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과학을 직업으로 산다’의 사회학
서평: 김우재 교수의 『보통과학자』 한국 과학자 ‘천재’, ‘영웅’으로 서사되지만 일상적 연구노동 수행하는 연구자들 기술관료적 체계 ‘말단 노동자’에 불과 ‘보통의 과학자’ 어떤 구조에 살고 있나? 과학의 방향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과학자는 영웅이 아니다
김우재 하얼빈공대 교수의 『보통과학자』(김영사)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과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드문 주제의 텍스트다. 한국의 과학기술 담론은 오랫동안 ‘국가 발전의 동력’이라는 산업주의적 프레임, 혹은 ‘천재 과학자의 신화적 서사’로 조직된 측면이 강했다. 과학자는 혁신의 주체, 혹은 글로벌 경쟁력을 창출하는 인재로 호명되었고, 과학 연구는 곧바로 경제적 산출물이나 국가적 위상으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김우재가 환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담론 아래 가려진 거대한 ‘보통성’의 세계, 즉 이름 없이 일상적 연구노동을 수행하는 다수의 연구자들이 겪는 구조적 현실에 대한 것이다. 책의 제목이 단적으로 드러내듯, 그는 과학 영웅의 초월적 서사가 아니라, 제도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 과학자’의 경험을 통해 과학이라는 직업의 정치사회학적 본질을 탐색한다.

과학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지 않다
이 책은 무엇보다 과학이 신화적 진리 추구의 장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이 수행되는 조직적 현장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분석을 제공한다. 김우재는 생물학자로서의 자신의 경력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연구실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국가 정책, 대학 구조, 그리고 글로벌 자본의 흐름과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연구자를 둘러싼 제도적 조건, 즉 연구비 지원 구조, 연구재단의 평가체계, 논문 중심의 업적주의, 해외 학위 선호 구조 등은 모두 과학자의 일상을 규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 책은 연구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과학이 독립적·자율적 영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여기에는 브루노 라투르, 앤마리 몰, 수잔 리 스타 같은 STS(과학기술학) 전통의 과학사회학적 통찰과도 공명하는 감각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글쓰기는 단순한 이론 적용에 머물지 않으며, 과학자의 몸과 감정과 생애가 제도적 구조에 의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경험적·문학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오랫동안 엘리트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 과학관을 유지해왔으며, 『보통과학자』는 바로 이 구조를 비판적으로 겨냥한다. 김우재는 한국의 R&D 생태계가 ‘소수의 스타 과학자’와 ‘하층 연구노동자 집단’으로 이중화되어 있으며, 실제로 과학을 지탱하는 것은 후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책의 시선은 후자를 향하지 않는다.
보통과학자는 제도적 압박 속에서 ‘투쟁중’
정부와 대학, 연구재단은 연구자에게 성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경쟁을 당연한 구조로 내면화하도록 압박한다. 논문 편수와 영향력지수가 연구의 질보다 우선시되고, 연구자의 사유와 실험의 과정을 중심에 놓는 학문적 자율성은 점점 축소된다. 이러한 구조는 연구자 스스로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으로 변환시키며, 과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행위자에게 ‘회의’와 ‘소진’을 반복적으로 안긴다. 김우재가 말하는 ‘보통 과학자’는 바로 이 제도적 압력 속에서 버티고, 때로는 낙오하고, 때로는 투쟁하는 존재이다.
책의 힘은 연구자의 고백이 곧 구조 분석으로 이어지는 방식에 있다. 김우재는 자신이 경험한 연구실 권력관계, 박사후 연구원으로서 느낀 경력적 불안정성, 연구비 확보와 논문 출판의 압박, 정규직 전환의 희박함 등을 통해 과학자의 경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낸다. 이는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제도적 실패의 증거이며, 연구자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이다. 그는 연구자들이 쓰러져가는 구조를 ‘개인의 열정 부족’으로 돌리는 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교육 시스템과 대학 구조, 연구재단의 평가 체계가 과학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서술은 사회학적 현장 연구와 자전적 글쓰기가 결합한 독특한 장르적 긴장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과학자의 노동과 감정, 그리고 제도와 권력의 작동 방식이 한 층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과학 연구를 둘러싼 권력 구조를 분석하는 대목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연구비를 둘러싼 경쟁, 학계 내부의 위계질서, 지도교수-학생 관계, 국제 학술지 중심의 평가체계는 모두 과학자가 어떤 연구를 수행할 것인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는 자기 연구의 자율성을 추구하지만, 제도는 끊임없이 그 자율성을 압축한다. 여기서 김우재는 과학자의 존재론적 갈등을 포착한다. 연구자는 ‘과학의 가치’를 믿지만, 조직은 연구자를 수치화된 성과로 평가한다. 연구자는 지식 생산을 목표로 하지만, 제도는 ‘논문 수급 시스템’으로 그들을 포섭한다. 이 모순은 과학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학문적 열망을 제도적 현실에 맞춰 조정하도록 강요한다. 김우재는 이 갈등을 단순한 개인의 적응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파악한다.
