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의 침묵’ 무서운지 모르는 정용진에게

[임방진의 껍질을 벗겨내는 회계] 내부통제 관점에서 바라본 스타벅스 사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 이사회의 조사·문책 기능 마비 신세계그룹의 자체 조사 결과는 스타벅스 사태가 내부 검증 마비로 일어난 참사임을 보여주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사후 진상 조사와 인적 책임을 엄격하게 추궁해야 할 ‘이사회’라는 최종 통제 기구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글로벌 표준이 규정한 이사회의 의무 엔론 사태 이후 기업 내부통제의 세계적 표준이 된 COSO 프레임워크와 사바인스-옥슬리 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CEO의 태도(Tone at the Top)를 감시하고 리스크를 통제해야 하는 법적 의무와 서슬 퍼런 책임을 지는 기구다.
  • 거수기 이사회와 총수의 방기 조직의 실패를 바로잡을 마지막 보루인 이사회마저 침묵하는 거수기로 전락시킨 것은, 결국 권한만 누리고 상법이 규정한 이사회의 엄중한 독자성과 리스크 통제 책임을 철저히 방기해 온 총수 일가의 비정상적 경영 체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COSO란?
  • 미국의 5대 회계·재무 민간 단체가 결성한 협의회(Committee of Sponsoring Organizations)의 약자. 미국이 1992년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위한 관리 지침인 ‘내부통제 통합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 그럼에도 2001년 엔론 사태가 터지자, COSO라는 표준이 있었음에도 법적 강제성이 없는 ‘민간 권고안’이었기에 엔론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막지 못했다는 자성이 있었다. 다음해 미국 정부는 강력한 기업개혁법(사바인스-옥슬리 법)을 제정하여 내부통제를 법적 의무로 못 박았다. 이와 함께 COSO는 내부통제의 글로벌 표준이 된다.

금이 간 이마트 수익의 ‘핵심기둥’

SCK컴퍼니(스타벅스 코리아)는 이마트에게 단순한 자회사가 아니다. 2025년 개별 기준 매출 3조2,380억 원, 영업이익 1,730억 원, 당기순이익 1,425억 원. 이마트가 보유한 지분 67.5%를 감안하면, 이마트 몫의 SCK 순이익은 약 962억 원으로, 이마트 연결 지배주주순이익 1305억원의 70.6%에 해당한다.

신세계그룹의 유통 사업이 정체된 지금, SCK컴퍼니는 사실상 이마트 수익구조의 핵심 기둥이다.

그 기둥에 금이 갔다. ‘탱크 데이’ 사태는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넘어 이마트 주주가치를 직접 위협하는 사건이 되었다. 선불충전금 환불 요구, 고객 이탈, 불매 움직임, 브랜드 신뢰 하락. 이 리스크들은 아직 손익계산서에 숫자로 찍히지 않았을 뿐이다. 재무적 영향의 크기는 앞으로 확인되어야겠지만, 리스크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사회

필자는 공인회계사다. 기업의 내부통제와 회계감사를 다루는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회사의 가치가 흔들리는 지금, 이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태가 불거지자 이사회와 대표이사가 아니라 정용진 그룹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대표이사는 하루아침에 해임됐고, 회장은 두 차례 직접 사과했다. 그러나, 회사의 공식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끝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외부에서 드러난 모습만 놓고 보면, 이번 대응의 전면에 선 것은 SCK컴퍼니 이사회나 이마트 이사회가 아니라 정용진 회장이었다. 대표이사 해임과 사과가 신속하게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이사회가 무엇을 보고받고, 어떤 논의를 거쳐,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판단했는지는 주주와 시장에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

등기이사가 아닌 그룹 총수의 결단은 전면에 보였지만, 회사의 공식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판단과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오너가 결정하면 이사회는 추인한다”는 구조, 이것이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서글픈 민낯이 아닐까.

