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밤늦은 병실엔 여성들만 서성일까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돌봄의 경계와 젠더’에 대해 돌봄노동에 새로운 가치를 상상할 때 아닐까

노인 돌봄을 하고 있는 가족.
노인 돌봄을 하고 있는 가족.
  • * in Betweenness는 자아-타자, 자국문화-타문화, 지배-피지배 등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은 코너명입니다.

얼마 전에 한 달쯤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아픈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원의 밤, 깨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이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보호자들도,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환자들도 죄다 여성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남자들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밤의 젠더적 불균형이란 무엇인가!’

병원은 ‘돌보는 성(性)’으로서의 여성 신화가 구현되는 현장이었습니다.

간병인은 왜 모두 여성들일까

우리는 대체로 남성들이 아프면, 아내나 어머니가 돌보지만, 여성이 아플 때는 간병인이나 딸, 혹은 며느리가 간병합니다. 고용 간병인조차 대부분 여성입니다. 간병인들은 대부분 조선족, 베트남인, 탈북민이고, 한국인보다 낮은 급여를 받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젠더뿐 아니라 사회적인 권력구조가 관여합니다.

어머니를 시작으로 아내, 누이들이 무급으로 돌봄을 담당해온 것은 인류의 오랜 전통입니다. 유급 간병인들조차 대부분(사실상 모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남성 간병인을 본 적이 없기에) 여성입니다.

사실 남성 환자의 경우, 남성이 돌보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습니다. 예를 들어 치매를 앓는 노인 남성이 아들이 간병할 때와 딸들이 간병할 때 태도가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성 간병인의 경우, 성폭력성 언어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간병인과 환자 사이에도 역학관계가 있어서 아무래도 돌보는 사람이 우위에 있다고 해야겠지만, 환자가 남성이고 간호하는 사람이 여성일 경우, 보호자는 잠재된 폭력성에 노출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합니다.

여성이 돌봄을 담당하게 된 것은 제법 긴 세월을 통해서였을 것입니다. 여성에게 ‘모성’이라는 신화가 씌워지면서 그것은 해체하기 어려운 공고한 관념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교적 젠더 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유럽의 경우에도 자주 이른바 ‘평등 돌봄(Equal Care)’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특히 돌봄에 대한 젠더 불균형이 심하다고 하는데, 산업혁명 이후에 밖에서 ‘돈 버는 남성’ 이미지가 더욱 고정화되었기 때문에 돈을 벌지 않는 여성은 집에서 무급으로 돌봄과 가사를 담당하는 일이 당연시되었다는 것입니다.

팬데믹 기간에 더 악화된 불균형

독일 사회 연구자 안숙영에 의하면(「독일에서의 평등돌봄을 향한 논의」, 『유럽연구』, 2022), 돌봄의 책임을 분담하는 데 있어 독일은 여성과 남성 간의 격차가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내에서 비교적 크고, 2020년의 경우 ‘젠더 돌봄 격차(Gender Care Gap)’가 52.4%에 이르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이 매일 4시간 13분, 남성은 2시간 46분을 무급 돌봄노동에 사용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1.5배 이상의 시간을 무급 돌봄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국의 가사시간

한국정부의 국가지표 체계(지표 상세정보)를 보면 2019년 현재 여성의 일평균 가사노동시간은 3시간 45분, 남성은 1시간 4분으로 여성이 남성의 3.5배의 시간을 가사노동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가사노동에는 ‘가족 돌봄’이 포함됩니다. ‘가족 돌봄’ 항목만을 떼어서 본다면, 일평균 여성 44분, 남성 16분으로 2.75배에 달합니다. 한국 여성이 가족 돌봄에 투자하는 시간은 유럽에서 가장 남녀격차가 크다는 독일 여성 평균의 1.8배입니다. (상세한 그림은 통계청 가사시간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32#)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돌봄의 대부분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는 오래된 현실이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팬데믹 시대 이중부담(The Double Shift in the Pandemic Era)’에 직면한 것, 즉 재택근무와 더불어 집안에서의 무급 돌봄노동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부담이 더욱 커졌던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팬데믹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문 의료집단 내에서도 간호사의 성비 등에서 나타납니다.

여성들이 사회 현장의 각계각층에서 일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돌보는 성’으로서의 여성 이미지는 여전하며 자녀 돌봄, 노인 돌봄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병원에 머무는 동안 목격한 ‘그 밤의 젠더적 불균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돌봄을 ‘여성의 일’로 여기는 지금까지의 경향에 대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남성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돌봄의 책임을 서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지요.

돌봄노동의 가치를 상상하자

돌봄의 문제는 윤리적인 가치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심, 상호의존, 공동책임, 지지, 감정이입 같은 것들이지요. 세대별 차이가 크기는 하지만, 남성들은 오랫동안 돌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남성들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헤게모니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돌봄노동이 여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관련된 과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생계부양자로서의 전통적인 남성적 노동과 가족돌봄자로서의 여성적 노동의 경계를 넘어서서 돌봄노동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남성성이 여전히 임금노동과 연동되어 있는 현실에서, 돌봄 활동이나 이른바 ‘여성적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고 극복해야 합니다. 자녀 돌봄을 모성과 연계하여 바라보며 이를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해 버리는 여성성 및 남성성 구성방식은 이제 너무 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남성의 남성성이나 가치에 대한 상상이 필요합니다. 그 상상이 새로운 사회를 가져오지 않을까요?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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