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뒤로 희미해져 가는 것들
[홍예진의 애플파이 8]
오래전 그날, 노먼과 나는 설계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시선을 겨루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핏대가 올랐고, 셜터씨는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노먼은 미시간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공사 책임자였고, 나는 이제 막 첫 집을 장만하려는 도시 출신의 꼬장꼬장한 아시아계 이민자 고객이었다.
젊은 커플이 대개 그렇듯 그때 우리 부부에게는 돈이 별로 없었는데, 주제넘게 까다로웠던 나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해 고전 중이었다. 지방의 작은 마을이라 집값은 싼 편이었지만 막상 집을 보러 다니니 구조와 위치에서 만족도를 주면서 당시의 수입으로 감당할만한 융자를 끌어들여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집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몇 차례 집을 보여주다가 내 심경을 간파하고는 새집을 짓는 옵션도 있다고 운을 떼었는데, 그걸 계기로 일을 벌이게 된 거였다. 대도시의 임대 아파트에 살던 학생 부부 신세를 벗어나자마자 남편의 첫 직장이 있는 미대륙 한복판으로 이주해, 외국인과 접촉해 본 일이 드문 현지인을 고용해 집을 짓게 된 상황이었다. 노먼은 나와 계약한 부동산 개발업자 셜터씨에게 소속된 공사 책임자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노먼은 건축 경험이 그리 많다고는 볼 수 없는 이였고, 생각해보면 나도 노먼도 처세에 노련하지 못한 천둥벌거숭이들이었지 싶다. 그래서였을까. 땅을 사고, 설계도가 나오고, 공사가 진척되는 동안 노먼과 나는 여러 번 부딪쳤는데, 그날 도면을 놓고 대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면을 다루던 나의 전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거실의 측면도를 들여다보던 중 나는 조금 더 넓혀야 하는 공간을 발견했고, 그걸 지적하자 노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실까지 공간이 뻗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두 공간의 일부가 겹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없이 노먼을 응시하다가 펜을 잡았다. 종이 한 장을 놓고 도면의 해당 부분을 스케치한 다음 문제가 되는 공간을 확장해 그렸다. 노먼의 말대로 두 공간의 일부가 겹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한 공간의 모서리를 파내고 나머지 공간의 모서리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렇게 하죠. 공사가 약간 더 까다로워지겠지만 구조상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두 공간을 떨어뜨려 놓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설계가 아니죠. 네모들의 배열일 뿐이지.”
내 말이 틀리진 않았기 때문에 노먼도 딱히 받아치진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일을 주는 셜터씨 앞에서 무안을 당한 게 언짢았는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닳고 닳은 성품은 아니라는 게 엿보여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사소한 문제를 풀어내기보다 둔탁하게 처리하는 태도까지 용납되는 건 아니었다. 이후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셜터씨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노먼이 떨구고 간 불쾌감이 체취처럼 남아있는 자리에서 노회한 사업가가 교통정리를 한 것이었다.
“잘 지적했어요. 저 사람도 배울 때가 됐어. 모든 고객이 설렁설렁하지 않다는 걸. 이 바닥 일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당신 같은 고객도 필요하죠.”
셜터씨는 노먼도 달랬을 것이다. 쉽게 가도 될 일을 굳이 까다롭게 굴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꼭 있다며, 대처법 연습한 셈 치라는 식으로. 누가 알겠는가. 고객과 고용인을 균형감 있게 다루어 일을 진척시키는 게 사업가의 역할이니 말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현장을 체크했다. 공사 과정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 노먼이 미덥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자주 가는 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노먼을 붙잡고, 혹은 전화를 걸어 캐물었다. 어째서 며칠째 공사가 진척되지 않고 페인트 작업이 밀리는 거냐고 묻는다거나, 허리 높이로 설계한 벽체 골조를 천장까지 세워놨던데 인부들이 그것도 모르고 마감재를 붙이려 하고 있더라며 따지기도 했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고 깐깐하게 군 거지만 노먼은 나를 지긋지긋해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이, 점검하지 않았으면 넘어갔을 실수가 속속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게나 중요할 뿐 노먼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 들어가 살 사람은 나였다. 나는 노먼의 둔감함에 번번이 화가 났고, 노먼은 노먼대로 나를 까탈스럽고 질리는 여자로 여기며 짜증스러워했다. 