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계의 잔다르크’ 오트밀크, 판을 뒤집다!

[홍예진의 애플파이] 비건 바람에 치열해지는 대체 유제품 경쟁

시중에 나온 각종 브랜드의 오트밀크. 출처=epicurious.com
시중에 나온 각종 브랜드의 오트밀크. 출처=epicurious.com

대체 유제품계의 ‘핵인싸’

이제는 커피계의 맥도날드가 되어버린 스타벅스일지라도, 그곳에 가면 대번에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 미국의 진보적 식생활 선도자들이 지금 어떤 유제품을 편애 중인지 드러내는 증거물이 매장 벽면 메뉴판과 입식 포스터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처럼 근본적인 카페인을 마시러 들어갔을지라도 막상 이 시즌 한정 음료 사진들의 크리미하고 달달한 미소에 시선을 빼앗기면 주문대 앞에서 잠시 아찔한 혼란이 올 수밖에 없는데, 이 요망한 것들의 사진 하단에는 이런 식의 이름이 붙어있다. 허니 플랫 화이트 어쩌고, 스위트 크림 나이트로 어쩌고, 아이스 브라운 슈가 어쩌고. 정보는 바로 이 길고 복잡한 이름 속에 있다. 신흥 귀족이 되어 커피크리머계에 혁신을 가져온 식물성 유제품이 무엇인지.

2022년 여름, 스타벅스가 시즌 상품으로 밀고 있는 3종의 대표 커피 음료 중 하나에 박혀있는 글자, 오트밀크. 현재 미국의 대체 유제품계 ‘핵인싸’는 바로 오트(귀리)밀크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대여섯 가지의 유제품 또는 대체 유제품이 구비되어있다. 우유, 요거트,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그리고 오트밀크다. 가족 중 우유를 소화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둘째 아이가 유일하고,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나머지 식구들은 발효하거나 가공한 유제품이라야 먹을 수 있다. 와중에 큰 아이는 치즈나 식물성 유제품은 좋아하질 않아서 요거트만 먹고, 큰 아이를 제외한 세 사람은 치즈를 즐기고, 버터는 요리할 때 쓰거나 스프레드용으로 사게 되고, 남편과 나는 오트밀크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아이스크림은 누구나 좋아하니 이렇게 다양한 제품들이 냉장고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트 밀크로 바꾸기 전에는 두유를 마셨다. 서양 문화권에서의 식생활이란 유제품과 짝이 되는 메뉴를 끼워 넣어야 편리한 측면이 있어서 나는 시리얼로 끼니를 때울 때 두유를 사용했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쯤 거슬러 내려간 미국 생활 초기에는 뉴욕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두유 바람이 불고 있었다. ‘SILK’라는 두유 브랜드 제품이 마트의 냉장칸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서 나도 자연스럽게 입맛을 들였다.

대두가 여성호르몬 생성을 증강해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서 안심하고 두유를 즐기기도 했고, 낙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식물성 유제품을 소비하는 내 식습관을 우월한 것으로 느껴지게 했다. 배탈을 유발하는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뿐이지 소고기나 발효 유제품은 다 먹으니 한낱 알량한 우월감인데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두유를 마시면 속이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배를 부글거리게 하고 신물을 올려보내는 통에 전처럼 두유를 즐길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즈음 대체 유제품의 선택 폭은 한결 다양해지는 중이었다. 급증하는 채식주의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시장의 움직임, 대두에 반응하는 내 체질 변화가 하필 같은 시점에 온 것이었다. 나는 출시되는 식물성 유제품 음료를 차례로 시음해봤다. 실망스럽게 그 어떤 것도 우유나 두유가 주는 고소하고 매끄러운 식감을 따라오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두유로 돌아갔는데 속이 편치를 않으니 개봉만 해놓고 찔끔찔끔 마시다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중 오트밀크가 나타났다.

오트밀크의 탄생과 진보성

2014년, 스웨덴의 오트밀크 제조사 ‘Oatly’(오틀리)가 미국 시장에 등장했을 때, 오트밀크는 미국인들에게 생경한 것이었다. 우유는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고, 식물성 유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오트밀크라는 걸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한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오틀리의 제품은 2018년을 기점으로 수요가 치솟으면서 대체 유제품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참신하고 유쾌한 광고를 선보이고, 독립 커피숍의 바리스타들을 공략해 오트밀크에 진보적이고 쿨한 이미지를 입히려던 경영 전략이 먹힌 것이다. 노랗게 물든 귀리밭에서 키보드를 치며 ‘NO COW’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힙스터 경영인의 영상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고, 바리스타들은 오트밀크가 얼마나 훌륭한 대체 크리머가 될 수 있는지 SNS에 설파했다.

오틀리를 배출한 스웨덴은 1인당 우유 소비가 미국보다 많은 나라였다. 문제는 우유 소비가 많은 만큼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의 발견도 비례한다는 건데, 리카르드 오스테라는 식품공학과 교수가 이 점에 착안해 오트밀크를 개발했다. 그때가 1994년이었으니 오트밀크가 미국으로 진출해 대중에 어필하게 되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2018년까지 6백만불에 불과했던 미국 내 오트밀크 매출은 2019년으로 들어서면서 4천만불 가까이로 가파른 상승 그래프를 그렸고, 오틀리는 식물성 유제품계의 스타로 등극했다.

