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홍예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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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올해 미술 시장의 수퍼스타들
노란 줄무늬의 파라솔이 불규칙적으로 늘어선 해변 그림 앞에서 나는 마우스를 클릭해 넘기기를 멈췄다. 새라의 그림은 모두 좋았지만 특히 그 바닷가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그대로 발랄한 햇빛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 듯했다. 그때가 겨울이 지긋지긋해지는 2월이라서 유독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붓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근방의 화실을 알아보다가 지역 미술가인 새라를 찾아내게 된 경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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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양지로 나온 대마초, 중독되지 않는다고?
라일리는 원래 다른 그룹의 아이였다. 성적은 상위권에 들었으나 교내의 범생이들 속에서만 지내기엔 라일리가 평소 누리고 사는 것들이 학교 아이들의 평균치에서 한참 웃돌았다. 라일리에게는 학교 바깥의 시간을 함께 할 친구들이 필요했다. 해변 쪽으로 늘어선 고급 주택의 뒤뜰 수영장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아이들이 라일리의 친구들이었다. 지역 내에서 입김이 센 조부모를 중심으로, 라일리의 일가친척 모두가 동네 유지로 알려진 터라 라일리는 늘 기세등등했다. 비치하우스 풀파티에 단골로 초대받는 아이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유산이 있었다. 학교의 대표 미남미녀이거나, 근방의 마리나에 부모 소유의 요트가 있거나, 장학금이나 재정 보조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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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어요
여자인 내가, 입담 좋고 매력적인 남자들이 뭉쳐 떠드는 곳에다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다. 게다가 그들이 딱 호감 갈 농도만큼의 아둔한 면모까지 적절히 흘리면 싫증을 내기도 쉽지 않다. 비록 그것이 전략적인 바보짓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팟캐스트 Smartless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나라는 고정 청취자를 매료해 틀어쥐고 있는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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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유제품계의 잔다르크’ 오트밀크, 판을 뒤집다!
이제는 커피계의 맥도날드가 되어버린 스타벅스일지라도, 그곳에 가면 대번에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 미국의 진보적 식생활 선도자들이 지금 어떤 유제품을 편애 중인지 드러내는 증거물이 매장 벽면 메뉴판과 입식 포스터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처럼 근본적인 카페인을 마시러 들어갔을지라도 막상 이 시즌 한정 음료 사진들의 크리미하고 달달한 미소에 시선을 빼앗기면 주문대 앞에서 잠시 아찔한 혼란이 올 수밖에 없는데, 이 요망한 것들의 사진 하단에는 이런 식의 이름이 붙어있다. 허니 플랫 화이트 어쩌고, 스위트 크림 나이트로 어쩌고, 아이스 브라운 슈가 어쩌고. 정보는 바로 이 길고 복잡한 이름 속에 있다. 신흥 귀족이 되어 커피크리머계에 혁신을 가져온 식물성 유제품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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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한 마을이 아이를 키워낸다
제이미(가명)가 고등학교 졸업 댄스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고르느라 고민하며 들뜨는 것만큼 미국의 여고생들에게는 졸업 댄스파티에 입을 드레스가 그 계절의 초관심사다. 그러나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제이미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동급생들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는 동안 제이미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날 제이미의 일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방과후면 늘 시간을 보내왔던 로보틱스 동아리방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후배들과 무탈한 저녁 시간을 보낸 것이다. 졸업 댄스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아싸 제이미를 인싸로 만들어준 건 그로부터 며칠 후 있었던 다른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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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서러운 콘비프에서 흥겨운 컵케이크까지
미세스 아무개가 점심 파티를 취소한다고 알려와서 내심 반가웠다. 예정된 식사 메뉴는 콘비프였는데 나는 소금에 절인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원래 당일에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성 패트릭 기념일 퍼레이드 구경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파티가 없어진 게 오히려 좋았다. 최근에 읽은 책 밀크맨이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에서 정치적 분쟁사를 겪은 북아일랜드 배경의 소설인데, 만연체로 그득한 장편을 어렵게 읽어냈던 직후라 관련된 민족의 축제를 통해 보상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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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김혜수, 앨빈 토플러, 그리고 전쟁
최근 배우 김혜수가 법조인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가 서글서글한 눈망울의 그녀가 이제 오십 대의 중년 배우라는 걸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었다. 김혜수가 고교생 스타였던 시절에 나는 <여학생>이니 <하이틴>이니 하는 소녀용 잡지류를 열심히 사서 보던 중학생이었다. 김혜수를 비롯한 또래 스타들이 계절 특집 화보에 자주 등장하던 때였고, 십 대의 김혜수는 어떤 컷에서든 압도적이어서 선망하며 들여다보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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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도밭 뒤로 희미해져 가는 것들
오래전 그날, 노먼과 나는 설계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시선을 겨루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핏대가 올랐고, 셜터씨는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노먼은 미시간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공사 책임자였고, 나는 이제 막 첫 집을 장만하려는 도시 출신의 꼬장꼬장한 아시아계 이민자 고객이었다. 젊은 커플이 대개 그렇듯 그때 우리 부부에게는 돈이 별로 없었는데, 주제넘게 까다로웠던 나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해 고전 중이었다. 지방의 작은 마을이라 집값은 싼 편이었지만 막상 집을 보러 다니니 구조와 위치에서 만족도를 주면서 당시의 수입으로 감당할만한 융자를 끌어들여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집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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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톰 소여는 모험을 계속할 수 있을까?
