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의 엄중함’을 모르는 정용진에게

사과하며 난감을 표정을 짓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TV
사과하며 난감을 표정을 짓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TV
  • 권한 없는 총수의 전횡 정용진 회장은 스타벅스나 이마트의 등기이사가 아님에도 대표이사를 전격 경질하며 법 위에 군림했으나, 이는 상법상 권한이 없는 ‘미등기 오너’의 전형적인 책임 회피이자 ‘지배구조의 착시’일 뿐이다.
  • 주주 희생과 오너가 보수 이마트가 순이익률 1%, PBR 0.2배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주주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와중에도, 미등기 총수 일가 3인은 주총 승인을 패싱한 채 이사회 보상위원회 권한만으로 95억 원의 고액 보수를 수령했다.
  • 개정 상법의 엄중한 심판 지난해부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시한 개정 상법이 시행 중이므로, 독립적 판단 없이 총수의 지시를 그대로 추인한 등기이사들과 업무를 지시한 정 회장은 배임죄와 주주대표소송 등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 칼럼의 요약본을 들어보세요

대표이사 해임할 수 있다는 ‘착각’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데이’ 사태의 파문이 커지자 손정현 대표이사를 전격 경질했다. 그리고 직접 사과를 하겠다며 공식 석상에 나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자칫 착각에 빠지기 쉽다. 모든 책임을 다 진다는 선언을, 모든 권한이 그에게 있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착시’다.

자연인 정용진은 친구나 후배에게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른다. 사교계 친구들 골프모임처럼 생각한다면. 그러나 회사는 법이 있다. 무서운 법, 바로 상법이다.

신세계그룹의 지배구조와 족벌경영의 전근대적인 방식을 들여다보자. 정용진 회장은 공식적으로 보유한 것이 두 가지에 불과하다. 하나는 이마트 지분 28.56%, 그리고 신세계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이다. 이 중 회장 직함은 법적 직함이 아니다. 그룹 내 임직원들끼리 부르는 관행적 호칭일 뿐이다. 경영자로서 정 회장의 법적 권한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마트 지분 28.56%뿐이다.

미등기 임원인데 95억원 보수받아

정 회장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의외로 많다. 가장 먼저 그는 스타벅스 코리아(법인명 SCK컴퍼니)에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지분 제로(0)다.

게다가 스타벅스는 물론이고 모회사인 이마트의 사내이사(등기임원)조차 아니다. 이사회에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구성원도 아니고, 이사회에 관여할 상법상 권한 역시 없다.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실제적인 주요 결정을 다 내리는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정작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미등기 오너의 전형이다.

그에겐 이런 행동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부모인 이명희·정재은 부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신세계그룹을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지분을 모두 증여하고도 ‘총괄회장’으로 상근하는 이명희 씨나, ‘명예회장’ 직함을 가진 정재은 씨 모두 이마트와 신세계의 상근 미등기 임원이다. 매달 출근하며 최고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등기이사는 맡지 않아 법적 책임의 칼날을 피해 가는 해괴한 구조다.

이건 일종의 기만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밝힌 이마트의 지난해 성적표를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지난해 이마트의 순이익률은 단 1%, 자기자본이익률(ROE) 역시 1%에 불과했다. 기업 가치는 장부상 청산가치의 5분의 1 토막인 PBR 0.2배로 주저앉아 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회사는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준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데, 이마트 보상위원회는 정용진 회장의 보수를 전년 대비 무려 58%나 인상해 주었다. 그 결과 정 회장 58.5억 원, 이명희 회장 18.4억 원, 정재은 회장 18.4억 원으로, 총수 일가 3명이 이마트 등에서 수령한 보수만 총 95억 원에 달한다.

이 보수는 모두 이들이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주주총회의 엄격한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내 보상위원회의 거수기 승인만으로 지급됐다.

임기 남은 손정현 대표이사가 요구하면

이까지는 일반 주주들이 피해라고 거의 느끼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심각성이 달라진다. 우리 상법 제385조는 이사의 임기를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임기 만료 전에 이사를 해임하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회사는 그 이사에게 잔여 임기 동안 받을 수 있었던 급여와 상여금 전액을 ‘손해배상’으로 물어내야 한다.

만약 손정현 대표의 임기가 남아있는데 정 회장이 독단으로 강제 경질한 것이라면, 스타벅스 코리아는 손 대표에게 남은 임기만큼의 수억~수십억 원의 돈을 물어줘야 한다. ‘오너’ 때문에 빚어진 일을 손 대표이사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스타벅스 코리아 법인이 막대한 손해배상 비용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최대주주인 이마트의 피해이기도 하다.

자본시장에서는 이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결국 손 대표에게 ‘거액의 위로금’과 ‘고문 자리’를 약속하는 식의 ‘자진사퇴서 받아내기’로 수습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 역시 적법한 이사회의 결의 없이 오너가 결정했다면 명백한 ‘위법적 업무 관여’다.