최고경영자의 태도 (Tone at the Top)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내부통제 체계는 COSO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통제환경, 위험평가, 통제활동,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모니터링의 다섯 요소로 구성되는데, 이 중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통제환경(Control Environment)이다.

그리고 통제환경의 출발점은 경영진과 이사회가 만들어내는 조직 전체의 분위기, 이른바 ‘Tone at the Top(최고경영진의 태도)’이다. 최고 의사결정자들이 어떤 가치관과 태도로 회사를 운영하느냐가, 조직 구석구석의 통제 수준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실무진의 역사 인식 부재였다. 하지만 그 실무진이 왜 그런 판단을 아무런 제동 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답은 위로 올라간다. 이번 사태는 적어도 SCK컴퍼니와 그룹 차원의 Tone at the Top, 즉 최고위층의 가치 기준과 리스크 감수성이 전사수준 통제로 충분히 구현되고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통제환경이 취약하면 업무수준 통제는 형식적인 결재 절차로 전락하기 쉽다. 최고위층의 과거 언행이 조직 구성원의 사회적 민감성, 리스크 감수성, 승인 관행에 어떤 신호로 작동했는지도 점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내부통제에서 말하는 통제환경은 문서화된 규정만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실제로 받아들이는 ‘암묵적 기준’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한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신세계그룹 임원들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한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신세계그룹 임원들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는 승인

통제활동의 문제도 분명하다. 결재라인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통제가 작동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은 승인, 사회적 민감성 검토의 부재, 법무 검토 절차의 생략은 모두 통제가 형식적으로 존재했을 뿐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신호다. 내부통제에서 중요한 것은 결재 단계의 숫자가 아니라, 각 단계에서 무엇을 검토했고 어떤 위험을 걸러냈는가이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통제에서 위험평가와 모니터링의 최정점에 있어야 하는 기구는 이사회,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다. 이사회는 중요한 리스크가 현실화되었을 때 독립적으로 상황을 평가하고, 주주에게 설명할 의무를 진다.

들리지 않는 이사회의 목소리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공식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회사의 핵심 수익원이 브랜드 위기에 처했는데도 이사회가 침묵한 것은 단순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이사회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것에 가깝다.

물론, 이사회가 침묵한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배주주가 이미 나서서 해임과 사과를 직접 처리했다. 이사회가 별도로 입장을 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과 관행 자체가 문제다.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이사회라면 달리 움직여야 했다. 사태의 재무적 영향을 점검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의 어느 단계에서 이 기획이 걸러지지 않았는지 조사하고, 그 결과를 주주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런 이사회가 있었다면, 지배주주가 등기이사도 아니면서 전권을 행사하는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실패가 겹쳐 있다. 하나는 역사적 감수성의 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지배구조(거버넌스)의 실패다. 전자는 사과로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후자는 결코 사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용진 회장이 사과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그룹의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과와 책임은 다르다. 사과는 여론을 향한 행위지만, 책임은 회사의 기관이 절차와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다.

구호에 거쳐선 안되는 밸류업

기업가치는 사과문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사회 의사록,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보고, 내부통제 개선계획, 위험평가 결과, 주주에 대한 설명으로 지켜진다.

이번 정부 들어 상법 개정을 비롯해 자본시장 선진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논의가 활발하다. 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본시장 선진화는 법 조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회사의 중요한 위험 앞에서 이사회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공식 직책과 책임을 지지 않는 실질 권한자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 전면에 서고, 이사회가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밸류업’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8 첨부파일도 안 열어보고 결재하는 대기업에서... 내부통제는 무슨?
글쓴이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겸 세무사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 세무조정 업무뿐 아니라 실사, 경영진단, 가치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미국 교환 근무후 귀국해 SOX 404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및 내부통제 관련 컨설팅 업무를 했다. 2008년부터는 IFRS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으며, 2010년이후 KDB생명보험, ING생명에서 기획관리실장과 재무부문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회계와 세무, 기업구조조정, 경영기획 및 관리, 금융·보험상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무지침서를 출간하고 강의로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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