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따뜻했고, 우리는 항상 행복했다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로 국민의 사랑 받아 좋은 작품과 연기 인생의 영예까지 누린 67년

향년 87세의 일기로 29일 별세한 국민배우 최불암.
향년 87세의 일기로 29일 별세한 국민배우 최불암.
  • 행복한 배우의 67년 최불암은 좋은 작품과 배역, 가족과 동료의 사랑을 누리며 연기자로서 명예와 보람을 쌓았다.
  • 우리에게도 행복했던 시간 ‘수사반장’에서는 정의의 위안을, ‘전원일기’에서는 가족과 이웃의 따뜻함을 선물하며 한 시대의 사랑을 받았다.
  • 사랑을 나눈 삶 아동 후원과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이웃의 삶을 보듬은 그는 배우로서 행복했고, 그를 사랑한 우리도 행복했다.

국민 아버지, 세상을 따뜻하게 했다

국민배우, 국민아버지 최불암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67년 동안 배우로 살아온 그의 삶은 어쩌면 배우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인생이었는지 모른다. 좋은 작품과 좋은 동료를 만났고, 가족의 사랑과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연기자로서 오래도록 기억될 배역을 남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상과 영예도 누렸다.

그가 행복한 배우의 삶을 살았다면, 우리 역시 그를 보며 행복했다. 그의 연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믿고, 가족과 이웃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1955년 서울 명동에 주점 ‘은성’을 열었다. 은성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었다.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박봉우 등 시인과 문인, 김환기 같은 화가들이 드나들던 명동의 유명한 문화 사랑방이었다.

어린 최불암은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삶과 이야기를 접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다. 어머니가 마련한 공간은 훗날 배우 최불암의 자양분이 됐다.

MBC동영상

‘햄릿’처럼 고뇌하는 수사반장

그는 1959년 극단 실험극장의 ‘햄릿’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1965년 국립극단에 입단했고, 1967년 KBS 탤런트 공채로 방송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과 영화, TV를 오가며 쌓아온 연기 인생은 67년에 이른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히지 않았다. 형사와 가장, 정치인과 기업인, 때로는 익살스러운 인물까지 맡으며 배우로서의 폭을 넓혔다.

대중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작품은 MBC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다. 1971년 시작한 ‘수사반장’에서 그는 인간적인 형사 박영한 반장을 연기했다. 정의롭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범죄자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형사였다.

당시 시청자들은 매주 그를 통해 악을 응징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경찰의 모습을 보았다. 오늘날처럼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과 논란이 일상화된 시대와 달리, 박 반장은 우리가 경찰에게 기대했던 정의와 양심의 상징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통쾌함뿐 아니라, 사람을 함부로 단죄하지 않는 따뜻함도 있었다. 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은 든든함을 느꼈다.

어려웠던 시대의 아버지像 보여준 ‘전원일기’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출연한 ‘전원일기’는 또 다른 행복을 선물했다. 최불암은 김 회장으로 살아가며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아버지, 마을의 어른을 연기했다.

가족의 갈등을 다독이고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자신들의 아버지와 이웃을 떠올리게 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밥을 먹고, 농사를 짓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줬다. 22년 동안 일요일 저녁을 함께한 김 회장은 드라마 속 인물을 넘어 우리 곁의 친근한 어른이 됐다.

최불암 자신에게도 두 작품은 각별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던 그는 ‘전원일기’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배웠다고 했다. 가족과 마을을 품는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를 연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사반장’이 연기의 초석이었다면 ‘전원일기’는 자신을 빛나게 한 날개였다고 회고했다.

한 배우가 자신의 대표작 두 편을 이처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다. 그 작품들은 그에게 배우로서의 명성을 안겼고, 시청자들에게는 오랫동안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과 위안을 남겼다.

대중과 친밀한 거리 항상 유지해

그의 연기 인생은 두 작품에만 머물지 않았다.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등 정치 드라마에서는 이승만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고,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중년의 사랑을 보여줬다. 영화와 드라마 ‘식객’에서는 익살스러운 요리사 오숙수로 변신하기도 했다.

오랜 연기 동료 김혜자와 함께한 작품들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최불암 시리즈’라는 유머가 유행할 정도로 대중과 친숙했다. 자신을 소재로 한 농담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청소년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며 관련 저작권을 무상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받은 보상도 컸다. 그는 오랜 연기 활동을 통해 대중의 사랑뿐 아니라 연기자로서의 권위와 인정을 얻었다. 각종 연기상과 공로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최초의 민간인 명예치안정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자신이 연기한 박영한 반장이 현실의 경찰 조직에서도 기억되고 존중받은 셈이다. 배우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 사회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는 일은 흔치 않다.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사랑으로

그의 행복한 배우 인생에는 가족의 사랑도 있었다.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 아들을 뒷받침했고, 아내 김민자는 오랜 세월 곁에서 함께했다. 배우로서의 삶이 가능했던 데에는 가족의 이해와 응원이 있었다.

최불암 역시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려 했다. ‘전원일기’에서 금동이 입양 이야기를 연기한 것을 계기로 아동 후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약 30년간 활동했다. 결식아동과 실종아동, 난치병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1992년에는 제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 2025년까지 14년간 진행한 KBS ‘한국인의 밥상’은 배우 최불암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전국 곳곳을 찾아 평범한 사람들의 밥상과 삶을 들여다봤다. 연기자가 아니라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오랜 세월 국민의 사랑을 받은 배우가 이제는 전국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삶을 듣고 소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의 차분하고 정겨운 목소리는 프로그램의 일부가 됐고, 시청자들은 그와 함께 우리 땅의 음식과 사람을 만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30일 추모 메시지에서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오랜 세월 국민 곁을 지켜주신 선생님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최불암이 연기한 정의로운 형사와 따뜻한 아버지는 이제 작품 속 인물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기억으로 남게 됐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일깨워준 삶

최불암은 좋은 작품을 만났고, 좋은 배역을 얻었으며, 가족과 동료의 사랑을 받았다. 배우로서 명예와 보람을 누렸고,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이 국민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기쁨도 얻었다. 우리 역시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다.

‘수사반장’에서는 정의가 살아 있다는 믿음을, ‘전원일기’에서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함을 얻었다. 그가 화면에 나오면 반가웠고, 그의 연기를 보며 웃고 울었다. 한 배우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연기에 바쳐 우리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그는 행복한 배우였다.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우리도 행복했다. 최불암의 87년은 배우와 관객이 서로에게 행복을 선물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에게도 있었을지 모르는 슬픔을 그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민자 씨와 아들 동녘 씨, 딸 동비 씨가 있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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