'탱크데이' 사태이후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든 스타벅스 매장. 사진= 연합뉴스
‘탱크데이’ 사태이후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든 스타벅스 매장. 사진= 연합뉴스

스타벅스 코리아 이사들의 배임행위

결국 정 회장의 지시를 앵무새처럼 받아 적은 스타벅스 코리아의 이사들이 문제다. 이사들은 오너의 돌출적 경질 지시가 회사에 부당한 손해배상 비용이나 위로금 지출을 발생시킬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너’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독립적인 판단 없이 그대로 했다면, 회사에 피해를 끼친 ‘선관주의 의무’ 위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이와 대비되는 의미 있는 이사회의 반란이 있었다. 지난 2월 초 최태원 SK회장의 사촌 형이자 횡령·배임으로 실형을 살았던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복귀하려 하자, 이사회에서 반대와 기권표가 쏟아다.

이문영 사외이사(덕성여대 교수)는 “보상 구조에 대한 추가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오너 복귀에 반대표를 던졌고, 장근배 사외이사(한동대 교수)는 “역할의 범위와 영향에 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며 기권했다. 오너의 복귀가 상법의 정신과 충돌한다는 이사회의 독립적 브레이크였다. 결국 최신원 씨는 보수를 받지 않고 명예회장 역할을 수행하기로 하며 굴복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이사회 멤버들 역시 마땅히 반대했어야 했다. 이곳 이사회는 해임 당사자인 손정현 대표를 제외하면, 신동우 상무(신세계 전략실)와 장재훈 전무(이마트 가치경영실)가 사내이사로 있다. 하지만 이들 뒤에는 2대 주주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 측 인사인 옹충생 임원과 림지용 GIC 코리아 대표가 기타비상무이사로 버티고 있다.

신세계 측 사내이사가 아닌 외국인 주주 측 이사 2명이 “정당한 사유 없는 해임은 계약 위반 소송과 회사 자금 유출을 낳는다”며 상법상 배임 책임을 거론하며 제동을 걸었다면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등기이사 아니어도 오너가 져야할 ‘연대책임’

현행 상법 제401조의2(업무집행관여자의 책임)는 정용진 회장처럼 ‘등기이사가 아니면서 사실상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총수’를 제어하기 위해 존재한다.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사에게 업무집행을 지시한 자는 그로 인해 회사나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상법상 등기이사와 똑같은 연대책임을 지라는 경고다.

이번 사태는 정 회장의 명백한 업무 관여다. 이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고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한다면, 그는 이 조항에 의해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가 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엄연한 법적 현실이 있다. 자본시장은 지난해 7월부터 “이사는 회사및 주주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개정 상법(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충실의무의 대상에 ‘주주’가 포함된 것이다. 신설된 제2항에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라고 이중 장치까지 걸었다.

그럼에도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는 여전히 ‘이사는 회사만을 위하면 될 뿐, 일반 주주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어도 된다’던 구(舊) 상법 체제의 낡은 착각 속에 갇혀 있다. 처벌의 두려움 없이 권한을 휘두르며 이사회를 마비시켰다.

하지만 법이 바뀐 지금, 이사회가 독립적인 판단 없이 총수의 지시를 그대로 추인해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등기이사들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으로 배임죄 처벌과 주주대표소송의 법적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개정 상법 체제 하에서 이사회의 모든 발언과 결의는 의사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주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스타벅스 이사회 의사록에 ‘정 회장의 지시’로 적히면 정 회장이 업무집행관여자 책임으로 엮이고, ‘자발적 해임’으로 적히면 의사록 허위기재 및 부실공시의 사법 처리가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사들이 직접 ‘개인 과태료’ 제재를 받게 된다.

정용진 회장은 대중 앞에서 영웅적인 책임을 떠안는 시늉을 했지만, 상법의 잣대로 본 그의 본질은 권한 없이 전횡을 휘두르고, 비용은 주주에게 전가한 미등기 총수일 뿐이다.

오너들 머리 속에 없는 ‘상법의 무서움’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진실은 더 있다. 정 회장은 상법의 조항들을 뻔히 알면서 주주들을 속이기 위해 이런 기만극을 벌인 것이 아닐 것이다. 거의 모든 총수들이 그렇듯, 그의 세계관 속에는 애초에 ‘상법이 규정한 법적 의무’나 ‘일반 주주의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인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주주들이 위임한 신임에 보답하는 신성한 의무라는 사실을, 그는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너’라는 절대 권력에 취해 법 위에 군림해 온 재벌가에게, 상법이란 그저 귀찮은 요식행위에 불과했을 터다.

그러나 상법은 총수 일가가 가업 번창을 위해 뒤를 봐주는 비서실이 될 순 없다. 자본을 대고 위험을 감수한 수많은 일반 주주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권한을 휘두르는 자에게 반드시 그만한 법적 책임을 지우기 위해 존재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인 것이다.

우리가 이미 지난해 7월 시행된 상법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조항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전에 엄연히 박혀 작동 중인 이 법조문은 총수의 안중에도 없던 상법을 실질적인 법적 구속력으로 작동하게 해 그의 독단적 전횡을 견제하는 제도적 보루가 되어야 한다. 개정 상법의 정착을 위해 금융감독당국, 세무당국도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던 정용진 회장에게 현행 상법의 이름으로 ‘진짜 책임의 무게’를 가르쳐주는 것, 그리고 오너의 그늘에 가려 법을 망각한 거수기 이사회를 바로잡는 것. 그것이 지금 스타벅스와 이마트의 주주들을 넘어, 이 전근대적인 재벌 자본주의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눈 뜨고 접근해야 할 진짜 본질인 것이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2:02 “모든 책임은 나에게?” ‘상법의 엄중함’을 모르는 정용진 회장에게!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