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축제의 “석학님들” 모시기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대학에 파고든 대중문화 ‘열풍’ 모시기 변칙술 보다 위험한 ‘획일화’ 다양성 상실와 계급화 심화시킬 수도 창의적인 대학축제 누릴 수 없을까
- * in Betweenness는 자아-타자, 자국문화-타문화, 지배-피지배 등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은 코너명입니다
싸이가 왔다는데?
대학가 여기저기에서 축제가 한창입니다. 몇 년 전 경희대 국제캠퍼스 축제에 인기가수 ‘싸이’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나는 퇴근이 늦었습니다. 늘 다니던 길인데, 그날따라 엄청난 박수갈채가 운동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인근 시민들도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대학가와 일반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린 캠퍼스’를 느끼게 하는 흥겨운 풍경이었습니다.
요즘은 대학가에서 축제를 한다고 하면, 관심이 온통 ‘가수는 누가 오는지?’에 쏠립니다. 오랫동안 KAIST 학교 방송국 지도교수를 역임해온 정재승 교수가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KAIST는 축제 초대 가수 예산 항목이 오랫동안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세미나료’ 항목에서 집행하느라, 30만 원, 50만 원 수준에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죠(황당). 턱없이 적다 보니, 초대 가수에게 수백 만 원을 드리기 위해 ‘석학급’으로 지정해서 가수를 초청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러브홀릭, 자우림, 크라잉넛 이런 분들은 모두 석학들이십니다.”
가수들을 초청하는 비용이 큰 것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가수가 움직이려면 얼마나 많은 장비와 스텝들이 움직이겠습니까? 마음껏 즐기고 싶은 학생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되지 않습니까? 대학 축제의 성공 여부는 어떤 가수를 초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상황이 조금 어색합니다. 이제는 나 자신이 대학에 없었던 시간보다 대학에 있었던 시간이 긴 탓일지도 모릅니다. 대학 문화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예인 초청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대학가의 축제문화 현상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대학 축제 문화의 아쉬움
첫째, 주체성 없음의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대학에서 대학 문화가 자체적으로 생산되었다면, 지금은 대학 밖의 대중문화가 대학으로 유입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의 자체적인 문화 행위는 줄어들고, 학생들이 운영하는 주점보다, 외부에서 들어온 푸드 트럭이 먼저 눈에 띕니다. 수동적 문화의 향유가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문화 권력, 또는 거대 자본에 의존하거나 포섭될 것입니다.
둘째, 획일화의 문제입니다.
학생들의 자체적인 문화행사보다, ‘석학’급 연예인의 출연이 대학가의 축제를 압도하면서 경쟁적으로 몇몇 연예인을 초청하다 보니, 거의 모든 대학의 축제가 획일화되는 현상입니다. 물론, 예산이 부족한 탓에 강제적으로 자율성을 유지하는 대학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비단 대학 문화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지자체의 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시장을 열고, 어르신들을 위한 트로트 가수를 초청합니다. 그런데 그 야시장도 대체로 몇몇 그룹이 순환하는 구조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야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천막을 걷으며 ‘다음 주에 ○○시 야시장에서 봅시다’하고 외치는 걸 보고 알게 된 사실입니다.
무엇을 잃는 것일까요
획일화는 다양성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생태계에서 다양성은 생존의 확률을 높입니다. 모두가 획일적이면 언젠가 한꺼번에 파국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성이 없이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자본에 의한 계급화가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모든 취향이 획일화되고 문화조차 거대 자본에 종속되는 구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문화가 획일화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대학은 창의성의 요새여야 합니다. 대학은 초·중·고 과정에서 획일적 목표지향 속에 자란 한국의 학생들이 비로소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입니다. 대학에서 창의성을 포기하면, 이 사회는 어디에서 창의성을 만끽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삽니다. 영화도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영화만 보고, 옷도 유행하는 옷만 입습니다. 어느 때는 당구장이, 어느 때는 노래방이, 그리고 지금은 카페가, 조금 과장하자면 한 집 걸러 하나씩 보이다가 사라집니다. 해물찜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해물찜 식당이 보이다가 대패삼겹살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대패삼겹살을 먹으러 갑니다.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한때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던 패딩점퍼를 기억하실 겁니다. 전국의 학생들이 그 값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기 위해 부모를 졸랐고, 부모들은 아이가 기죽는 게 안타까워 그 옷을 사주기에 바빴습니다. 그렇게 획일화되는 가운데,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오리털이 몇 그램 들었는지로 빈부를 확인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획일화된 문화 속에서 오히려 계급화가 발생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닌가요?
집도, 옷도, 음식도, 놀이도,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범주의 모든 것이 획일화됩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획일화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가 축제의 ‘석학’님들은 죄가 없겠습니다만, 대학가 축제의 내용에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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