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성장주의’ 실패, 가릴 방법 있나
[박미숙의 플랫폼 미디어 비평]
- 외면할 수 없는 경영진과 성장 신화의 파산: JTBC의 기업회생 위기는 외부 환경 뿐아니라, 체급을 무시한 채 올림픽 중계권 독점 등 규모 과시에만 몰두했던 오너 경영진의 눈먼 성장주의가 낳은 불가피한 결과다.
- K-콘텐츠 금융화와 지속 불가능한 생태계 글로벌 1위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서 국내 방송사는 적자에 허덕이고 제작 현장은 골병드는 모순은, 한국 콘텐츠 산업이 내실 없이 자산화·금융화되었음을 폭로한다.
- 어설픈 정치 논리와 특혜성 구제 경계 위기에 처한 언론사를 정파적 진영 논리에 따라 세금으로 구제하려는 움직임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도덕적 해이일 뿐이며, 언론의 독립성마저 해치는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 미디어 산업의 ‘성공주의’ 자초
JTBC 사태는 단순한 기업회생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미디어 산업과 문화정책이 무엇을 성공이라고 믿어왔는지, 그리고 그 성공이 어떤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많은 언론은 이번 사태를 OTT의 성장, 광고 시장 침체, 콘텐츠 제작비 상승,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로 설명한다. 물론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시대의 변화 때문이라면 경영진도, 투자자도, 정책 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기업은 환경 변화 속에서 경영하는 조직이며, 환경이 좋을 때만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같은 시장 변화 속에서도 어떤 기업은 살아남고 어떤 기업은 무너진다. 따라서 JTBC 사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 JTBC가 그 변화에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는가이다.
JTBC 홍씨 일가의 ‘과도한 자신감’
이 지점에서 홍정도 부회장을 비롯한 홍씨 일가와 중앙그룹 경영진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JTBC는 종합편성채널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업자였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고, 드라마와 예능에서도 연이어 성공작을 배출했다.
한때 종편 가운데 유일하게 지상파와 경쟁할 수 있는 사업자로 평가받았다. 문제는 성공이 때때로 냉정한 판단보다 ‘과도한 자신감’을 낳는다는 점이다.
중앙그룹은 콘텐츠 투자 확대와 스포츠 중계권 확보, 영화 사업 유지, 계열사 확장 등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물론 당시에는 상당수 전문가와 언론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콘텐츠 산업은 미래 산업이었고, K-콘텐츠는 국가적 자산이었으며, 플랫폼 시장은 무한히 성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전략은 위험을 분산하기보다 위험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 확보 경쟁은 한국 미디어 산업이 얼마나 성장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원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콘텐츠다. 많은 국민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방송은 공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중계권은 공공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지배력의 문제가 되었다.
누가 확보했는가가 중요했고, 얼마를 벌 수 있는가보다 누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JTBC 역시 이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기보다 규모를 과시하기 위한 ‘경쟁’에 가까웠다. 기업의 체력보다 욕망이 앞선 것이다.
물론 JTBC의 실패를 특정 경영진의 판단 오류로만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콘텐츠 산업 전체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해 왔다는 점이다.
‘성공의 언어’에 가려진 위기의 그림자
JTBC는 한국 미디어 산업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공 신화였다. 종합편성채널 출범 초기만 해도 회의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JTBC는 보도, 예능, 드라마 분야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SKY 캐슬>,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히트작을 배출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입증했고, 기존 지상파 방송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업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성공은 더 큰 투자를 요구했다. 성공한 방송사는 더 많은 콘텐츠를 제작해야 했고, 더 큰 시장을 확보해야 했으며, 더 비싼 중계권 경쟁에도 뛰어들어야 했다.
