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김석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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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어른과 꼰대 사이, KAIST 졸업식을 보는 눈
최근 KAIST 졸업식에서 “R&D예산을 원상회복하라”고 외친 박사과정 졸업생 신민기씨가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달 전 쯤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린 채 퇴장당한 사건도 있었지요. 대통령실 측에서는 매뉴얼에 따른 절차였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일부에선 그런 대통령실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시대 역행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11년 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정책 연설을 하던 중 한 학생이 끼어들었을 때 경호원들이 저지하려 하자 이를 막으며 끝까지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일화가 다시 회자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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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악마가 아니어서 더 惡한 전두광
영화 <서울의 봄>을 보러 세 번이나 영화관에 갔습니다. 누군가, 세 번을 보면서 가슴에 남는 하나의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게는 그것이 ‘책임’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유족이 청문회 때 외치던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단 한 놈만이라도, 한 놈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단 한 놈만 책임이 있다고 말해라, 어떻게 단 한 놈도 책임진다는 놈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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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거장의 선택’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은퇴작’ *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한때 흥행 1위를 기록하는 등 국내 영화 팬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바람이 분다>(2013) 이후 10년 만에 완성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21세기에도 일일이 손으로 그리기를 고집하는 애니메이터 미야자키 하야오. 오랜 시간 우리에게 기쁨을 준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의 은퇴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부터 은퇴를 선언했고 그 후 여러 번 번복해왔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작품이 ‘마지막 은퇴작’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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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왜 밤늦은 병실엔 여성들만 서성일까
얼마 전에 한 달쯤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아픈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원의 밤, 깨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이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보호자들도,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환자들도 죄다 여성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남자들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밤의 젠더적 불균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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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나는 고국을 닮아서
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국적자인 아티스트 백남준을 한국인 작가로 인지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인 2022년11월10일~2023년2월26일 사이 과천 미술관 1실과 2실, 그리고 중앙홀을 <백남준 효과>라는 제목의 전시를 위해 약 3개월간 사용했습니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책이 재외동포 예술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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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대학가 축제의 “석학님들” 모시기
대학가 여기저기에서 축제가 한창입니다. 몇 년 전 경희대 국제캠퍼스 축제에 인기가수 ‘싸이’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나는 퇴근이 늦었습니다. 늘 다니던 길인데, 그날따라 엄청난 박수갈채가 운동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인근 시민들도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대학가와 일반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린 캠퍼스’를 느끼게 하는 흥겨운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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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소셜미디어 권력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인터넷은 엄청난 ‘시공간의 압축’을 가져왔습니다. 국내의 촛불시위, 세계적으로는 환경운동이나 반테러리즘 운동 같은 지구적 규모의 이슈에 이르기까지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모바일 SNS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주체로서의 동등한 발언 기회를 제공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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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음악은 자유롭게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는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3살 때부터 피아노를, 10살부터 작곡을 배웠습니다. 도쿄예술대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1978년 <천 개의 나이프>라는 곡으로 솔로 데뷔를 한 뒤 같은 해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했으나, 1983년에 해산합니다. 그 해에 본인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마스>로 영국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수상했고 1987년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 작곡상,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그래미상 영화·TV 음악상 등을 수상합니다. 1999년 제작한 오페라 <LIFE> 이후, 환경·평화운동에 관련된 활동을 했고 숲 만들기를 추진하는 ‘MORE TREES’를 설립하는 등 많은 사회활동을 했으며 2009년 자서전 『음악은 자유롭게 한다』를 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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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문학이 ‘인류 보편적’이길 바랐던 오에 겐자부로
돌아가시기 며칠 전 술자리에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선생님 소식을 들었습니다. 출판사 관계자들도 아주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부고를 들었습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오에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방한하셨을 때 한두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동그란 안경과 단아하고 자그마하신 모습이 인상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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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왜 책을 버리지 못할까...책이라는 이데올로기
오래전, 아직 대학원생이었을 때, 일본의 프랑스 문학 연구자 니시카와 유코(西川祐子)선생님을 에스코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선생님과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니시카와 선생님은 일본에 돌아가신 후에 저서를 한 권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편지에 의외의 당부를 하셨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해 주면 좋겠습니다. 책은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읽혀야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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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나는 욕심이 있습니다”라며 웃던 윤정희
