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거부” BTS의 탈식민·문화독립 선언
- ‘서구의 보편’에 대한 거부 BTS가 그래미의 ‘아시안 팝’ 신설을 거부한 것은, 서구가 세계 음악의 기준을 쥐고 비서구를 분류하던 식민적 위계 질서에 정면으로 맞선 문화적 독립선언이다.
- 음악가 주권의 완전한 역전 “왜 우리에게 상을 주지 않는가”가 아닌 “왜 당신들이 우리 음악의 가치를 승인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평가받던 객체에서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심사하는 주체로 당당히 일어섰다.
- 진정한 문화 탈식민의 길 이 역사적 선택이 특정 국가의 문화패권 교체라는 좁은 민족주의를 넘어, 하나의 중심이 가치를 독점하는 낡은 구조 자체를 허물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스스로의 이름으로 숨 쉬는 ‘세계의 자유’를 열어젖혔다.
“문화독립 선언” BTS의 쾌거
방탄소년단(BTS)이 2027년 열리는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 정규 5집 《아리랑》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문화적 탈식민을 외친 ‘독립 선언’이라 할 쾌거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소감은, 지역과 언어를 기준으로 음악을 재단하는 글로벌 시상식의 관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다름아니다.
새로 만들어진 ‘최우수 아시안 팝 음악 퍼포먼스’ 부문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을 기준으로 음악을 나누는 방식의 모순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문화적 식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
BTS가 거부한 것은 그래미가 대변하는 바, ‘문화적 식민성’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식민성은 다른 지역의 문화를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데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특정 지역의 문화 취향을 ‘세계의 보편’으로 상정하고, 나머지 문화를 그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서열화하는 방식으로도 공고히 유지된다.
서구의 음악은 별도의 설명 없이 ‘보편적인 팝’이 되지만, 비서구의 음악에는 아시아, 라틴, 아프리카 같은 지역적 이름표가 붙는다. 중심은 자신의 지역성을 지운 채 세계를 대표하고, 주변부는 끊임없이 출신과 정체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미의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은 이러한 구조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시아 음악을 포용한다는 명분 뒤에는, 무엇이 ‘보편적 팝’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미국 음악산업이 쥐겠다는 위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배제’에서 ‘포용’으로 방식은 바뀌었을지언정, 중심과 주변의 관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시아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의 음악은 언어와 역사, 산업구조가 판이하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오직 ‘서구의 바깥’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결국 ‘아시안 팝’이라는 범주는 아시아가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이 아니라, 서구가 자신의 바깥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세련된 ‘분류의 질서’일 뿐이다.
왜 서구인들이 음악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BTS의 불출품은 단순한 시상식 거부의 의미를 넘어선다. 만약 그래미에 계속 출품하며 더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다면 심사 권한은 여전히 그들의 손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출품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질문의 층위가 완전히 바뀐다.
“왜 우리에게 상을 주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당신들이 우리 음악의 가치를 최종적으로 승인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순간이다. 평가만 받던 음악가가 평가 제도의 정당성을 심사하는 주체로 완전히 돌아서게 되는 순간이다.
오랫동안 그래미는 미국의 시상식이면서도 세계 음악의 최고 심판자처럼 군림해 왔다. 각국의 음악가들은 영어권 평단의 평가를 거쳐 그래미의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세계적인 존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BTS는 이러한 오래된 믿음에 종언을 고한다. BTS는 이미 그래미가 없어도 세계의 청중인 팬들과 직접 연결되었고 이들과 함께 음악을 발견하고 의미를 만들었다. BTS 팬들은 그래미를 통해 가치를 배운 것이 아니다.
그래미 대신 ‘K-팝’이라고 해선 안돼
관계는 이미 역전됐다. BTS는 자신의 상징적 가치를 그래미의 권위 갱신에 보태주지 않기로 했다. 그래미가 만든 다양성의 장식품 역할을 거부한,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독립 선언’한 것이다. 상을 받지 않겠다는 소극적 거부가 아니라, 미국의 문화제도가 자신을 통해 권위를 갱신하도록 돕지 않겠다는 주체적 선택인 것이다.
다만 이 사건을 한국이나 K-팝이 서구를 이겼다는 ‘민족주의적 승리’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탈식민주의는 미국의 중심을 또 다른 하나의 중심이나 특수성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아니다. 서구가 독점하던 ‘보편’의 자리를 K-팝이 차지하는 한편, 다른 아시아 음악을 주변화한다면 기존 질서의 반복일 뿐이다.
진정한 독립은 하나의 중심이 세계의 가치를 독점하는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데 있다.
결국 BTS의 불출품은 그래미의 문을 박차고 나간 사건으로만 해석해선 안된다. 그 문이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가 아니라고 선언한 사건으로 해서할 때 특별한 의미가 더해진다. 세계의 음악가는 더 이상 ‘서구의 문지기’에게 통과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제 언제 BTS가 그래미를 받을 것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미라는 영예를 잃었을지 모르나, BTS는 서구의 승인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세계의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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