과학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보통과학자』는 또한 과학의 민주화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호출한다. 저자는 과학이 특정 엘리트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STS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과학의 공공성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냉철히 진단한다. 국가주의적 과학정책, 산업경쟁력 중심의 R&D 전략,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과학자를 기술관료적 체계의 말단 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시민사회와 연대하며, 연구 선택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자는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과학의 방향과 목적을 둘러싼 정치적 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급진적 문제제기이다.
책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과학자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다. 김우재는 과학자가 무엇을 욕망하는 존재인지, 과학자가 어떤 윤리적 감각을 유지하며 연구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과학자의 윤리가 성과 중심의 체계에서 점점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동시에 과학자의 정체성이 단순히 제도적 압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과학자가 여전히 탐구의 즐거움과 동료 연구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자율성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연구자들이 서로 의지하고, 실패와 불안을 공유하며, 실험실 안팎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할 때, 과학은 다시 공공성과 창조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의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냉소가 아니라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태도이며,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단순한 고발문이 아니라 실천적 선언문으로 만든다.
이 책의 문체가 지닌 힘은, 과학을 둘러싼 제도적 장치를 철저히 분석하면서도 인간적 목소리를 잃지 않는 데 있다. 과학자 개인의 서사, 연구실의 공기, 해외 유학의 압박, 논문 투고의 긴장, 실패한 실험을 마주한 불안감 등은 모두 과학의 사회적 조건을 재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과학을 ‘정책’이나 ‘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이 얽혀 있는 하나의 노동 세계로 이해하게 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연구자에 대한 기대와 압박이 극단적으로 결합된 환경에서는 이러한 서술이 갖는 의미가 더욱 크다. 『보통과학자』는 과학자를 추상적 엘리트가 아니라, 사회적 노동자로 재위치시키며, 그들의 감정과 몸과 시간이 제도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세심히 추적한다.
과학자를 노동자로 보는 데서 출발해야
나아가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과학자라는 직업이 갖는 계급적·문화적 위치를 재조명한다. 한국에서 과학자는 흔히 ‘엘리트’로 간주되지만, 실제로 연구자들이 마주하는 노동 조건은 불안정성과 장시간 노동, 낮은 보수, 경력 단절의 위험으로 가득하다. 김우재는 이러한 현실을 숨기지 않으며, 과학자의 계급적 위치가 신화 속에서 과대평가되어왔음을 지적한다. 그는 과학자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비판하면서, 과학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제도의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과학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오래된 관념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이자, 과학자와 시민이 함께 ‘지식의 사회’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결국 『보통과학자』는 한국 과학기술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이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사회학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텍스트이다. 저자는 과학이 더 이상 국가 경쟁력의 도구나 엘리트 서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학은 현대 민주사회에서 공공의 자원이자 사회적 협력의 산물이며, 이를 지탱하는 것은 소수의 스타가 아니라 다수의 ‘보통 연구자들’이다. 그들이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과학의 미래를 위한 기초이며, 이는 단지 과학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보통과학자』는 이런 당위적 요구를 단순한 명제나 정책 제안이 아니라, 연구자 개인의 삶과 목소리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한다.
이 책은 과학을 다시 사회 속에 위치시키려는 시도이며, 과학자의 삶을 한 명의 노동자, 한 명의 시민으로 재사유하려는 정치적 행위이다. 한국 과학기술 담론이 아직도 성장주의와 성과주의에 포획되어 있다면, 『보통과학자』는 그 틀을 깨뜨리는 강력한 균열이다. 과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초월적 영웅이 아니라, 보통의 과학자가 존중받는 사회적 생태계라는 사실을, 김우재는 자신의 삶과 노동, 그리고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사유를 통해 보여준다. 바로 이 점에서 『보통과학자』는 단순한 회고록이나 정책 비평서를 넘어, 한국 사회가 지식 노동을 어떻게 대우하고 어떤 미래를 상상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저작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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