나는 좀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실수도 많이 하고, 길눈도 어둡고 잘 넘어지고 좀 똑똑하지 못 해요. 적고 보니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이 말은 배우 윤정희씨가 2010년 KBS 인터뷰(감성다큐, 2010년 4월 17일 방영)에서 했던 말입니다. 지난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배우 윤정희씨가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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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내 詩에 ‘저촉되지 않는’ 삶이란
지난 가을, 재일(在日) 시인 김시종이 광주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주관하는 제4회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몽골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 베트남 작가 바오 닌, 방글라데시 작가 샤힌 아크타르가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었죠. 올해 94세가 되는 시인은 건강 상태가 여의치 않아 귀국하지 못하고 수상소감을 영상으로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김시종 시인은 냉전의 분극 세계뿐만 아니라 국가주의와 국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이것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어떠한 틈새와 경계로부터 구획되지 않는 시적 행위를 실천해 왔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아울러 “한반도의 분단에 종언을 고함으로써 남과 북의 민주적 평화통일독립 세상을 염원하는 재일(在日) 시인으로서 정치 사회적 욕망을 미학적으로 확장한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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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카타르 월드컵 ‘8강 한일전’ 가즈아~~
한국의 16강 진출이 결정되는 순간 일본의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星野智幸)로부터 두 번째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決まった!(확정이네!)” 시계를 10분 정도 되돌려 봅니다. H조 한국-포르투칼 전은 숨막히는 게임이었습니다. 벤투 감독은 관중석에 앉아 있고 손흥민은 부상으로 배트맨 마스크를 쓰고있고…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동점으로 끝나는가 싶었던 후반전을 지나 추가시간. 후반 46분이었습니다. 손흥민이 돌파해서 들어간 볼을 황희찬이 받아 성공시킨 두 번째 골은 잠시 후, 12년 만의 16강 진출을 결정할 정말 역사적인 골이었습니다. 두 번째 골의 패스는 손흥민의 이름값을 확인한 날카롭고 아름다운 패스였다고 생각합니다. 필드를 길게 가르며 뛰어가다 잠시 멈추어 뒤쫓아오는 황희찬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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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 세계”
북방의 이누이트(에스키모)는 50여 가지의 흰색을 구분할 줄 압니다. 얼음으로 집을 짓고 얼음을 헤치며 수렵을 하는 그들에게 눈이나 얼음의 얼어붙은 정도나 상태는 그대로 생존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들의 세상이 ‘온통 하얗게’만 보이지만, 이누이트들에게는 그 하얀 얼음과 눈이 다양한 색으로 구분됩니다. 사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쓰는 흰색 물감도 티타늄화이트, 징크화이트, 실버화이트, 퍼머넌트 화이트 등 10여 가지에 이르며 그 쓰임새도 조금씩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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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문화는 어떻게 계급화될까요?
나는 이따금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인터뷰 영상을 만듭니다. 마음이 내켜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기적이지도 않고 형식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올 초에는 음악 여행가 신경아 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신경아 선생님은 『세상 끝에서 만난 음악』의 저자입니다. 이 책은 지중해 국가와 아프리카 북부의 오지를 여행하면서 박물관이 아닌, ‘지금’ 살아서 숨 쉬는 음악들을 현장에서 채록하고 그 과정에서 겪은 일화들을 엮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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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무리한 표절시비...패러디와 표절은 다르다
최근 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 이슈로 세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문체부에서는 만화영상진흥원이 “노골적으로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해서 행사 취지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더 이상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사실상 협박했죠. 공공연히 ‘자유’를 외쳐온 대통령과 현 정부를 향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반발이 뜨거워지자, 이번에는 일부 언론과 여권이 ‘표절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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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한국 사회에서 당신들은 편안합니까?”
‘포용’은 범세계적 가치입니다. UN이 제시한 17가지 사회적 가치에도 포함되는 개념이죠. 문화에도 포용이란 개념이 존재합니다. 다른 문화를 배타적으로 밀어내지 않고 공존한다는 뜻이겠지요. 한국사회에서 ‘포용’이라는 단어는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으로 정의되며 ‘감쌈’, ‘덮어줌’이라는 말과 바꾸어 쓸 수 있다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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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문화는 전파되는 걸까, 표절되는 걸까
최근에 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일본의 현대만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 후에 한 구독자로부터 재미있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일본 최초의 카툰만화 <쇼짱의 모험(正ちゃんの冒険)>과 벨기에 만화 <땡땡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의 그림체가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비교해 보니, 그림의 선이며 색채가 과연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일본만화 <쇼짱의 모험>은 1923년, 벨기에의 <땡땡의 모험>은 1929년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시간의 순서로 본다면 <땡땡의 모험>이 <쇼짱의 모험>을 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에르제는 정말 <쇼짱의 모험>을 베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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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일본 영화 최초의 키스신, 도대체 누가 넣었을까
조지 오웰의 <1984>는 최상위층인 내부당원과 중간층인 외부당원을 합쳐서 15%, 하층인 프롤이 85%로 구성된 사회를 그립니다. 주인공 윈스톤은 외부당원으로 감정을 통제하면서, 충성을 강요하는 빅브라더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남몰래 일기를 쓰죠. 그는 줄리아라는 여인과 연애를 하다 적발되어 반역자가 됩니다. 감찰기관인 ‘애정부’ 에서는 그를 죽여 순교자를 만들기보다 살려서 세뇌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101호실에서 고문에 시달리며 지속적으로 세뇌 당한 윈스톤은 결국 줄리아를 부정하고 체제순응자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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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오래 사는 이름? ‘김 수한무’와 일본의 ‘쥬게무’
영어 번역가 한 분이 이 영어 번역을 SNS에 올리며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되는 쉬운 영어’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던 문장입니다. 아마도 1970~80년대에 TV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웃음이 터지고 말 겁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구봉서 씨의 스탠딩 개그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공전의 히트였다고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개그맨 서경석· 이윤석 씨도 1993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이 작품을 재현했을 정도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