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TV속 외국인

[박미숙의 플랫폼미디어 비평] ‘도라도’ 한국가요로 강렬한 퍼포먼스 전태풍의 한국적 육아 등 일상적 삶 외국인 아닌 ‘우리와 같은 한국인’ TV 중앙에 등장한 다양한 한국인들 ‘변화한 한국 사회’, 뒤늦게 반영해

싱어게인4 준우승자 그윈 도라도.
싱어게인4 준우승자 그윈 도라도.

외국인, 특이함에서 평범함으로

JTBC의《싱어게인 4 - 무명가수전》에 출연한 도라도와 SBS의《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의 전태풍은 더 이상 ‘외국인 출연자’라는 말로 따로 분리해 설명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의 단계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가장 일상적인 장면에 가깝다. 한국 텔레비전은 더 이상 단일민족 사회라는 오래된 상상력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외국인은 예외적 구경거리가 아니라, 서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사회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 텔레비전에서 외국인 출연자의 위상은 분명한 변화를 거쳐왔다. 한때 외국인은 말투와 외모 자체가 웃음의 소재였고,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거의 유일한 평가 기준이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인물들이 호감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의 외국인 출연자들은 더 이상 한국을 ‘동경하는 타자(他者)’의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예전부터 우리 옆에서 살고 있던 이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제도와 일상 속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인물로 제시된다. 도라도와 전태풍은 이 변화가 상징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JTBC《싱어게인 4 - 무명가수전》에서 필리핀 출신 도라도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 그는 한 명의 무명 가수로 출발하고, 실력과 서사, 무대의 완성도로 평가받는다.

물론 그의 국적은 이야기의 한 요소로 작동하지만, 그것이 그의 위치를 규정하는 핵심은 아니다. 그는 한국 대중가요의 정서적 문법을 공유하고,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 구조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 있다. 이 장면은 한국 음악 산업과 시청자 모두가 외국인을 이미 내부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SBS의《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에서 전태풍 역시 비슷한 위치에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그는 외국인 남편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하지만, 프로그램이 다루는 핵심은 국적이 아니라 결혼 생활, 육아, 부부 관계라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다. 그의 일상은 특별한 이국성보다는,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다문화 가정의 현실과 겹쳐진다. 외국인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가족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 변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이미 한국에는 수백만 명의 이주민이 살고 있고, 학교와 직장, 병원과 동네에서 국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텔레비전은 이 변화를 선도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분명히 그 변화를 뒤따라 반영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외국인이 더 이상 ‘다문화 특집’ 같은 예외적 기획 속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음악 프로그램, 가족 예능, 관찰 예능,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가장 대중적인 포맷 안으로 들어와 있다. 이는 외국인이 이제 설명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설명 없이도 전제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상이몽2'에 출연한 전태풍과 아내 미나 터너.
‘동상이몽2’에 출연한 전태풍과 아내 미나 터너.

TV가 ‘뒤늦게’ 받아들은 사회의 변화

다문화 사회는 더 이상 미래형 목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현실로 자리잡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가 자기 자신을 상상하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단일한 언어, 단일한 민족, 단일한 문화라는 이미지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이미 현실과 크게 어긋나 있다. 텔레비전 속 외국인의 일상화는, 이 오래된 상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물론 현재의 재현이 완전히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외국인 출연자는 대체로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한 인물로 등장한다. 문제적 인물이나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제 ‘있어도 되는 존재’’ 넘어 ‘이미 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도라도의 무대와 전태풍의 일상이 감동적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그것이 각각 한국 음악과 한국 가족 제도의 틀 안에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규칙과 언어 안에서 이야기된다. 이는 외국인이 더 이상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내부의 구성원으로 위치 지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미 변했다”

한국 문화산업의 세계화 역시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K-팝과 K-드라마, K-예능이 전 세계로 유통되는 시대에, 한국 사회 내부 역시 더 이상 닫힌 구조로 유지되기 어렵다. 외국인 출연자의 증가는 단순한 이미지 전략이 아니라, 이 산업 구조와 사회 구조가 동시에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한국 텔레비전은 외국인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개방적이다”라고 선언하는 단계보다는, “우리는 이미 이렇게 살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외국인은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이웃이다. 도라도와 전태풍 같은 인물들이 특별한 설명 없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의 정체성이 이미 크게 바뀌었음을 말해준다.

그들의 존재는 어떤 이념적 선언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변화의 결과다. 이 점에서 한국 텔레비전 속 외국인 출연자는 다문화 사회의 원인이 아니라, 다문화 사회가 이미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에 가깝다. 텔레비전은 변화를 만들기보다는, 변화를 확인하고 기록하는 매체다. 요컨대 《싱어게인》의 도라도와 《동상이몽》의 전태풍은,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하나의 얼굴과 하나의 문화로 설명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들은 “한국이 변하고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한국은 이미 변했다”는 현실의 표지다.

글쓴이

박미숙 대중문화 독립연구가

박미숙은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대중문화를 연구했다. 영국에서 한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동아시아학이며 세부 전공은 한국학이었다. 현재 제주도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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