마크 트웨인의 마부 복장을 한 청년 가이드가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대에는 벽지의 금박 꿀벌 문양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데 그 반사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방문자들은 가이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시선을 움직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현직 배우이기도 하다는 가이드의 연극적인 발성과 공감각적 상상을 일으키는 몸짓 덕분일까. 방이 호흡을 시작하면서 과거 그 시대의 기운을 되찾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두 시간 여행자가 되어 마크 트웨인 하우스 손님방의 19세기식 미감에 흠뻑 빠져있을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벽지와 천장을 유심히 뜯어보면서 의문을 내비쳤다. 꿀벌과 벌집 문양 벽지만도 예사롭지 않은데 천장은 또 거미와 거미그물 문양으로 그득한 것이 기괴하다며, 방을 그렇게 꾸민 까닭이 궁금하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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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오늘은 잘 모르겠어
배를 타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깔려 있었고, 곧 눈이나 비가 내릴 양 대기가 꾸물꾸물했다. 우리는 내면의 노파심이 만류하는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그 배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며, 돌아올 방법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는 만용을 부린 것이다. 그날만은 반드시 시내로 들어가야 했다. 더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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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당신의 과학은 믿을 수 없어
[홍예진 소설가(미 코네티컷 거주)] 브라이언은 트렁크를 활짝 열어둔 채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를 하면서 흘끗 보니 그의 차 안에는 판매하기 좋게 개별 포장된 쿠키와 케이크 등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이미 다녀간 학부모들이 많은가 보았다.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준비해 온 디저트는 행사 때 팔 것들이었고, 판매 수익금은 아이들이 활동하는 교내 클럽의 운영 경비로 쓰이게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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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그늘에 머물러있는 시선
[홍예진 소설가(미 코네티컷 거주)] 두개의 잔이 챙 하고 부딪쳤다. 친구와 나는 각자의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가진 저녁 약속이었고 장소는 새로 생긴 멕시칸 식당이었다. 실내 장식이 참신한 곳인데다가 칵테일도 음식도 맛이 좋아서 우리는 토요일 저녁 레스토랑의 활기를 흠뻑 흡수하며 떠들어댔다. 친구는 인도인들이 흔히 그렇듯 채식주의자이고 나는 잡식주의자인데 우리는 한 번도 서로가 지향하는 바를 강요하거나 날을 세워 상대를 건드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화제는 들쭉날쭉 종횡무진, 지루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인도를, 친구는 한국을 가본 적이 없다. 대신 우리는 상대의 출신국과 관련된 막연한 이미지를 기본에 깔고 많은 것들을 묻고 알아간다. 이를테면 친구는 한국 사람들이 인도 음식을 즐겨먹는지 궁금해 하고, 나는 커리에 곁들여 나오는 따끈따끈한 난(Naan)이 한국인에게 익숙해진지 한참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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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예쁘니까 정답이다!
[홍예진 소설가(미 코네티컷 거주)] 카트를 밀고 가다가 멈춰선 건 레코드 진열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LP를 판다고?’ 그곳은 대학가도, 도시의 상점가도, 벼룩시장도 아니었다. 필요한 물건들이 적힌 리스트를 훑으며 분주하게 생필품을 찾아다니기 마련인 체인스토어 ‘타겟(Target)’이었다. 씨리얼, 세제, 양말 같은 걸 사러가는 곳에 살짝 별난 취향으로 취미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나 어필할 코너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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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너를 위해서라면...끝내 돌아가지 못한 그 곳
[홍예진 소설가] 낸시의 그 해 여름 휴가지는 뉴햄프셔의 아름다운 호숫가였다. 조부모를 중심으로 자손들이 전부 모인 대대적인 가족 행사 차원의 휴가라고 했다. 낸시의 남편은 그 집안의 일곱 형제자매들 중 셋째인데, 휴가에서 돌아와 도서관의 서가 앞에서 우연히 나와 마주친 낸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격이 예민한 시어머니가 하도 피곤하게 굴어서 누구도 즐겁지 않은 휴가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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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을 시작하며...’빅애플’의 만찬
[홍예진 소설가] 오래 전, 뉴욕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추수감사절 만찬 모임이 있었을 때였다. 나는 파이를 구워가기로 했었고, 모임의 규모가 제법 컸으므로 파이를 세 종류나 준비했다. 초콜릿크림파이와 블루베리파이를 만들었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추수감사절 전통 메뉴인 펌킨파이도 구워갔다. 본식이 끝나고 후식이 나갈 차례가 되어 내가 만들어간 것들을 꺼내놓고 살짝 우쭐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