족 사회라는 오래된 상상력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외국인은 예외적 구경거리가 아니라, 서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사회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
인문·문화
이재, 플랫폼 시대 ‘음악 소비 경로’ 바꾸다
골든글로브 주제상을 받은 ‘케데헌’ 이재의 《골든》성공은 한 곡의 히트가 아니다. 플랫폼 시대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국경을 건너고, 어떤 질서로 소비되며, 어떤 감정이 선택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이 성공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먼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 현상을 단순한 “역수입 히트”나 “K-팝 성공담”으로 축소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음악의 이동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
인문·문화
라면의 가난, 김치의 노동, 먹방의 고립
라면, 김치, 먹방, 치맥, 대박. 스킨십 같은 한국어 단어들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새롭게 등재되었다. 이것은 한국 문화의 인기를 넘어, 세계가 한국어의 일부를 빌려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징후이며, 플랫폼 시대의 문화 권력 구조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유명해졌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왜 하필 이 단어들이 지금, 이 방식으로 필요해졌는가를 묻는 일이다.
-
글로벌
‘대담하나 덜 위험한’ 맘다니의 여덟 그림자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의 취임사는 뉴욕의 위기를 ‘관리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로 재정의하며, 좌파 정치의 언어를 공적 중심으로 복귀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취다. ( 관련기사: 뉴욕시장 취임 맘다니 “대담하게 시정”…첫 조치는 세입자 보호 ) 그러나 좌파적 기준에서 엄밀히 평가하면, 이 연설은 상징과 의지의 수준을 넘어 실제 권력 재편으로 나아가기에는 아직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 적대의 명명은 조심스럽고, 갈등의 비용은 흐릿하며, 집합적 주체의 조직화와 민주적 통치 장치의 설계는 선언에 머문다. 대담하지만 아직 ‘위험해지지 않은’ 연설이라는 점이 이 취임사의 가장 큰 한계다.
-
인문·문화
우린 친밀한데, 내 일방적인 감정이라고?
우리는 언제부터 모르는 사람의 안부를 진지하게 걱정하게 되었을까. Parasocial(유사 관계)은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설계되고 관리되는 사회의 구조를 가리키는 단어다. 캠브릿지 사전이 2025년 ‘올해의 단어’로 parasocial을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인물의 기분 변화에 하루의 감정이 좌우된다. 그의 선택에 분노하고 실망한다. 휴식 선언에 함께 지치고, 복귀 소식에 안도한다. 사과문 한 줄에 마음이 바뀌는 경험도 낯설지 않다. 이 감정은 과잉이 아니다. 오늘날 친밀함이 작동하는 정상적인 방식이다.
-
인문·문화
넷플릭스, 워너 인수: 플랫폼 제국주의의 탄생
플랫폼이 세계 문화질서를 구성하는 방식은 이제 단순한 산업적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 전환의 차원으로 확장됐다. 특히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를 인수하게 된다면, 이는 기존 국가 중심의 문화정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드러내며, 플랫폼이 새로운 형태의 주권적 장치로 기능하기 시작했음을 선언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과학
김우재의 ‘과학을 직업으로 산다’의 사회학
김우재 하얼빈공대 교수의 『보통과학자』(김영사)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과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드문 주제의 텍스트다. 한국의 과학기술 담론은 오랫동안 ‘국가 발전의 동력’이라는 산업주의적 프레임, 혹은 ‘천재 과학자의 신화적 서사’로 조직된 측면이 강했다. 과학자는 혁신의 주체, 혹은 글로벌 경쟁력을 창출하는 인재로 호명되었고, 과학 연구는 곧바로 경제적 산출물이나 국가적 위상으로 환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