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축제? 박진영과 최휘영의 축제?
- 대기업 중심의 구조적 한계 정부와 4대 연예기획사가 추진하는 ‘패노메논’은 K-컬처 전체를 위한 축제라기보다, 대형 기획사의 세계시장 확대를 공공 예산으로 지원하는 성격이 짙다.
- 불투명한 공사(公私) 경계와 이해충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은 민간 대기업이 가져가면서 위험은 공공이 부담할 우려가 있으며, 정부 위원회 책임자와 기획사 관계자가 겹치는 이해충돌 논란도 존재한다.
- 주체성 상실과 생태계 외면 ‘팬덤’을 진정한 축제의 주체로 끌어올리기보다 소비 자원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으며, 대형사 위주의 판 짜기는 중소 기획사와 다양한 창작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어 정책의 정당성에 문제가 적지 않다.
한국판 ‘코첼라’를 만들겠다는 구상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의 콜로라도 사막 내 코첼라 밸리에서 매년 봄에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음악 페스티벌이다.
미국에 코첼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패노메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최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진하기로 했다는 대형 K-컬처 축제다. 2027년 서울에서 공연과 시상식을 열고, 2028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코첼라와 그래미에 버금가는 행사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패노메논(FANOMENON)’은 팬(Fan)과 현상(Phenomenon)을 합친 말이다. K팝 팬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 현상을 만든 주체’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팬덤에 상을 주고 가수가 대신 받는 시상식도 구상하고 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팬미팅과 제작발표회, 영상 상영, 게임 공연과 산업 토론회를 열어 K팝을 넘어 K-컬처 전체가 모이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는 출입국과 안전 관리, 해외 홍보를 지원하고 민간 기업은 기획과 운영을 맡는다. 행사 기간 외국인 관광객 20만 명을 포함해 52만 명을 유치하고 약 1조 원의 경제효과를 내겠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팬도 좋고 기업도 좋으며 관광산업에도 도움이 되는 행사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돈을 대고, 대기업이 이익을 갖는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문화축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솔깃한 제안이기는 하다. 그러나 축제가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좋은 문화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행사를 설계하고, 공공의 지원으로 누가 이익을 얻느냐 하는 관점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패노메논의 취지와 실제 사업 구조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패노메논의 중심에는 하이브·SM·JYP·YG 등 4대 연예기획사가 있다.
이들은 합작법인을 세워 행사의 기획과 운영을 주도할 예정이다. 이미 자본과 유통망, 지식재산권과 해외 진출 경로를 장악한 이들 기업들은, 이를 통해 정부의 행정과 예산 지원까지 받게 되는 셈이다. K-컬처 전체를 위한 축제라기보다, 대형 기획사의 세계시장 확대를 국가가 지원하는 사업에 가깝다.
정부는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협력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민간은 문화산업 전체가 아니라 네 개의 대기업뿐이다. 수많은 중소 기획사와 독립 음악인, 공연 노동자와 지역 창작자는 사실상 의사결정 구조 밖에 있다.
이들에게 일부 참여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기업이 설계한 행사에 출연하는 것과 행사의 방향 및 수익 배분을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4대 기획사가 함께 움직이면 출연진과 공연장, 후원사와 해외 진출 통로까지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는 협력을 넘어 시장의 관문을 장악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공익을 보태겠다면, 이미 힘을 가진 기업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중소 기획사와 독립 창작자의 참여권부터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닌가.
박진영 ‘이해충돌 문제’는 어떻게 해소하나
‘공적 예산’과 ‘사적 이익’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박진영 위원장은 행사가 지속되려면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익성과 공익성을 함께 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익성이 충분하다면 대형 기획사들이 직접 투자하면 될 일이다.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면 지원 규모와 수익 배분, 손실 책임을 시민에게 공개하는 게 맞다. 이를 공개하며 진행할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
사업이 성공하면 기업은 입장권과 후원, 상품 판매와 지식재산권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반대로 흥행에 실패하면 정부가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있다. 이익은 민간이 가져가고 위험은 공공이 부담하는 구조라면, 패노메논은 문화 지원이 아니라 대기업 지원에 다름아니다. 방문객 52만 명과 경제효과 1조 원을 홍보하기 전에, 돈의 흐름과 책임의 소재부터 밝혀야 한다.
박진영의 위치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는 정부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이면서 연예기획사 JYP를 만든 핵심 산업 관계자다. 그가 추진하는 정부사업에 JYP가 포함된 합작법인이 참여한다. 이는 개인의 선의를 의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정책은 선의가 아니라 절차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사업 결정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는 배제되어야 하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닌가. 이를 배제할 장치가 있는지, 또 독립적인 심사와 감시가 이뤄지도록 투명하게 공개할 장치가 있는가.
팬을 주체로 대하겠다는 취지가 분명한가
팬을 대하는 방식에도 모순이 있다. 해외 팬들은 번역과 홍보, 음반 구매와 온라인 투표를 통해 ‘K팝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수많은 일을 팬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K팝의 세계적인 성공은 팬덤의 노동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면 팬을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상을 만들어 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팬들도 행사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가. 입장권 가격과 좌석 운영에 의견을 낼 수 있는가. 팬덤의 이름으로 얻은 수익은 팬 공동체에 돌아가도록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팬이 만드는 현상’이라는 이름은 홍보 문구에 불과하다. 팬의 노동과 충성심을 다시 관광과 소비로 연결한다면 팬은 주체가 아니라 산업 자원일 뿐이다.
‘한국 문화’ 독자성 강조하면서 행사는 미국식으로?
방문객 수와 경제효과를 앞세우는 태도 역시 이 사업의 성격을 보여준다. 문화의 가치보다 관광객과 매출이 먼저다. 창작자의 권리와 노동환경, 음악의 다양성보다 돈이 되는 국가 상품을 키우는 데 정책의 목적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문화가 시민이 만들고 향유하는 공공재가 아니라, 기업이 판매하고 국가가 수출하는 상품으로 축소된다면 그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한국판 코첼라’와 ‘한국의 그래미’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낡았다.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말하면서 성공의 기준은 여전히 미국의 권위와 규모에서 찾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코첼라보다 큰 행사가 아니다. 창작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대형 기획사에 속하지 않은 음악인도 관객을 만나며, 지역 문화와 다양한 장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다.
패노메논의 취지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팬을 존중하고 K-컬처의 세계적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취지가 불투명한 사업 구조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정부 예산과 합작법인의 지분, 수익 배분, 출연자 선정 기준, 중소 기획사의 참여 비율과 이해충돌 방지책부터 공개해야 한다.
패노메논이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는 이름이나 구호가 아니라 돈과 권한의 흐름이 말해 줄 것이다. 팬이 이름만 빌려주고 대형 기획사가 결정권과 수익을 가져간다면 팬덤의 축제가 아니다. ‘문화의 세계화’를 명분으로 국가와 대기업이 함께 차린 거대한 놀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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