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국을 닮아서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소설 ‘통영’의 작가 반수연 작가 ‘문학나눔지원사업’ 선정 취소 사연 “한국어로 썼는데, 한국은 왜 밀어낼까”

반수연 소설의 배경이 된 통영. 한산대첩축제가 엊그제 끝났다.
반수연 소설의 배경이 된 통영. 한산대첩축제가 엊그제 끝났다.
  • * in Betweenness는 자아-타자, 자국문화-타문화, 지배-피지배 등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은 코너명입니다.

‘예술의 국적’이라는 경계

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국적자인 아티스트 백남준을 한국인 작가로 인지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인 2022년11월10일~2023년2월26일 사이 과천 미술관 1실과 2실, 그리고 중앙홀을 <백남준 효과>라는 제목의 전시를 위해 약 3개월간 사용했습니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책이 재외동포 예술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 과천시 막계동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백남준 효과' 기획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기 과천시 막계동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백남준 효과’ 기획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각광받아온 소설가 반수연 씨는 반대의 처지를 당해서 고국으로부터 서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그는 캐나다로 국적을 옮겼지만, 근래 자주 한국에 오가면서 소설집 『통영』과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로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통영』은 2021년에, 『나는 바다를 닮아서』는 올해에 아르코(ARKO 한국예술문화위원회)의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돼서 추가 1쇄를 찍었고, 이미 각 도서관에 배분까지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반수연 씨가 ‘외국 국적자’라는 이유로 민원을 넣었고, 출판사 쪽으로 기한 내 소명하지 않으면 그 민원이 인정되어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대상작품 선정이 취소된다는 통지가 도착했다 합니다.

이 민원의 근거가 된 ‘문학나눔 지원사업 신청서’는 지원 대상을 “한국 국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의 ‘예술 활동 증명’이 가능한 경우, 예외 조항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쓰였을 뿐 아니라 한국어 독자를 대상으로 국내 출판사에서 작품집을 발행하였고, 『통영』의 경우는 선정 당시에 이미 2쇄를 찍었으니 반수연 씨의 예술활동은 증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아마 선정 당시 심사위원들도 이 점을 인정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반수연 씨는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활동이 있었지만 소명 과정에서 “예술활동증명 절차를 밟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선 “외국인”이었으므로, 신분증에 명시된 이름은 ‘영문’으로만 실명 확인이 되는데, 예술활동증명서를 발급하는 사이트는 ‘한글’ 이름만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국내 사이트에는 한글 이름으로 등록을 하게 되어 있고, 영문으로만 신분인증이 가능한 해외 국적자는 이 시스템으로 인증 받을 수 없습니다.

반수연 씨는 “왜 한국어로 쓰인 문학이 한국문학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건지, 왜 재외동포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밀어내는 건지. 왜, 누가 그걸 문제 삼고 싶어 친히 민원까지 넣었는지”하며 서러웠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밤에는 잠자리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과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고 합니다. “그들 중 하나일 리는 없는데 자꾸 한 뼘쯤 그들과도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고 토로합니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 작가 반수연의 인터뷰. 파도처럼 떠밀려 온 시절의 내음 이야기라고 했다.

재외동포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은 선정취소가 완료된 것이 아니며, 검토의 여지가 있습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선, 선정취소 민원의 근거입니다. 추정컨대 ‘외국인 국적’을 가진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외동포라 할지라도 국내에서 생긴 소득은 그에 준하는 세금을 원천징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은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예술활동 증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한국어로 소설과 산문을 쓰고, 그 책으로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 북 토크를 하는 것 이상의 ‘예술활동 증명’은 아마도 없을 테지요. 그러나 현실은 ‘예술활동 증명서’가 없으면 아무리 활동이 명백해도 국가 지원 사업의 수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일견 합당해 보입니다. 여권이 있어야 여행 자격이 주어지는 거니까.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예술 활동 증명은 여권과는 그 자격의 발생 순서가 다릅니다. 여권은 발급(증명) 이후에 해외여행이라는 ‘활동(자격)’이 생겨나는 것이지만, 예술활동은 증명이 발급되기 이전부터 존재합니다. ‘활동’이 있고서야 ‘증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명백하게 ‘예술활동=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자격 제한을 한다면 기계적인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규정의 문제라면 규정을 재검토해야겠지요.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외동포 문학/예술’, ‘디아스포라 문학/예술’, 개념에 관한 생각입니다. ‘재외동포’라는 말은 한반도를 중심에 두고, 문학의 당사자인 작가를 ‘바깥’에 두는 말입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 역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듯이 있을 곳을 잃어 떠난 존재라는 의미가 저변에 드리운 말이기도 합니다. 하루 이틀이면, 지구의 어느 구석이건 가 닿을 수 있는 21세기에 ‘재외동포’도 ‘디아스포라’도 낡은 단어가 되어 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던 터에 국적을 문제삼는 민원과 그 처리 방식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한국어문학은 경계를 넓혀가야하지 않을까

사실 소설 『통영』을 읽어본 독자라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반수연의 문학을 최소한 어느 지역 중심의, 혹은 어느 중심 지역의 문학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문학은 통영, 벤쿠버, 아시아와 북미를 넘나들며 인류 보편의, 생의 한 가운데를 ‘살아내는 일’, 약자로서, 낯선 자로서 살아내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누가 뭐래도 그의 문학은 한국어 문학이 아닌가요? 백남준 예술이 한국인의 예술인 것처럼 말이죠.

지난 8월 8일 중앙일보는 <이민사부터 하이틴로맨스까지…한인문학 발 넓히다>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이 기사는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의 사진을 싣고 그 아래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민진의 대표작인 『파친코』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한인들의 강인한 삶을 그렸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상관없다’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가 일본 지사에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4년간 도쿄에서 살면서 자료 조사를 해가며 썼다.“

우리가 선택하는 한 걸음이 ‘역사’가 됩니다. 앞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예술가들을 ‘한민족’이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에 반대합니다. 모든 예술가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경계는 끝없이 확장되는 인식의 지평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평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벽을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예술가들이 서 있는 경계, 그 지평은 인류의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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