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이름? ‘김 수한무’와 일본의 ‘쥬게무’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in Betweenness] ‘개콘’ 사라진 한국, 코메디 건재한 일본 일본인은 ‘전통 유지’를 택한 걸까

일본의 스탠딩 코메디 장면. 사진=아사히신문
일본의 스탠딩 코메디 장면. 사진=아사히신문

“Kim soohanmoo, Geobuk and Durumi, Samcheongabja dongbangsak, Chichikapo-sarisari center, Worryworry-sebrikkang, Methuselah, Gureumi, Hurricane and Dambyeorak, Seosaengwon, Goyangi, Badugi and Doldoli”

영어 번역가 한 분이 이 영어 번역을 SNS에 올리며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되는 쉬운 영어’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던 문장입니다.

구봉서 씨. 사진=한국영상자료원
구봉서 씨.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아마도 1970~80년대에 TV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웃음이 터지고 말 겁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구봉서 씨의 스탠딩 개그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공전의 히트였다고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개그맨 서경석· 이윤석 씨도 1993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이 작품을 재현했을 정도니까요.

“아아니, 뭐라고? 우리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푸 사리 사리센타 워리워리 셈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에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가 강물에 빠졌단 말이냐?”

늘그막에 귀한 아들을 얻은 부부가 아이의 장수를 빌며, 장수하는 것들을 모아 이름을 붙입니다.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정작 그 이름을 부르다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익숙한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전래 동화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요. 손이 귀한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자 이름이 길면 오래 산다 하여 “엉기조차 벙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도 그 이름을 부르다 때를 놓쳤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죠.

이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에도 있고, 『Tikki Tikki Tembo-no sa Rembo-chari Bari Ruchi-pip Peri Pembo』라고 번역된 영어책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이름에 관한 서사는 동아시아에 두루 퍼져 있는 설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김 수한무> 는 한국이나 중국의 이야기보다는 일본의 라쿠고(落語), <쥬게무>에 더 가깝습니다. ‘수한무’를 일본어로 읽으면 ‘쥬게무’가 됩니다.

Jugemu Jugemu(寿限無 寿限無)
Gokō-no Surikire(五劫 擦 切の り れ)
Kaijarisuigyo-no( 海砂利水魚の)
Suigyōmatsu Unraimatsu Fūraimatsu(水行末 雲来末 風来末)
Kūnerutokoro-ni Sumutokoro(食 寝 処 住 処 う る に む)
Yaburakōji-no Burakōji(藪 柑子 藪柑子 ら の)
Paipopaipo Paipo-no Shūringan(パイポパイポ パイポのシューリンガン)
Shūringan-no Gūrindai(シューリンガンのグーリンダイ)
Gūrindai-no Ponpokopii-no Ponpokonā-no(グーリンダイのポンポコピーのポンポ コナーの)
Chōkyūmei-no Chōsuke(長久命 長助の)

요코야마 엔타쓰(왼쪽)와 하나비시 아차코.
요코야마 엔타쓰(왼쪽)와 하나비시 아차코.

한국 코미디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근대사 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영춘·구봉서·이기동·배삼룡 같은 코미디언들이 무대에 서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코미디를 보여주었는데, 이 스탠딩 코미디의 형식을 정립한 것은 1930년에 결성된 일본의 요코야마 엔타쓰(横山エンタツ)와 하나비시 아차코(花菱アチャコ) 콤비였습니다. 이 ‘콤비’ 라는 말도 일본에서 생긴 말입니다. 영어의 ‘combination’에서 유래했지만 특별히 2인조 코미디언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고, 한국에서도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였습니다. 양국의 희극인들을 비교해보면 콧수염과 뿔테 안경, 채플린 스타일의 복장 등 배우들의 외모까지도 놀랄만큼 비슷해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작년 <유머극장>, <웃으면 복이 와요>의 뒤를 이어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개그콘서트>가 종영되었고,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코미디가 사라졌습니다. ‘웃음이 사라졌다’고 하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개콘’의 종영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의 스탠딩 코미디는 아직 건재한 것과 크게 대비되는 현상입니다.

알고보면 많이 닮은 한국과 일본

여기에는 윤리적 관점의 변화 트렌드와 플랫폼의 변화 등 많은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쥬게무’는 남았는데 ‘수한무’는 사라진 셈이랄까요?

한국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다이내믹한 사회입니다. 뭐든 쉽게 생기고 쉽게 사라지죠. 한편 사라지는가 싶던 트롯이 신곡 없이도 젊은 가수들을 통해 부흥기를 맞기도 합니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코미디 역시 뜻하지 않은 모습으로 TV로 돌아올지 모르지요.

생각해 보면, 일본에는 아직도 종이로 된 버스표를 펀칭해주는 안내원이 있습니다. 매사에 아날로그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일본 사회가 시대에 뒤늦어 보이고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생각도 들어 놀랍기조차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은 전통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한무’와 ‘쥬게무’ 그리고 농심의 ‘새우깡’과 가루비의 ‘에비센’처럼 다른 이름을 가졌으나, 알고 보면 많이 닮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야기. 다음 편에 계속하겠습니다.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