셜터씨의 노련한 중재 덕에 큰 마찰은 피할 수 있었으나 노먼과 나는 각자의 기질 선상 양극단에 있다가 걸어와 만난 사람들이었기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서로에게 고개를 저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건축물은 완공되는 법이라 마지막 점검을 위해 노먼과 내가 나란히 걸으며 집을 돌아보는 날이 왔다. 노먼도 나도 그간의 마찰은 마음 한쪽에 개어두고 공식적인 미소로 얼굴을 포장했다. 완성품 앞에서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는 상식의 합일점은 있었으니까. 피차 활짝 갠 마음은 아니라도 성숙한 체를 하며 합작품을 살펴보는 동안은 미풍 같은 유대감이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건 나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노먼과 내가 더 만날 일은 없었다. 형식적이면서도 적절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 노먼과 나는 그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잡담을 잠시 나누었다. 마지막을 매끄럽게 맺느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생성된 대화였는데, 그때 나는 노먼이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개 한 마리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어 그 개가 암에 걸려서 수술 날짜를 받아 놓은 참이라는 말을 하면서 흔들리는 눈동자도 보게 되었다. 나는 개를 귀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지만, 어쩐지 그 순간, 마음에 박혀있던 얼음 조각 주변으로 물기가 도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인사로 나와 악수를 한 뒤, 노먼은 그의 빨간 픽업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입주는 초겨울이었다. 겨울을 나면서 나는 새집 장만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즈음에 첫아이를 가져서 입덧이 왔는데, 새집 냄새가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끝도 없이 구역질이 나왔다. 그 기간을 버티게 해 준 유일한 낙은 한밤중에 두툼하고 긴 파카를 껴입고 남편과 동네를 산책하며 차갑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거였다.
주택 단지 주변은 온통 숲과 평야였다. 하얀 눈 이불을 덮은 대지 위로 시린 달빛이 쏟아지는 밤을 걷고 있으면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 같았다. 말할 수 없이 쓸쓸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리 부부를 묶는 의식이 되어준 밤이기도 했다. 훗날 돌아보니, 우리 부부 사이의 연대감은 이렇듯 외로움을 나누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기분을 주는 공간에서 연민 같은 것들을 공유한 순간들이 망을 이루며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옥 같던 입덧이 끝나자 봄이 왔고, 여름의 한복판에서 큰아이가 태어났다. 출산 후 어느 날,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돌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냄새를 따라가 봤더니 동네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저 멀리 숲이 시작되는 곳까지, 주렁주렁 열매를 단 포도나무가 줄줄이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열매는 모두 까맣게 무르익어서 농염하고도 노골적인 향을 뿜어냈다. 포도 냄새는 그 농장의 수확이 끝날 때까지 온 동네에 진동했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달콤한 향의 파도가 일곤 했다. 과일 냄새가 넘실대는 주택가라니, 꿈결 같은 체험이었다.
이후 남편이 일터를 옮기는 바람에 속끓이며 지은 노력이 무색하게 그 집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고 이사를 했다. 사실 남편의 첫 직장이 있던 미대륙 한복판으로 들어갈 때 흡족하진 않았다. 도시를 떠나는 게 탐탁지 않았고, 아시아계를 찾기 힘든 지역에서 섬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막상 살아보니 중부 사람들의 낙천성에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적막은 그 시절 내내 그림자처럼 붙어있었다. 나의 성근 영어로 아마 더 쉽게 끓어올랐을 노먼과의 갈등 같은 것들도 이주민의 요철 잦은 일상에 팍팍함을 덧얹었다.
그런데도 그 집과 관련된 기억 창고의 문을 열 때마다 앞서 튀어나오는 건 노먼과 벌인 전쟁, 고통스러웠던 입덧, 잠식되었던 쓸쓸함 같이 지속적이고 긴 호흡의 감정이 아니라 감각의 편린으로 저장된 것들이다. 개가 아프다고 말하는 노먼의 뒤로 보이던 빨간 트럭, 한겨울 밤의 산책에서 내리비추던 달빛, 유모차를 밀고 있을 때 코끝으로 날아든 포도 냄새 같은 것들.
고통이 길어지고 갈등이 극심해지는 시기일수록 필사적으로 건져내야 할 것은 이렇듯 단발적인 것들일지도 모른다. 절망, 비정, 혐오, 대립의 마라톤 속에서도 플래시처럼 지나가는 것들. 이를 놓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과거가 될 현재도 구조될 수 있지 않을까. 명멸한 것이 연민이든 연대감이든 후각이든, 그것은 분노보다 우세한 것이 틀림없다. 코네티컷의 강추위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아 과거를 윤색하는 그 여름의 포도 냄새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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