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긴 국가
[박미숙의 플랫폼미디어 비평]
- 개인에게 전가된 역사적 책임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은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국가가 친일 청산에 실패한 역사적 과오가 뒤늦게 표출된 사건이다.
- 국가의 구조적 방치 이승만 정부부터 이어진 국가의 친일 세력 보호와 이후 정부들의 불완전한 청산 노력이 오늘날 역사적 심판을 개인의 연좌제적 비난으로 변질시켰다.
- 본질적인 책임 소재 친일 청산의 본질은 후손에 대한 개인적 공격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친일 행위를 기록하고 불법적 유산을 환수하며 해방 이후 친일 세력의 권력 재편 과정을 밝히는 데 있다.
배우 하영이 괜히 증조부를 들먹였나
배우 하영의 증조부를 둘러싼 친일 논란은 한 연예인 집안의 문제가 아니다.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국가의 역사적 실패가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뒤늦게 드러난 사건이다.
비판의 중심에 서야 할 대상은 조상을 선택할 수 없었던 후손이 아니라, 친일 세력을 보호하고 그 책임을 방치한 국가다.
하영은 2026년 8월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 한국에서 병원을 개원한 최초의 의사였다”고 소개했다. 방송 제작진도 그가 ‘고종을 치료한 인물’이라고 자막으로 설명했다. 하영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인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도 공개했다.
방송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록이 확인됐다. 대정친목회는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인정하고 ‘내선융화’를 추구한 단체로 평가된다. 하영 측은 처음에는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관련 기록을 확인한 뒤 입장을 바꾸고 사과했다.
충분한 확인 없이 의혹을 부인한 대응은 비판받을만 하다. 조상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면 그 이면의 역사도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나 증조부의 행적을 이유로 하영의 배우 활동을 공격하거나 작품에서 배제하려는 것은 친일 청산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수행하지 않은 역사적 심판을 후손 개인에게 대신 가하는 연좌제에 가깝다.
왜 친일행위자 기록이 연예 프로로 알려지나
정작 문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왜 친일과 관련된 기록이 한 연예인의 예능 출연을 통해서야 사회적 쟁점이 됐느냐’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고 기록하며 교육하는 일은 가족이나 연예기획사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국가가 해야 할 조사를 시민과 언론이 대신하고, 정부가 세워야 할 판단 기준을 여론이 대신 만들고 있다.
친일 청산의 실패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정부가 친일 세력을 새로운 국가의 통치 기반으로 선택한 결과였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 행위자를 조사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방해했다. 1949년에는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조사관들을 체포하고 특경대를 무장 해제했다. 국가가 친일 행위자를 처벌한 것이 아니라 친일 행위자를 조사하던 국가기관을 국가의 공권력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 청산을 못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국내 정치 기반이 약했던 정권은 행정 경험과 경찰력, 지역 조직을 보유한 친일 세력을 필요로 했다. 일제에 충성했던 경찰과 관료, 군인과 지식인은 반공주의자로 간판을 바꿔 달고 대한민국의 권력기관으로 이동했다. 그들에게 해방은 처벌의 순간이 아니라 소속을 바꾸는 절차에 불과했다.
국가는 배신을 보상했다
그 결과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권력과 재산, 학력과 인맥은 해방 이후에도 유지됐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은 가난과 감시 속에 살아야 했지만, 친일 세력은 국가기관과 정치권, 경제계와 교육계의 지배층으로 살아남았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식민 권력에 협력한 사람은 재산과 지위를 물려주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는 청산의 실패를 넘어 국가가 배신을 보상한 결과였다.
이후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재권력은 반공과 경제개발을 내세워 친일 문제를 봉인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는 진상규명위원회와 재산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이미 수십 년이 흐른 뒤였다. 자료는 사라졌고 관련자는 사망했으며 재산은 여러 차례 상속되거나 처분됐다. 수십 년 동안 방치한 역사를 몇 년짜리 한시적 위원회에 맡긴 것은 뒤늦은 수습이었을 뿐 완전한 청산이 아니었다.
국가는 친일 청산을 요구할 때마다 ‘사회 통합’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지 않은 통합은 화해가 아니라 은폐다.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미래로 가자는 말은 가해 세력에게 과거를 지울 시간을 주자는 뜻이었다. 국가는 갈등을 피한 것이 아니다. 책임을 다음 세대로 미뤘고, 그 결과 사회는 지금도 같은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분노한 대중이 국가 일을 대신하나
오늘날 친일 논란이 발생하면 국가는 뒤로 물러나 있고 대중만 개인을 향해 분노한다. 국가는 행적을 완전하게 조사하지 않았고, 부당한 재산을 충분히 환수하지 않았으며, 역사교육에서도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 어떻게 권력을 유지했는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논란이 생길 때마다 후손 개인이 해명하고 사과하도록 방치한다.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에게 역사적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또다시 청산을 미루고 있다.
물론 후손이 조상의 명성과 지위를 공개적으로 내세웠다면 그 형성 과정에 대한 질문도 감당해야 한다. 확인된 기록을 부인하거나 친일 행위를 미화하는 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판의 대상은 혈통이 아니라 현재의 말과 행동이다.
친일 청산은 후손을 공격하는 일이 아니다. 친일 행위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식민지 협력의 대가로 축적된 재산을 환수하며,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 국가권력으로 재편된 과정을 밝히는 일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개인을 사회적 심판대에 세우는 것은 청산이 아니라 책임 전가인 것이다.
하영 논란에서 따저야 할 것은 “왜 그런 증조부를 두었는가”가 아니다. “왜 대한민국 정부는 80년이 지나도록 친일의 역사와 유산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는가”다.
하영 측의 성급한 대응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친일 청산에 실패한 책임까지 하영 개인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친일의 책임은 친일 행위자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처벌하지 않고 보호했으며, 이후에도 청산을 미룬 책임은 대한민국 정부에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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