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권력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잠시 멈추는 부지런함에 대하여] 커뮤니티속 위계질서...’인플루언서’의 탄생 그들이 일으킨 분쟁과 갈등에 끌려가는 우리 우리의 나약함·게으름 탓...어떻게 경계할까
SNS 세상에서 탄생한 새 권력
인터넷은 엄청난 ‘시공간의 압축’을 가져왔습니다. 국내의 촛불시위, 세계적으로는 환경운동이나 반테러리즘 운동 같은 지구적 규모의 이슈에 이르기까지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모바일 SNS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주체로서의 동등한 발언 기회를 제공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인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모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사회학자들은 “그곳이 평등한 공간이 아니라 위계적 관계로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그 권력을 ‘소셜미디어 권력’이라고 부릅니다. 소셜미디어 권력은 생각과 감정의 공유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유대감과 소속감을 통해 발생합니다. 그것은 ‘믿음’과 ‘신뢰’라는 ‘사회자본’을 획득함으로써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포털의 초기화면과 인기 검색어를 화제로 삼고,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추천하는 영상을 보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공유되는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부득이하게 광고도 보게 되지요. 미디어 이용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현상은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어려워짐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의 인식은 검색엔진이 상단에 올려 주는 기사와 유튜브가 추천하고 노출하는 영상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페이스북의 전직 부사장 차마트 팔리하피티야는 2017년 “페이스북은 도파민에 의해 작동하는 단기 피드백 순환고리”라며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파괴하는 도구라고 밝혔습니다. 전 페이스북 대변인 배리 슈닛은 “불이 난 데 휘발유를 뿌리는 게 페이스북의 정교한 콘텐츠 알고리즘”이라고 <원제로>에 기고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통제받지 않는 거대 권력 페이스북을 해체해야 한다”는 페이스북의 전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스의 기고를 실었습니다.(한겨레, 유레카, 2020.06.09.)
페이스북 이야기가 나왔으니 페이스북을 예로 들겠습니다. ‘소셜미디어 권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페이스북에도 예외 없이 ‘수퍼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 숫자가 많다고 해서 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SNS상에서의 권력은 팔로워의 숫자, ‘좋아요’의 숫자 등을 척도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 일정 정도의 팔로워가 생기면 그 사람의 콘텐츠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 같습니다.

분열과 선동을 일으키는 인플루언서
모든 것을 다 알아볼 수 없는 일반 이용자들은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하거나 추려주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노출이 많은 만큼 분쟁의 여지도 증폭되겠지요. SNS에서는 심심찮게 그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토론이든 논쟁이든 당사자 간에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게 좋겠지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어떤 충돌은 커뮤니티에 파문을 일으키고 분열을 가져 옵니다. 분열을 키우며 선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커뮤니티는 정치적 진영일 수도 있고 이익집단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분열 정도는 괜찮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단적으로 과열된 감정에는 제어장치가 없습니다. 금세 진흙탕 싸움이 됩니다. 최악의 경우는 이익이나 집단주의, 개인적인 욕망, 혹은 재미에 기댄 선악 구도 속에서 개인이 희생되는 경우입니다. 일일이 이름을 늘어놓지 않아도 여러분은 여러 명의 희생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페이스북 이용자인 K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짱돌을 던졌는데 그걸 바위로 눌러버려요! 그것도 그 짱돌은 이미 가루가 되었는데, 그것마저 땅속 깊이 묻어버리려 하는 행태를 보며 페이스북이 싫어졌어요.”
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분열은 결국 ‘좋아요’를 누가 더 많이 받는가, 댓글이 얼마나 달리는가로 판가름 납니다. 여론 재판이 되는 셈이지요.
그럼, 사람들은 왜 그 분쟁에 기꺼이 끼어드는 것일까요?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의존성입니다. 의존성은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에게서 더 잘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의 눈이 아닌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과격한 말로 공격합니다.
동화책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납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모든 사람에게 초록색 안경을 쓰게 하고 온 나라가 에머럴드로 되어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과격한 분쟁에 동조하는 사람은 인플루언서가 나눠준 초록색 안경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의 마법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다른 하나는 ‘조급함’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지적 게으름’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요. 심리상담사 A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맥락을 안 보고 단편만 보고 반응하는 현상이 정말 가속화되고 있죠. (분쟁에 쉽게 동참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전에 경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1, 2분도 생각하지 않아요. 쉽게 뛰어들어 누군가에게 동조합니다.”
인터넷 상의 권력은 오프라인의 권력구조와 다르지 않습니다. 권력이 지배를 가져오는지, 지배가 권력을 가져오는지는 모호하지만, 아무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체이려면 권력의 지배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그리고 미지의 누군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미지의 누군가는 사실 언젠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슈를 접할 때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거대한 힘의 알고리즘 앞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상황의 양면성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러운 사용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나 자신도 완벽히 실천하기 어려운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공감을 표시하고, 누군가를 공격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힘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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