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있습니다”라며 웃던 윤정희

44년생 미자 씨, 자기 삶의 주인공 윤정희 3백편 영화에 언제나 주인공이었던 그녀 5년전 인터뷰에서 “주인공 역을 원한다”

신인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던 시절의 윤정희.
신인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던 시절의 윤정희.

나는 좀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실수도 많이 하고,
길눈도 어둡고
잘 넘어지고
좀 똑똑하지 못 해요.

적고 보니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이 말은 배우 윤정희씨가 2010년 KBS 인터뷰(감성다큐, 2010년 4월 17일 방영)에서 했던 말입니다. 지난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배우 윤정희씨가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지막에 ‘진짜 죽음’을 연기한 배우

한 시대를 대표했던 배우의 죽음은 어쩐지 현실 같지 않습니다. 수없는 삶을 살고 죽지만, 진짜 죽음은 한 번뿐이라는 걸 상기합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나는 한 사람이지만 백 명의 삶을 살 수 있잖아요. 그거 아주 재미있다구요”하며 웃던 십여 년 전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1년에 40편의 영화를 찍은 적도 있다는 전성기에는 어쩌면 자신의 일상보다 영화 속에 산 날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자체도 일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비일상적인 일상이 이어지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도, 당연하지만 삶은 한 번뿐입니다. ‘길눈도 어둡고 잘 넘어지고 좀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연습 없이 태어나 연습 없이 살아간다는 실존적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였지만, 기꺼이 남편과 딸을 위해 음식을 하고 집안일을 했다는 대배우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영화 <신궁>에서 서늘하고 철저한 연기를

윤정희씨는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후 광주에서 성장, 전남여고와 우석대를 졸업했습니다. 1967년, 1200 대 1의 오디션을 통과하여 <청춘극장>의 주인공으로서 스크린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쉽게도 <청춘극장>은 오리지널 필름이 남아있지 않고 중국어 더빙 버전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본 윤정희 씨의 초기 작품은 <신궁>, <야행>, <안개> 등입니다.

<신궁>에서는 외딴 섬마을의 무녀 ‘왕년이’로 분하여 열연했고, 육체적인 관계에 집착하는 폭력적인 남성으로 가득한 사회를 비판한 <야행>에서는 회사원 ‘미스리’로, 김승옥 원작 <무진기행>을 영화화 한 <안개>에서는 음악교사 ‘인숙’으로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를 꼽으라면 <신궁>과 <안개>를 꼽고 싶습니다. <신궁>의 왕년이는 이름처럼 ‘왕년’에 섬마을 최고의 무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다에서 죽은 자기 남편의 넋을 끌어올리지 못하자 굿을 접어 버립니다. 그러던 왕년이가 굿판을 다시 펼친 것은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왕년이의 굿은 활을 쏘면서 마무리되는데, 몇십 년 만에 벌인 굿판에서 평소라면 형식적으로 가볍게 쏘던 화살을 정확하게 지역 유지 판수의 머리에 명중시킵니다. 쓰러지는 판수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흐릅니다. 왕년이가 서늘하게 웃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면서 영화가 끝납니다. 판수는 왕년이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죠. 영화 결말부의 반전과 별신굿 연기에서 그가 얼마나 철저한 연기를 준비하는 배우였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신궁'의 왕년이 역을 맡은 윤정희, 소설가 천승세의 소설을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신궁’의 왕년이 역을 맡은 윤정희, 소설가 천승세의 소설을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안개>는 ‘무진’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그립니다. 음악교사 인숙은 ‘심심해서’ 동네 남자들과 화투를 칩니다. 그녀를 짝사랑 하는 시인, 그녀의 집안이 볼품없어 신부감으로는 탐탁지 않지만 ‘어떻게 한 번 해볼까’고 틈을 노리는 세무서장, 그런 사람들과 함께 화투를 치던 사람들 앞에서 인숙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기도 합니다. 무진을 성공적으로 벗어나 서울로 간 남자(신성일)가 성악을 전공하신 분이 왜 그런 노래를 부르며, 그게 싫다면 왜 그 자리에 가는가를 물었을 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심심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안개>의 주제곡은, 최근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헤어질 결심>의 주제곡과 동일한 곡이고, 노래 역시 정훈희 씨가 불렀습니다. 한국영화의 도약기인 1967년에 ‘안개’라는 노래를 통하여 2022년 한국 영화의 쾌거가 예견되었던 듯도 합니다.

