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탱크 사이, 스타벅스의 이중성?

스타벅스와 정용진 신세계 회장.
스타벅스와 정용진 신세계 회장.
  • ‘제3의 공간’으로서 오염 스타벅스가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과시적 극우 정치 퍼포먼스와 온라인 일베류 문화의 ‘우리 편 브랜드화’ 소비를 방치하며, 누구나 쉬어가던 중립적 공간의 정체성을 잃었다.
  • 글로벌 본사 ‘ESG경영의 위선’ 미국에서는는 다양성과 인권을 외치며 진보적 이미지로 돈을 벌고, 한국에서는 탱크데이 같은 군사주의 마케팅과 정치적 논란을 묵인하는 스타벅스 본사는 철저한 ‘이중적 ESG’ 경영을 보여준다.
  • 정용진과의 결별 요구 총수 개인의 취향과 정치적 욕망이 브랜드 전체를 잠식하는 한국 재벌 문화의 병폐를 끊어내고 스타벅스가 진정성을 증명할 유일한 길은 ‘정용진과의 결별’뿐이다.

스타벅스의 이중성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은 이벤트 하나가 부적절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글로벌 브랜드가 어떻게 정치화되고, 기업 총수의 개인적 세계관이 어떻게 소비문화 전체를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은 ‘정용진’이라는 인물의 반복적인 정치적 퍼포먼스, Starbucks Korea(스타벅스 코리아)의 무감각한 마케팅, 그리고 Starbucks Corporation 본사의 선택적 윤리 의식이 동시에 겹쳐 드러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스타벅스는 누구나 잠시 머물 수 있는 ‘제3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금의 스타벅스 코리아는 점점 ‘특정’ 문화적·정치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공간처럼 읽힌다. 그 중심에는 정용진의 과잉된 개인 브랜딩, 논란을 ‘화제성’으로 착각하는 마케팅 문화, 극우 온라인 남성 문화와의 불편한 접점, 그리고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글로벌 본사의 ‘위선적 ESG 전략’이 함께 놓여 있다.

원래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브랜드가 아니었다. 스타벅스는 스스로를 도시적 세련됨과 글로벌 감각, 다양성과 포용의 상징처럼 브랜딩해 왔다. 미국 본사는 오랫동안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강조하는 이른바 ESG 경영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환경(Environment)은 친환경 경영과 탄소 감축, 사회(Social)는 다양성과 노동권, 공동체 책임, 지배구조(Governance)는 기업 운영의 투명성과 윤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돈만 잘 버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이다.

문제는 한국 시장에서 이 가치들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는 데 있다. 탱크, 군사주의, 남성적 전투 감각을 놀이처럼 소비하는 이벤트는 스타벅스 스스로 내세워 온 브랜드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해왔다.

미국에서 인권과 다양성을 말하는 스타벅스가 한국에서는 정치적 양극화와 젠더 갈등을 자극할 수 있는 감각을 아무렇지 않게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스타벅스가 말하는 ESG는 ‘진짜 철학’인가, 아니면 시장별로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마케팅 언어’인가.

정용진의 가벼움, 위험함

정용진의 존재는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자신의 SNS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놀이처럼 소비해 온 인물이다. 멸공 논란, 특정 정치 진영을 연상시키는 표현, 과장된 남성성 퍼포먼스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딩 전략처럼 반복됐다.

