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버리지 못할까...책이라는 이데올로기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책을 본 후에 남에게 주라”는 日선생님 말씀 “왜 남에게?” 이해못한 마음이 지금은 변해 책에는 ‘신성함’ 같은 무언가 있을까

2022년 지난 2월 25일 타계한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재.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올해 2월 25일 공개했다.
2022년 지난 2월 25일 타계한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재.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올해 2월 25일 공개했다.
  • * in Betweenness : 자아-타자, 자국문화-타문화, 지배-피지배 등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은 코너명입니다

오래전, 아직 대학원생이었을 때, 일본의 프랑스 문학 연구자 니시카와 유코(西川祐子)선생님을 에스코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선생님과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니시카와 선생님은 일본에 돌아가신 후에 저서를 한 권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편지에 의외의 당부를 하셨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해 주면 좋겠습니다. 책은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읽혀야 하는 것이니.”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니, 책을 나한테 주셨으면 내 것인데, 보고 나서 남에게 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하라니! 선생님한테는 죄송하지만, 나는 그 책을 기증하지 않았고, 사실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니시카와 유코 선생님을 만났다는 기념품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10년동안 한번도 읽지 않은 책들

작년 여름, 소속 연구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연구실을 사용하던 나는 학내 공간조정 문제로 연구원 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연구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단지 방만 옮기면 되는 단순한 일이지만, 연구자가 방을 옮긴다는 것은 적게는 수백 권, 많게는 수천 권의 책을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객이 교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인데, 단순한 우스개로 치부하기에는 미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사는 다행히 학교 당국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공간을 조금 줄여서 옮기는 터라 책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만히 책장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지난 10년간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수두룩했습니다. 요즘은 연간 10만 원 정도만 내면 컨테이너 박스에 책을 보관해주고 언제든 도서관처럼 열람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수도 있는 리스 형 도서관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내 보관만 하고 펼치지 않는 책을 내 소유로 가지고 있다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에 니시카와 유코 선생님께서 내게 전하신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죠.

어려운 시절에 구입했던 가도가와 서점의 <쇼와 문학 전집> 1판 1쇄 전질, 1929년부터 1942년까지 발행된 잡지 <삼천리>의 영인본, 몇 년간이나 모아둔 일본의 문예지 <스바루>, 그 밖에 수 많은 원서들과 번역서들, 선물로 받은 저자 사인본들…그중 어떤 책은 정말 10년 동안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필요하신 분들께 나눔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많은 책을 지인에게 넘겼지만 그래도...

페이스북 친구들을 대상으로 책이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시도록 공지하고 특정 일자에 연구실을 개방했습니다. 많은 분이 다녀가셨어요. 멀어서 올 수 없지만, 꼭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는 분이 계시면 우편으로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책이 몇백 권이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동료 교수님 한 분은 나중에 후회할 거라며 저보다 더 아까워하셨습니다.

하지만, 내 방, 내 책상, 내 책장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는 그것들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빌려 쓰고 있는 것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장래에 방을 비워야 할 것이고 둘 곳이 없다면 처분해야 합니다. 혹시나 책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 이 책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처분해야 할 짐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읽지 않은 책은 내 책이 아니라, 내 종이일 뿐입니다. 지속적으로 보는 책이 아니라면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새로 나오는 책은 또 구입하면 됩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전자책이 좋겠지요.

책을 사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책은 많이 사도 좋습니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 둔 책 중에서 읽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되도록 전자책을 사고, 읽었으면 나누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니시카와 선생님께서 꼭 도서관에 기증하라고 하신 그 책은 그냥 가지고 있으려 합니다. 가까이 두고 이따금 펼쳐보고 그때의 조금은 억울하던 마음을 추억하고 싶기도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토록 책을 버리지 못할까요?

책은 우리에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책을 찢거나 구기거나 심지어 줄을 긋는 것조차 터부시 하도록 배웠습니다. 책은 소중한 것이고,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바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다른 걸 훔치는 사람은 도둑이지만, 책을 훔치는 건 도둑이 아니라고도 배웠습니다. 책 욕심은 돈 욕심과 달리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믿음들이 우리로 하여금 책을 버리지 못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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