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전파되는 걸까, 표절되는 걸까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만화 ‘쇼짱의 모험’과 ‘땡땡의 모험’ 비교해보면 “문화에선 모방이 허용돼야 새 실험 가능” 물론, 학술영역의 논문에 적용할 수 없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만화 '땡땡의 모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만화 '땡땡의 모험'.

<쇼짱의 모험>과 <땡땡의 모험>

최근에 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일본의 현대만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 후에 한 구독자로부터 재미있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일본 최초의 카툰만화 <쇼짱의 모험(正ちゃんの冒険)>과 벨기에 만화 <땡땡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의 그림체가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비교해 보니, 그림의 선이며 색채가 과연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일본만화 <쇼짱의 모험>은 1923년, 벨기에의 <땡땡의 모험>은 1929년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시간의 순서로 본다면 <땡땡의 모험>이 <쇼짱의 모험>을 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에르제는 정말 <쇼짱의 모험>을 베낀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땡땡의 모험>을 쓴 작가 에르제(Herege)는 자신이 팽숑(Émile-Joseph Porphyre Pinchon)의 작품 <베카신(BECASSINE)>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베카신>은 1905년 작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작품의 영향관계에 대한 두 개의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습니다.

두 개의 가설

첫째, ‘땡땡’이 ‘쇼짱’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스즈키 분시로가 프랑스에 갔을 때 팽숑의 <베카신>을 입수, <쇼짱의 모험>그림체에 응용한 것으로 보는 가설입니다. 일본에 처음 서양 만화를 소개한 스즈키 분시로는 1919년에 프랑스로 파견을 나갔다가 미국을 거쳐 돌아오면서 만화책을 많이 가져옵니다. 1923년에 <쇼짱의 모험>을 기획하고, 그림을 가바시마 가쓰이치(樺島勝一)에게 맡겼으니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프랑스 최초의 대중만화 '베카신'
프랑스 최초의 대중만화 ‘베카신’

둘째, <베카신>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가바시마가 미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쇼짱의 모험>을 그린 가바시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삽화/만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 같습니다. 그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삽화를 보면서 그림체를 연습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경우, 미국에 들러 미국 만화를 가지고 돌아온 스즈키 분시로에 의해 전달되었다고 해야겠지요. 이를테면 1919년에 처음 발표된 미국 만화 <뽀빠이>의 ‘올리브 아가씨’도 ‘베카신’과 매우 비슷한 그림체를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베카신>의 인기가 높다보니, 미국 만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가바시마의 <쇼짱의 모험>은 <베카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쇼짱의 모험>과 <땡땡의 모험>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베카신>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두 작품은 하나의 뿌리를 가진 형제지간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쇼짱의 모험' 주인공 캐릭터.
‘쇼짱의 모험’ 주인공 캐릭터.

‘새우깡’과 ‘갑빠 에비센’

2012년에 일본의 소설가 나카지마 교코와 한국의 소설가 강영숙의 대담을 통역한 일이 있습니다. 이 대담은 한국의 『현대문학』과 일본의 『스바루』에 동시에 게재되었죠.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연감을 느낀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한국 소설가는 매콤한 한국 라면을 끓여줬고, 일본 소설가는 달콤한 카레를 만들어주며 양국 문화와 문학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이 서로 간에 양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새우깡’과 ‘갑빠 에비센’중 어느 것이 ‘오리지널’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갑빠 에비센’이 먼저였습니다. 갑빠 에비센은 1964년 가루비에서, 새우깡은 1971년 농심에서 만든 것인데, 포장지 모양도 거의 같습니다.

농심 새우깡과 가루비의 갑빠 에비센
농심 새우깡과 가루비의 갑빠 에비센

문화의 오리진(origin)

그것을 표절이라 하든 전파라 하든,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문화 권력이 발생하면 그것이 생명력을 가지고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후발 국가는 결국 인용이든 표절이든 베껴 쓰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쇼짱의 모험>과 <땡땡의 모험>중 어느 쪽이 먼저인가를 열심히 조사하던 중에 나는 문득 이것이 두 가지 이유에서 이슈가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표절과 저작권 문제입니다. 최근 20년간 표절과 관련하여 한국사회의 도덕 기준은 급속도로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지적 재산에 대한 윤리의식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작가 자신이 표절을 조심합니다. 작가 자신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창작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참고할 선행작업이 있기 마련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변주되는 연쇄작용 같은 것입니다. 모방이 허용되어야 새로운 실험이 가능합니다. 그 연쇄작용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작가나 저작권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를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유희열씨의 표절 건으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했죠. 유희열씨의 표절문제는 유희열씨 자신의 방송 하차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몇 소절 이상이 같으면 표절이라든가 아니라든가 하는 건 사실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법보다도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당연시되는 이 저작권은 18세기 이후의 개념입니다. 베른협약이 체결된 것도 1886년의 일이죠. 저작권은 근대와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개인’과 ‘이익’이 연동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국가 단위에서 문화의 오리진, 어느 쪽이 최초인가를 따지는 문제입니다. 단순히 이익 문제를 떠나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는가 하는 민족적, 혹은 국가적 자존심 문제가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은 북유럽 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노래와 벽화가 ‘작자미상’ 아니던가요?

다만, 이런 문화영역의 애매한 문제를 학술영역의 논문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학위논문에는 엄격한 틀과 인용 기준이 있습니다. 예술가의 자율 의지에 기대는 창작과는 다릅니다. 최근 김건희 여사의 논문표절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 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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