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배재고 사태가 생길 것이다

혐오는 어떻게 대한민국 문화가 됐나 차별금지법이 없는 사회에 대하여

지난 6월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에서 배재고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섞은 응원가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 6월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에서 배재고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섞은 응원가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 사회가 혐오를 소비한 성적표 배재고 야구부의 충격적인 혐오 발언은 아이들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혐오를 조회수와 돈, 마케팅의 재료로 악착같이 소비해 온 어른들의 사회가 아이들에게 안겨준 부끄러운 성적표다. 학생들은 혐오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어른들의 언어를 통해 학습했을 뿐이다.
  • 차별금지법을 방치한 20년의 결과 차별금지법을 20년 넘게 국회 문턱에서 가로막으며 입법을 미루는 사이, 대한민국은 혐오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정상적인 문화로 정착시킨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 삼아 분노를 쏟아내고,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소비하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 혐오는 ‘민주주의의 적’이란 선언해야 차별금지법은 생각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결코 혐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윤리적 선언이다. 더 이상 제2의 배재고 사태를 방치하지 않으려면, 혐오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고 타인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우리 사회의 결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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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했던 혐오의 언어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광주일고를 향해 외친 구호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학교는 사과했고 학생들은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충격적인 것은 학생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가 너무도 익숙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그 언어를 수없이 들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튜브에서, 정치인의 연설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그리고 기업의 마케팅에서 말이다. 운동장에서 터져 나온 혐오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떠돌던 언어가 학생들의 입을 통해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학생들의 일탈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받은 성적표다.

많은 사람들은 혐오를 개인의 ‘인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악하기 때문에 혐오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러나 혐오는 개인보다 사회가 만든다. 어떤 사회는 혐오를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고, 어떤 사회는 혐오를 ‘경쟁력’으로 만든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연대는 사라졌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야 했고, 실패는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었다. 실패와 좌절이 누적될수록 사람들은 구조를 바꾸기보다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였다. 여성이 문제라고 했고, 이주민이 문제라고 했으며, 장애인이 문제라고 했다. 청년과 노인을 서로 적으로 만들었고,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문화도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었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설명하는 것보다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억’도 소비 대상이 되는 세상

인터넷과 플랫폼은 이 감정을 산업으로 만들었다. 혐오는 조회수를 만들고, 조회수는 광고수익을 만들었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알고리즘은 차분한 토론보다 분노를 더 널리 확산시켰다. 플랫폼은 혐오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혐오를 가장 효율적으로 유통하는 시장을 만들었다. 혐오는 더 이상 감정이 아니었다. 콘텐츠였고, 상품이었으며, 돈이 되었다.

정치는 이러한 구조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지역주의는 선거 전략이 되었고, 진영정치는 상대를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는 원래 다양한 시민이 공존하는 제도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시민은 점점 동지와 적으로 분류되었고, 혐오는 가장 손쉬운 정치적 동원 수단이 되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기업과 공인들마저 ‘역사적 기억’을 가볍게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올해 큰 논란을 일으킨 정용진과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사태는 그 상징적인 사례였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시민들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마케팅에 활용되었다는 비판은 단순한 홍보 실패를 넘어섰다.

그것은 역사적 기억마저 화제성과 소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위험한 감각을 드러냈다. 논란 이후 사과는 있었지만, 사회는 이미 또 하나의 신호를 학습했다. 민주주의의 기억도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신호였다.

배재고 학생들은 바로 그런 사회에서 자랐다. 그들은 혐오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학습했다. 인터넷에서 배우고, 플랫폼에서 소비하고, 어른들의 언어를 따라 했을 뿐이다. 학생들을 비난하기 전에 어른들의 사회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의 입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의 입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혐오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도 없는 대한민국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 혐오를 막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차별금지법은 20년 넘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입법을 미루어 왔지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사회가 치렀다. 차별을 금지하는 기준이 없는 사회에서는 혐오가 언제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차별금지법은 사람들의 생각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어떤 차별도 공동체의 규범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선언이다. 법 하나가 혐오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법은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세운다.

우리는 음주운전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법은 혐오를 없애는 마법이 아니라, 혐오를 정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그러나 법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플랫폼 기업은 혐오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알고리즘에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는 지역감정과 적대의 언어를 동원하는 방식을 중단해야 한다. 언론은 갈등을 클릭 장사의 소재로 소비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기업은 역사적 기억을 화제성이나 마케팅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학교 역시 민주주의를 암기 과목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고 타인의 존엄을 인정하는 시민교육으로 확장해야 한다.

제 2의 배재고 사태는 쉽게 생길 것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자라난다”고 말했다. 혐오도 마찬가지다. 혐오는 극단적인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농담으로 시작되고, 밈으로 퍼지고, 콘텐츠가 되고, 마케팅이 되고, 응원 문화가 된다. 그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혐오라고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는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혐오를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소비하며, 어떻게 방치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입을 막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가 혐오를 동원의 기술로 사용하는 한, 플랫폼이 혐오를 돈으로 바꾸는 한, 기업이 역사적 기억을 화제성의 도구로 사용하는 한, 차별금지법조차 끝내 제정하지 못하는 한, 제2의 배재고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 몇 명에 대한 징계가 아니다. 혐오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선언하는 사회적 결단이다. 차별금지법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고, 플랫폼의 공적 책임은 그 기반이 될 수 있으며, 정치의 언어를 바꾸는 일은 그 완성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타인의 존엄을 조롱하지 않는 문화, 역사적 기억을 소비하지 않는 윤리,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제도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남는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는 그 민주주의가 지금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경고였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6 정용진 사과 한 달 만에... 고교야구장까지 번진 '5·18 탱크데이'의 비극!
글쓴이

박미숙 대중문화 독립연구가

박미숙은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대중문화를 연구했다. 영국에서 한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동아시아학이며 세부 전공은 한국학이었다. 현재 제주도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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