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자유롭게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를 추모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음악을 찾아다닌 삶 ‘평화가 있어야 음악도 있다’는 신념 가져 “자신감이 재능”...짧은 생애 큰 울림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는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3살 때부터 피아노를, 10살부터 작곡을 배웠습니다. 도쿄예술대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1978년 <천 개의 나이프>라는 곡으로 솔로 데뷔를 한 뒤 같은 해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했으나, 1983년에 해산합니다. 그 해에 본인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 <전장의 메리 크리마스>로 영국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수상했고 1987년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 작곡상,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그래미상 영화·TV 음악상 등을 수상합니다. 1999년 제작한 오페라 <LIFE> 이후, 환경·평화운동에 관련된 활동을 했고 숲 만들기를 추진하는 ‘MORE TREES’를 설립하는 등 많은 사회활동을 했으며 2009년 자서전 『음악은 자유롭게 한다』를 간행하였습니다.
더 추억해야 할 그의 이야기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던 4월 3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망소식을 들었습니다. 향년 71세였습니다. 이 봄, 일본과 한국의 경계에서 평화의 비전을 주시던 분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납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OST로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고 한국영화 <남한산성>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영화 <마지막 사랑>의 삽입곡을 녹음하기 직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그를 불렀습니다.
“류이치, 류이치, 잠시만. 인트로가 맘에 안 들어. 당장 바꾸자.”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답했습니다.
“녹음 직전인데요? 오케스트라 40명을 불러 놓고 그건 무리죠.”
베르톨루치 감독이 말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바로 해 주던데?”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 자리에서 악보를 바꾸었고, 그 곡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바로 해 주었다는 말도, 그 말에 자극받아 정말 바로 고쳐주었다는 일화도 재미있지만, 정말 굉장한 건 30분 만에 그 작업이 가능했다는 점이겠지요.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을 다른 세상에 서 있게 합니다.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잠시 호흡이 잔잔해지고 바람 소리와 새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의 삶과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코다>를 보았습니다. <코다>에서 그는 악기의 정제된 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인간이 만든 거푸집 속에 욱여넣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악기가 노후되어 나는 소리는 그 악기가 자연의 소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소리를 모으러 다녔고 컴퓨터로 소리를 조합하는 작업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비가 오는 날 플라스틱 양동이를 머리에 쓴 채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것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묶어둔 경계들을 풀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이 데려다주는 그곳
날 때부터 음악이 천직이었을 것 같은 그는 어렸을 때 자신이 음악가가 될지 몰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은 뭐든지 마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신감은 재능’이라고요. 나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 그 자신감이 결국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워온 겸손이나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보다 백만 배는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2022년 12월의 온라인 연주였습니다. 그토록 평생을 음악 속에 살았던 사람이 음악을 할 수 없었을 마지막 몇 달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어쩌면 그가 좋아했던 영화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의 한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렸을지 모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여러 개의 언어본으로 소장했습니다. 그는 원작자 폴 볼스가 그의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을 잘라내어 여러 나라 말을 넣어서 콜라주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바로 다음 문장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평화가 있어야 음악도 있다
음악과 더불어 살며 새로운 소리를 찾아다니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주일이나 음악을 듣지 않았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9.11 직후의 일주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때 뉴욕에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길에서 한 청년이 ‘Yesterday’를 부르는 것을 보고서야 일주일 동안 주변의 그 누구도 음악을 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음악은 평화롭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쓰나미로 폐허가 되었던 도호쿠 지역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전기가 부족하여 실내 체육관 안은 어두웠습니다. 그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춥죠? 추운 분은 뛰어다니면서 들으셔도 좋으니 편한 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원전 반대운동을 했고 환경파괴를 막고자 애썼습니다. 그런 그의 노력은 오페라 <LIFE> 이후에 계속 이어집니다. 그가 지속한 정치, 사회적인 발언은 그의 음악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계속 발언해 왔습니다.
제 생각을 말하지 않고 속에 담아두면 더 힘들었겠죠.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 저는 절대 못 하거든요.”
나는 사카모토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그의 죽음이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살도록 격려할 것임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계의 벽을 넘어 소리가 된 것이 아닐까요?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비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나는 <마지막 황제>의 삽입곡 <Rain>을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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