문제는 이런 총수의 개인적 취향이 기업 전체의 정체성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스타벅스를 더 이상 ‘중립적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커피 브랜드가 아니라 특정 정치적 감수성을 가진 기업처럼 읽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한국 대기업 문화의 특수성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글로벌 기업 CEO들은 정치적 발언을 하더라도 기업 거버넌스와 브랜드 리스크 관리 시스템 안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한국 재벌 총수 문화는 종종 기업과 개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정용진은 자신의 취향과 기분, 정치적 감각이 곧 기업 이미지 전체를 결정한다는 데 관심이 없다. 그의 SNS 정치가 위험한 이유다. 그것은 개인 계정의 문제가 아니라 신세계 그룹 전체, 더 나아가 스타벅스 브랜드의 의미 체계를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일베를 열광하게 만드는 스타벅스 이벤트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린 것이 바로 ‘일간베스트 저장소 문화’다. 물론 스타벅스나 정용진이 직접 일베를 지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적 유희, 공격적 남성성, 반PC 감각, 조롱 중심의 놀이 문화는 이미 오랫동안 극우 남성 커뮤니티와 결합해 소비되어 왔다. 특히 ‘일베’는 단순한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라 혐오와 조롱, 냉소와 정치적 공격성을 놀이처럼 소비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스타벅스가 그 정치 퍼포먼스의 일부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스타벅스를 중립적인 커피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커피를 사는 행위 자체가 특정 문화적·정치적 태도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일부 극우 남성 커뮤니티, 특히 일간베스트 저장소 류 문화는 스타벅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멸공 논란 이후 일베류 커뮤니티에서는 스타벅스를 일종의 정치적 상징처럼 소비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스타벅스 음료와 굿즈 인증을 ‘애국 소비’처럼 올리거나, 특정 정치적 입장을 조롱하기 위한 ‘밈’으로 활용하는 게시물들이 퍼졌다.

이런 문화 코드가 ‘재미’나 ‘밈’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쉽게 정당화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 편 브랜드’처럼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발적 해프닝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축적되고 있다.

스타벅스 본사 동영상

글로벌 브랜드는 ‘상징소비’에 책임있다

글로벌 브랜드가 탱크 같은 군사 이미지를 이벤트화하는 순간, 많은 소비자들이 그 문화적 계보를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글로벌 브랜드는 단순한 인터넷 커뮤니티처럼 행동할 수 없다.

스타벅스는 특정 ‘남초’ 커뮤니티의 감각을 자극해 바이럴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세대, 성별이 함께 소비하는 공적 공간에 가까운 브랜드여야 한다. 최근의 스타벅스 코리아는 그 균형 감각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직접 일베를 지지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브랜드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집단이 그 브랜드를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가다.

그리고 글로벌 브랜드라면 그 상징 소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리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스타벅스 코리아는 그 책임을 사실상 방기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스타벅스 코리아는 오히려 논란을 관리하기보다 즐겨온 것처럼 보인다. 화제가 되면 성공이라는 식의 인터넷식 마케팅 감각, 정치와 밈을 구분하지 못하는 위험한 가벼움, 총수 개인의 과시적 SNS 정치가 결합했다. 스타벅스는 점점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 문화적 태도를 드러내는 공간처럼 변해 가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처럼 여성 소비자 비중이 높은 브랜드에서 이런 감각은 더욱 치명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와 공격적 남성성은 종종 여성혐오와 반PC 정서, 조롱 문화와 연결되어 소비되어 왔다.

이번 논란에 대해 Starbucks Corporation 본사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글로벌 브랜드는 단순히 ‘로고 사용권’만 제공하는 구조가 아니다. 브랜드 철학과 윤리 기준을 관리하는 책임까지 포함한다.

스타벅스 본사는 ‘정용진 리스크’ 읽어야

따라서 스타벅스가 정말로 일베류 문화와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해명문이 아니다.

첫째, 군사주의·남성주의 코드에 기대는 마케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둘째,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한국에서도 실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셋째, 정용진 개인의 정치 퍼포먼스와 스타벅스 브랜드를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

넷째, 특정 극우 커뮤니티가 스타벅스를 정치적 상징처럼 소비하는 현상에 대해 최소한의 거리 두기와 원칙 표명을 해야 한다.

‘탱크데이’ 논란에서 소비자들이 느낀 불편함의 본질은 단순하다. 시민들은 단지 탱크 이미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있는 과장된 남성성, 정치적 조롱 문화,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의 놀이 감각,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대기업 권력의 무책임함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스타벅스는 더 이상 커피 브랜드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 시대의 정치적·문화적 균열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끝내 스타벅스는 정용진과 결별해야 한다.

글쓴이

박미숙 대중문화 독립연구가

박미숙은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대중문화를 연구했다. 영국에서 한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동아시아학이며 세부 전공은 한국학이었다. 현재 제주도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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