윤정희의 삶을 연기한 <시>

윤정희씨의 연기는 문학적인 서사가 있는 이른바 문예영화에서 더욱 빛났다고 느낍니다. 그의 마지막 영화가 <시>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윤정희씨는 대역을 쓰지 않는 배우로 유명했습니다. 청순가련 아니면 팜므파탈로 여배우의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던 시절, 윤정희의 등장은 그 틀을 크게 깨는 사건이었습니다. 온몸을 던져 연기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잡았으며 본인이 생전에 자주 말하던 대로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배우’로 남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는 배우 윤정희의 삶을 시처럼 압축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에서 윤정희는 치매판정을 받은 60대 여성 ‘미자’로 나옵니다. 그녀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처럼, 아니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에야말로 오늘을 사는 사람처럼 ‘시’를 배우러 다닙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시를 가졌다는 선생님의 말을 믿고 어떻게든 시 한 편을 남기려 애쓰는 그녀에게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재혼한 딸이 남기고 간 손자와 그의 친구들이 한 여학생을 윤간하고, 그 충격으로 그 여중생이 자살합니다. 남자아이들의 아버지와 학교 측은 이 일을 쉬쉬하며 돈으로 보상하려고 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미자는 간병하던 노인의 부탁대로 몸을 줍니다. 죄로써 죄를 씻는 슬픈 구조가 ‘시’가 되는 과정이 눈물겨운 영화였습니다.

나에게 <시>라는 영화가 가슴에 와닿은 것은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1940년생인 저의 어머니는 최근에 영어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죽기 전에 영어책 한 번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웃으시며 공책 가득 필기하신 것을 보고 삶은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정희씨는 2017년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영화는 인생을 그리는 것’이며 ‘나이가 들어서도 삶은 계속되는 것’처럼 ‘젊은이만 공감하는 영화’는 진정한 영화가 아님을 강조하고, 배우는 늙은 모습으로도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역할이어도 상관없는가’라는 질문에 아주 잠깐 입을 다물었던 윤정희씨는 “나는 좀 욕심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이으면서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2016년 9월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영화배우 윤정희 특별전'에 참석한 윤정희. 사진=연합뉴스
2016년 9월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영화배우 윤정희 특별전’에 참석한 윤정희. 사진=연합뉴스

배우의 욕심이 끝없었던 ‘우리들의 우상’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예상되는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 주인공 역할을 젊은이들에게 내어주고 빛나는 조연으로 남아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원로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러나 조연으로 빛나는 많은 원로들을 존경하고 그분들 역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노인인 배우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인식적 경계를 확장시켜주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속에는 나의 어머니와 그 세대 여성들의 애환과 열망이 공명합니다. 나는 그의 모든 인터뷰 중에서 “나는 좀 욕심이 있습니다”라는 그 말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나이가 들어 아흔이 되고 백이 되어도 언제나 당당히 현역이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아름답습니다.

‘실수도 많이 하고, 길눈도 어둡고, 잘 넘어지’기도 하는 자칭 ‘똑똑하지 못한 사람’ 윤정희는 누구보다 똑똑하게 한국 영화의 첨단에서 활약했습니다. 삼백 편이 넘는 영화를 찍으면서 한 번도 주인공이 아닌 적이 없었던 윤정희. 그의 본명은 ‘손미자’였습니다. 44년생 여성들 사이에서 80년생 지영이 만큼이나 흔했던 이름, 미자. 그의 마지막 작품 <시>의 주인공 이름도 ‘미자’였죠. 이창동 감독은 ‘‘미자라는 이름 외에는 그 어떤 이름일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미자’라는 이름이 그의 본명이었고 윤정희라는 예명조차 그리 독특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과 젠더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던 수많은 ‘미자’들의 꿈과 애환을 대표하며 스크린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윤정희 씨를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삶의 주인공이고자 했던 배우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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