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가 배운 건 결국 ‘위기관리’였다
-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피해자의 용서와 선처는 가해 학교의 공적 책임이나 징계를 면제하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이를 혼동하는 것은 부당한 도덕적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 교육장에서 잠만 잔 선수들 배재고가 징계를 줄이기 위해 택한 사과와 참배는 진정한 반성이 아닌 형식적인 ‘위기관리’에 불과했다.
- 혐오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따라서 피해자의 용서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을 끊고, 혐오 표현과 방관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공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용서와 경감을 혼돈한 대한체육회
광주제일고가 배재고 야구부에 베푼 선처는 피해자가 보여준 ‘품격’이었다. 그러나 그 품격이 가해자의 책임을 줄여주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기관과 체육단체의 공적 책임까지 대신 면제할 권한도, 의무도 없다. 대한체육회의 징계 감경은 용서와 책임을 혼동함으로써 피해자의 관용을 가해자의 구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들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철없는 장난이나 과격한 응원이 아니다. 5·18민주화운동과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조롱하고, 광주라는 지역 전체를 모욕한 혐오 표현이다.
그러나 장난이었다는 해명은 책임을 줄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폭력의 기억이 아무렇지 않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됐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징계를 줄이기 위한 사과
사건 이후 배재고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들은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광주제일고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고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선처를 요청했다.
이 장면은 곧바로 배재고의 징계 감경을 ‘정당화’하는 서사로 사용됐다. 사과와 참배, 눈물과 악수는 언론을 통해 ‘화해의 장면’으로 완성됐고, 대한체육회는 이를 근거로 당초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내렸던 배재고 야구부의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1개월로 줄였다. 배재고가 다시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사과는 책임을 감당하는 과정이 아니라, 징계를 줄이기 위한 절차가 됐다. 광주 방문은 반성의 시작이 아니라 사건을 봉합하는 의식처럼 작동한 것이다. ‘피해 학교가 용서했고 학생들이 사과했으니, 이제 그만 문제 삼자’는 구조였다.
그러나 공개적인 사과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학교의 문화가 달라졌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이해했다는 사실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제도가 마련됐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용서’와 ‘징계’는 목적이 다르다. 용서는 피해자가 선택하는 윤리적 행위지만, 징계는 공동체가 허용할 수 없는 행동의 경계를 선언하는 공적 조치다.
특히 5·18은 광주제일고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희생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담은 ‘공적 기억’이다. 광주제일고가 배재고 학생들을 용서했다고 해서 그 기억을 조롱한 행위의 사회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선처를 징계 감경의 핵심 근거로 삼는 것은 피해자에게 부당한 도덕적 부담도 지운다. 광주제일고가 선처를 요청하지 않았다면 배재고 학생들의 진학과 선수 생활을 막은 냉정한 학교로 비쳤을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 학생의 미래까지 피해자가 걱정해야 하는 구조다.
피해를 입은 쪽이 다시 관용과 포용력을 증명해야 비로소 ‘성숙한 피해자’로 인정받는다. 이것은 화해가 아니라 용서를 강요하는 방식인 것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리지도 않고서
일부 학생의 잘못을 이유로 야구부 전체에 6개월 출전정지를 내린 최초의 징계가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수 있다. 가담하지 않은 학생에게까지 같은 책임을 지우는 집단징계는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전체 징계를 사실상 없애는 것이 아니다. 누가 구호를 만들고 주도했는지, 선수들은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 감독과 지도자는 왜 제지하지 않았는지 책임을 가려야 했다. 책임자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전원을 처벌했다가 다시 전원을 선처하는 방식은 처벌과 용서 모두를 무책임하게 만든다.
배재고에서 실시한 민주시민교육 시간에 다수 학생이 잠을 잤다는 재학생의 증언은 이 사건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한 학생의 증언만으로 학교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학교가 마련한 교육이 혐오 표현의 배경과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시키기보다 징계 이후의 형식적 절차에 그쳤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사과문을 읽고 묘지를 참배하고 교육 시간을 채우면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결론만 남는다면, 학생들이 배운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단지 ‘위기관리’다.
이번 결정이 남긴 가장 위험한 선례도 여기에 있다. 공적 기억을 모욕하고 혐오 표현을 사용해도 논란이 커지면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하고 선처를 받아내면 된다. 학교는 반성문과 교육을 제시하고, 체육단체는 학생의 미래를 내세워 징계를 줄인다.
화해의 사진만 남은 피해의 기억
책임은 사라지고 화해의 사진만 남는다. 이런 방식은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평판과 대회 출전권을 보호하는 데 가깝다.
광주제일고는 이미 넘치도록 관대했다. 이제 질문 받아야 할 대상은 배재고와 대한체육회다. 배재고는 왜 이런 구호가 집단적으로 가능했는지 밝혀야 하며, 지도자와 학교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학생의 미래를 말하기 전에 피해자의 존엄과 공적 기억을 보호할 기준부터 세워야 한다.
선처가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피해자의 용서를 이용해 징계를 지우는 순간, 화해는 정의를 회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가해자를 원래 자리로 복귀시키는 장치가 된다. 이번에 보호된 것은 학생들의 미래만이 아니다. 혐오를 낳고도 책임지지 않는 학교와 체육계의 질서도 함께 보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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