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최초의 키스신, 도대체 누가 넣었을까

[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in Betweenness]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가 더 가치있는 나라들 한·일, ‘국경’ 대신 ‘수평선의 연대’를 만들자

1946년 5월 23일 개봉한 '스무살의 청춘' 영화 한 장면. 일본에서는 5월 23일을 기념해 '키스 데이'가 생겼다.
1946년 5월 23일 개봉한 '스무살의 청춘' 영화 한 장면. 일본에서는 5월 23일을 기념해 '키스 데이'가 생겼다.

동아시아의 <1984>

조지 오웰의 <1984>는 최상위층인 내부당원과 중간층인 외부당원을 합쳐서 15%, 하층인 프롤이 85%로 구성된 사회를 그립니다. 주인공 윈스톤은 외부당원으로 감정을 통제하면서, 충성을 강요하는 빅브라더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남몰래 일기를 쓰죠. 그는 줄리아라는 여인과 연애를 하다 적발되어 반역자가 됩니다. 감찰기관인 ‘애정부’ 에서는 그를 죽여 순교자를 만들기보다 살려서 세뇌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101호실에서 고문에 시달리며 지속적으로 세뇌 당한 윈스톤은 결국 줄리아를 부정하고 체제순응자가 되고 맙니다.

이것은 픽션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세유럽, 조선, 전전(戰前)의 일본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강력한 권력의 지배하에 놓인 사회일수록 개인의 감정과 신체를 통제합니다.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1974년은 아기를 낳지 않는 해’ 였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던 ‘둘만 낳아 잘 기르자’와 같은 표어들도 국가가 개인의 감정과 신체까지 통제하고자 했던 시도의 흔적입니다. 9시만 되면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류의 방송이 흐른 것도 ‘국민의 시간’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었죠.

‘키스신’에 일본인 반응은?

그런데 이웃 나라 일본에 예외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선언과 함께 일본은 연합군(General Headquarters)의 점령(Allied Occupation) 통치하에 놓입니다. 바로 이듬해인 1946년에 공개된 <스무살의 청춘(はたちの青春)>에는 일본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신이 등장합니다. 각본에 없던 키스신을 넣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영화 검열관들이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뒤,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쿠노 미치코(幾野道子)는 “일이라 생각하고 눈 딱 감고 키스했다”고 말했고, 상대역인 오사카 시로(大坂志郎)는 “소독내 나는 키스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독한 거즈를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끼운 채로 키스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는 영화의 검열이란 주로 이른바 ‘야한 장면’을 삭제하거나 편집하는 과정이 아니던가요? 연합군 사령부는 왜 키스 신을 넣으라고 했을까요? 히라노 교코(平野共余子)의 『천황과 키스 미국 점령 하의 일본영화 검열』(草思社)에 의하면,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인이 연애 애정 면에서 쉬쉬하는 일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남앞에서 표명하는 것이 일본인의 사상 개조에 불가결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스무살의 청춘>을 본 관객들은 흥분과 당혹감을 표현했습니다. ‘필연성 없는 장면’ 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 일본에서 키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카사블랑카>와 같은 미국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일본 사회에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군 점령하에서도 금지된 것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억울하게 죽은 주군을 위해 복수한 뒤 47명의 사무라이가 모두 자결한다는 내용의 <주신구라(忠臣蔵)>는 미군 점령기간 동안 출판이나 상영이 금지되었습니다. <주신구라>에 의해 고무된 일본인들이 맥아더를 해할 수 있다는 염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인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에너지를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방향으로 돌리고자 했던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만 자유의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기 일본은 폐허 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애정물은 그 폐허의 절망감으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게 하는 효과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원폭 피해자, 무고한 일본시민

2000년대 초반, 나는 박사과정 공부를 위해 어린 딸을 데리고 일본에 유학갔습니다. 아이는 일본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녔는데, 어느 날 아이가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을 보았다며 울먹거렸습니다. 학교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장면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폐허와 참혹함이라니 하늘에서 흑비가 내리고 목말라 죽어갈지 그 물을 먹고 죽을지 선택해야 했던 순간들 말입니다.

쉽게 하는 말 중에 ‘일본은 그래도 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상황에 놓였던 이의 대부분은 전쟁을 일으켰던 당사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무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의 눈빛은 조금 흔들립니다. 왜 흔들릴까요? ‘하나인 일본’ 이 우리 안에서 분열하기 때문입니다. 이 분열은 정당합니다. 싫든 좋든 우리의 사고는 대체로 국가 단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라는 경계는 우리 안에 수직선을 그리며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듭니다. 우리 앞에 놓인 너무나도 자명한 수직의 경계선, 흔히 국경선이라 부르는 그것은 사실상 지도상에 존재하는 픽션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속에 더 선명하게 존재하죠.

우리의 시선이 흔들리는 이유가 이 수직선 때문이라면, 그 수직선에 직교하는 수평선을 그려보면 어떨까요? 그 수평선은 계층 질서를 나타내는 수평선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계층과 피해를 입는 계층은 거의 언제나 다르게 마련입니다. 한국전쟁과 4.3사건만 떠올려보아도 알 수 있지요.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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