이러한 선택은 JTBC만의 판단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콘텐츠 산업 전체는 규모의 확대를 발전으로 간주해 왔다. 제작비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했고,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물론 정부와 언론까지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K-콘텐츠의 수출액이 늘었다는 소식, 넷플릭스 비영어권 순위에서 한국 드라마가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 해외 시장 진출 성과는 언제나 ‘국가적 자부심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콘텐츠 산업을 지나치게 ‘성장의 언어’로만 설명해 왔다.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들은 사라졌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면 누가 이익을 얻는가. 플랫폼과 제작사, 방송사 사이의 수익 배분은 공정한가. 창작자의 노동환경은 개선되고 있는가.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지속가능한가. 지역 방송과 독립 제작사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늘 글로벌 순위와 수출 실적에 가려졌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콘텐츠 산업이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지금이 오히려 국내 미디어 산업이 가장 불안정한 시기라는 점이다.
K-콘텐츠는 세계를 휩쓴다고 하지만 방송사는 적자를 걱정한다.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고 하지만 제작 현장은 과로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린다. 콘텐츠 수출은 증가했지만 국내 광고 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성장의 과실과 성장의 비용을 전혀 다른 곳에 배분하고 있다는 의미다.
더 비판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는 콘텐츠 산업을 육성한 것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을 금융화했다. 콘텐츠는 더 이상 문화적 가치의 산물이 아니라 투자 자산이 되었다. 작품은 콘텐츠 IP로 불리고, 창작자는 투자 수익률의 일부로 취급된다.
정책 역시 산업 규모 확대와 투자 유치에 집중되었다. 문화정책은 점점 산업정책으로 대체되었고, 공공성은 경쟁력이라는 단어 뒤로 밀려났다.

시장 논리 적용 vs 정부 지원론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서 한국 사회는 두 가지 극단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시장 논리에 맡기자는 주장이다. 사업자가 너무 많으니 경쟁력을 잃은 곳은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방송 시장은 과잉 경쟁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방송을 일반 기업처럼 취급하는 순간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은 훼손된다. 시장 논리만 적용한다면 지역방송과 독립언론은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 지원을 주장한다. 콘텐츠 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이므로 방송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JTBC의 위기가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무리한 확장 전략의 결과라면 왜 그 비용을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구조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더욱 불편한 질문도 있다. 만약 JTBC가 지금과 다른 정치적 위치에 있는 언론사였다면 과연 같은 수준의 지원론이 나왔을까.
한국 사회에서 언론은 경제적 주체라기보다 정치적 주체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사람은 JTBC를 진보 매체로 보고, 어떤 사람은 중앙일보 계열의 보수 매체로 본다. 결국 방송사의 생존 문제조차 정치적 진영 논리로 해석된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정부가 미디어 다양성을 이유로 특정 언론사를 지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균형’ 때문이 아니라 ‘공론장의 다양성’이라는 원칙 때문이어야 한다.
만약 특정 진영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지원한다는 논리가 허용된다면, 이후에는 모든 언론사가 정치적 대표성을 내세워 지원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언론 독립성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성장주의’를 대신할 ‘질적 발전’은
JTBC 사태는 세 가지 신화의 붕괴를 보여준다. 첫째는 경영 신화다. 성공한 오너와 경영진은 시장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성장 신화다. 더 큰 투자와 더 높은 순위가 미래를 보장한다는 믿음이다. 셋째는 K-콘텐츠 신화다. 글로벌 성공이 곧 산업의 건강성을 의미한다는 믿음이다.
JTBC는 그동안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공 사례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성공의 뒷면이다. 화려한 성장 서사 뒤에 가려졌던 재무적 취약성, 과도한 투자 경쟁, 플랫폼 의존 구조, 그리고 공공성의 약화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JTBC 사태의 본질은 한 방송사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콘텐츠 산업이 오랫동안 외면해 온 질문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어떻게 더 성장할 것인가”를 물어왔다.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그 성장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성장 이후에도 산업은 지속가능한가”.
JTBC 사태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이번 위기의 가장 불편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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