하지만 오틀리는 밀려드는 주문량만큼 제품을 공급하지 못해 난관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 내 위탁 생산 공장이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한 데다가 팬데믹으로 인한 물자 공급망 문제까지 겹쳐 2019년 이후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낙농업계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는데, 과격한 홍보로 정통 우유에 대한 인식에 손상을 입혔다는 이유였다. 북유럽에서 날아와 고공행진하던 회사가 주춤하는 걸 경쟁사들이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유제품 업계의 터주대감 격인 Hood에서 ‘플래닛오트’를 출시하고, 그릭요거트 제조사 중 가장 규모가 큰 Chobani는 ‘초바니오트’를 내놓고 공격적으로 공급망을 늘려 업계를 비집고 들어왔다. 2022년 현재 오트밀크 시장의 매출 1위는 플래닛오트, 2위는 오틀리, 3위는 초바니오트다. 오트밀크의 수요는 점점 늘고 있으며 요즘 마트에 가면, 오트밀크로 만든 커피크리머, 요거트, 아이스크림까지 만날 수 있다.

오트밀크로 만든 아이스크림. 사진=홍예진
오트밀크로 만든 아이스크림. 사진=홍예진

건강과 환경을 함께 고려한다면

현재 미국의 소매점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유제품은 우유, 두유, 아몬드밀크, 오트밀크 등 4종이다. 선택 폭이 다양해진 만큼 이 중 어떤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몸에 좋고, 또는 어떤 것이 ‘그나마’ 환경에 덜 해로운지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우유를 보자. 단백질 함량이 가장 높으며 자체적으로 칼슘과 비타민D를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물성 유제품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우유 한 컵을 만들어내기까지 소의 여물로 쓰이는 콩과 귀리의 양은 그것들로 유제품 한 컵을 만들어낼 때의 양보다 훨씬 많다. 소의 방귀와 트림이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 문제는 심각하고, 소 한 마리가 자라는 동안 먹는 여물을 경작할 때 소진되는 물의 양도 엄청나다.

두유는 우유 못지않은 단백질 함유량을 자랑하며 칼륨도 듬뿍 들어있다. 다만 여성호르몬 생성을 돕는다는 아이소플라빈 함량은 흔히들 아는 바와 달리 극소량이기 때문에 두유 섭취로 인한 여성호르몬 생성 효과는 미비한 수준이라고 한다. 환경 측면에서 보자면, 무시 못할 면적의 산림 파괴를 일으키는 대두 농장 문제가 있다.

아몬드밀크는 액체 특성이 묽고 단백질 함량이 높지 않다. 여타 대체 유제품에 비해 식물성 유제품 특유의 독자적인 영양소도 별로 없다. 장점이 있다면 적은 경작지로도 재배할 수 있다는 건데, 대신 아몬드 나무가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하는 터라 수분이 부족한 상황에는 말라죽기가 쉽다. 꿀벌 딜레마도 있다. 아몬드는 꿀벌의 역할이 긴요한 작물이지만 아몬드 농장에서 사용하는 농약 때문에 꿀벌이 말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양봉업에 해를 끼치기 일쑤다. 꿀벌 개체수의 감소가 농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해보면 아몬드밀크 역시 환경 파괴 문제에 고리가 걸려있다.

오트밀크는 단백질 함량이 아주 적은데 대신 베타-글루캔이라는 섬유가 풍부하다. 우유나 견과류와는 달리 귀리가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안전성 면에서만큼은 점수가 높다. 경작지 소요가 크지 않으며, 물이 많이 사용되는 작물도 아니니 재배가 수월한 편이다. 바리스타들이 꼽은 것처럼, 우유제품과 유사한 커피크리머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오트밀크가 시장에서 뜨는 데 큰 몫을 했다.

동식물성을 망라한 네 가지 유제품과 관련한 정보를 정리해 보니, 만일 내게 아무런 제약 조건이 없었다면 어떤 유제품을 선택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유는 단백질과 칼슘 함유량 면에서 압도적 승자이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오래 길들여왔다. 여전히 우유가 유제품 시장의 일등 자리에 있기는 해도 식물성 유제품 시장은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나는 소화 기능 문제로 오트밀크에 종착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또 각자의 이유로 우유를, 두유를, 아몬드밀크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체질이나 영양소보다는 채식주의나 환경주의에 가치를 두고 선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채식주의야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쳐도 환경은 공동의 이슈다. 환경을 지키려는 마음과 동물성 식재료를 줄여보려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어도 내가 오트밀크를 선택한 건 공익 차원의 발로가 아니었다. 개인의 식습관 변화는 이렇듯 의도치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픈 사람들, 독립 커피숍의 바리스타들, 그리고 채식주의 물결. 귀리밭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들의 언저리에서 맴돌다 돌풍으로 일어날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4대 유제품의 특징을 비교 분석한 Ted의 교육 영상 자료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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