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詩에 ‘저촉되지 않는’ 삶이란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시인 김시종, 손톱으로 벽 긁듯 배운 조선어 끊임없이 경계에 서서..도망자라 부를까 안주하지 않고 권력에 투항하지 않는 삶

2019년 제주4·3 예비검속희생자 위령제에서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이 당시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제주4·3 예비검속희생자 위령제에서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이 당시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in Betweenness : 자아-타자, 자국문화-타문화, 지배-피지배 등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은 코너명입니다

1.

지난 가을, 재일(在日) 시인 김시종이 광주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주관하는 제4회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몽골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 베트남 작가 바오 닌, 방글라데시 작가 샤힌 아크타르가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었죠.

올해 94세가 되는 시인은 건강 상태가 여의치 않아 귀국하지 못하고 수상소감을 영상으로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김시종 시인은 냉전의 분극 세계뿐만 아니라 국가주의와 국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이것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어떠한 틈새와 경계로부터 구획되지 않는 시적 행위를 실천해 왔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아울러 “한반도의 분단에 종언을 고함으로써 남과 북의 민주적 평화통일독립 세상을 염원하는 재일(在日) 시인으로서 정치 사회적 욕망을 미학적으로 확장한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2.

시인 김시종은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 고향인 제주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황국신민’으로 자란 그는 일본이 패전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끼며 강가에 나가 앉아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품에서 들었던 조선어 노래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교육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손톱으로 벽을 긁는 심정으로’ 열심히 조선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1948년, 제주도에서 남북분단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를 경찰이 탄압하면서 그 움직임은 4·3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4·3항쟁의 기획에 참여했던 김시종은 경찰에 쫓기다 일본으로 밀항했고, 세기를 넘긴 현재까지 ‘재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지배 언어와 피지배 언어 사이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연말, 아사히 신문 인터뷰에서 시인 김시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왜곡시켜 길러낸 일본어로부터 겨우 도망쳤는데, 다시 일본어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유려한 일본어에 등 돌리자고 경계하며 살기 시작한 것이 내 ‘재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누가 읽어도 술술 읽을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일본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나를 일그러뜨린 일본어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아사히 신문, 2022년 12월 8일)

김시종의 첫 시집 『지평선(1955)』은 재일조선인 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시단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수필집 『재일의 틈새에서』(1986)는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본상, 시집 『원야의 시』(1991)’는 제25회 오구마히데오상 특별상, 시집 『잃어버린 계절(2010)』은 제41회 다카미준상을,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2015)』는 제42회 오사라기지로 상을 각각 수상하는 등 일본 문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3.

김시종의 시는 화조풍월의 미의식을 읊는 시가 아닙니다. 4·3을 노래한 그의 시 한 소절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나의 봄은 언제나 붉고

꽃은 그 안에서 물들며 핀다

(중략)

짓밟힌 진달래 저 편에서 마을이 불타고

바람의 부추김에

군경트럭의 흙먼지가 춤추고 있었다.

(「4월이여, 먼 날이여」 중에서)

김시종의 시를 이루는 또 하나의 사건은 5.18민주화 운동입니다. 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시집 『광주시편(1983)』을 냈고 “압살당한 ‘자유 광주’를 조금씩이라도 토해내는 것이 일본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문이었다”라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5월을 토마토처럼 짓이겨진 죽음이여.

쏘아 꿰뚫어진 하늘이여.

살랑이는 나뭇잎들이여.

눈을 가리는 죽음에도

빛만은 비춰들고 있었던가

한국의 여름이여.

악마의 귀동자인

색안경의 아들이여.

(「명복을 빌지말라」 중에서)

그의 관심사는 한반도와 일본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미얀마 상황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아시히 신문을 통해 발언한 바 있습니다.

“희생이란 뭔가 본의를 위해 죽는 것. 잔학한 모습으로 죽음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희생자라 부른다면, 잔인하고 역겨운 것이 숭고한 것이 되면서 투명해진다. 무참히 죽임 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죽음을 가상 체험하는 것이 추도로 이어진다”(2021년 4월 24일자 아사히 신문)

버려진 사체처럼 추하고 역겹고 더러운 것은 없는데, 그들을 희생자라 부르고 나면 그 처참한 죽음이 미화되어 버리고 투명해져 버린다는 말은 최근 국내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가 펴낸 김시종 시선집.
한림대 일본학연구소가 펴낸 김시종 시선집.

4.

언젠가 4·3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를 만나 우연찮게 오사카의 코리아타운, 이카이노(猪飼野)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김시종 선생님을 아시냐고 물었는데, 그분의 대답은 다소 냉소적이었습니다. 김시종은 ‘4.3에서 살아남아 일본으로 도망친’ 사람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대답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구나!”하는 깨달음과 동시에, “죽음으로서만 당당할 수 있는가? 살아남지 않았다면 그 기억을 어떻게 오래도록 회고하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하는 반감이 교차했습니다.

나이 스물에 4·3 주모자로 경찰에 쫓기다 일본으로 밀항했고, 그로부터 70여 년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재일(在日)’ 한 사람. 일본어의 저주에서 겨우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일본어에 갇혀 살게 된 사람. 그러나 그 일본어에 보복하는 기분으로 시를 써 온 사람. 그는 헤어진 이후 한 번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고, 그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그 한과 고통을, 그 살아남은 대가를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5.

3년 전 시월. 나는 일본 나라(奈良)의 어느 전철역에서 김시종 선생을 만났습니다. 한눈에도 서릿발 같은 꼿꼿함과 자상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이름과 글을 보고 남자분인 줄 알았다’며 당황해하시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한사코 배웅을 받지 않으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두세 달 뒤에 다시 뵙고 긴 인터뷰를 하기로 했지만,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해외로 나가는 길이 막히면서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선생님께서 온 삶을 통해 지켜온 것, 그런 게 혹시 있다면 무엇일까요?”

“글쎄, 나는 그저 내 시(詩)에 저촉되는 삶을 살지는 않으려고 했지.”

김시종의 삶을 빗대어 생각해 보건대, 어쩌면 김시종이 말하는 ‘내 시’란 권력에 투항하지 않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시는 무엇일까? 언젠가 나도 나의 시에 저촉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신의 시에 저촉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우선 자신의 시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김시종의 ‘시’는 끊임없이 경계에 서서 어느 한쪽에 안주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만을 노래하는 것은 그의 시가 아닙니다. 일본어로 노래하지만, 누구보다 유려한 일본어를 쓸 수 있는 그는 절대 매끄러운 일본어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시’입니다.

때로 경계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에 맞서는 일을 의미합니다. 기계적인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는 세상의 기쁨과 고통을 넘어 욕망조차 버린 곳에 오롯이 혼자 설 수 있는 조용한 자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시대의 ‘어른’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그렇게 경계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의 시를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에 저촉되지 않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 말씀이 화두처럼 남아 있습니다.

자신만의 아침을

너는 바라서는 안 된다.

빛이 드는 곳이 있으면 흐린 곳이 있는 법이다.

붕괴돼 사라지지 않을 지구의 회전이야말로

너는 믿기만 하면 된다.

태양은 네 발 아래에서 떠오른다.

그것이 큰 활 모양을 그리며

정반대 네 발 아래로 가라앉아간다.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지평이다.

(「자서(自序)」, 『지평선』 중에서)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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