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술 시장의 수퍼스타들

[홍예진의 애플파이] 별을 따낸 화가들의 작품 가격

안나 웨이언트 'Summertime'. 출처=mutualart.com
안나 웨이언트 'Summertime'. 출처=mutualart.com

노란 줄무늬의 파라솔이 불규칙적으로 늘어선 해변 그림 앞에서 나는 마우스를 클릭해 넘기기를 멈췄다. 새라의 그림은 모두 좋았지만 특히 그 바닷가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그대로 발랄한 햇빛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 듯했다. 그때가 겨울이 지긋지긋해지는 2월이라서 유독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붓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근방의 화실을 알아보다가 지역 미술가인 새라를 찾아내게 된 경위였다.

언젠가부터 난 평온한 분위기에서 작업에 집중하던 예술학교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새라가 지도하는 화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향수를 해소하게 되었다. 요즘 내가 그리는 건 직접 찍은 사진을 재현하는 회화인데, 대학에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는 상업미술 분야의 스킬을 익히는데 공력을 쏟은 터라 오랜만에 되살리는 회화의 묘미에 다시 빠져들고 있다.

묘사를 통해 빚어나가는 구상화와 우연과 감각의 하모니로 빚어지는 추상화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은 직관적이고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구상화에 더 눈이 가는 것 같다. 목표 의식으로 초조하게 작업하던 청춘 때는 갖지 못했던 취향과 여유인 것 같다. 20대란 본디 자기 자리를 맡으려고 분투하면서 우왕좌왕하기 마련이고, 더욱이 예술계는 안정 궤도로 들어서는 문턱이 다른 분야보다 더 멀고 희미해서 허공에서 페달을 밟는 기분이 들기가 쉽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게 예술가의 숙명인데, 스포트라이트는 말 그대로 일부의 ‘스폿’에만 비출 뿐이니 말이다.

왜 주목받았을까?

그렇게 귀한 스포트라이트가 올해의 미술계에서는 드물게도 일부 젊은 여성 화가들에게로 쏠렸단다. 미술평론가 킴 헤어스톤은 미술품 경매 업체인 Phillips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부터 20대와 30대 여성 화가들의 작품가가 치솟고 있어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며 그 사례에 해당하는 몇몇 화가 이름을 언급했다. 올해의 스타로 등극한 플로라 유크노빅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유크노빅의 2017년작인 ‘Moi aussi je déborde’는 올여름 런던에서 열린 필립스의 경매장에서 예상견적가의 7배에 달하는 210만 달러에 팔려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플로라 유크노빅 'Moi aussi je déborde'. 출처=Philips.com
플로라 유크노빅 ‘Moi aussi je déborde’. 출처=Philips.com

유크노빅은 로코코 양식의 고전 명화를 과감한 붓질로 재해석한 화풍을 구축한 작가다. 우스갯소리로,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작품이 팔려나간다는 성취를 30대 초반에 이루었으니 가히 신화적 성공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성공한 작가라도 작품가를 100만 달러 이상으로 올리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라니 말이다. 미술품 투자 열풍 속에서 뜨는 궤도에 올라타면 나노 단위의 시간 격차로 작품가가 뛰어오르는 시대라니, 이 시대의 수혜를 입은 화가들은 벼락스타 연예인 못지않게 부와 명성을 누리는 것이다.

유크노빅이 런던의 신화라면 뉴욕의 신화로는 안나 웨이언트가 있다. 보티첼리나 앵그르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 화풍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동시대의 주제 의식을 접목하는 웨이언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눈부신 미모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이미 스타성을 갖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리고 또 흥미롭게도, 이 아름다운 20대 여성 화가가 거물급 미술계 딜러인 70대 남성 래리 가고시언과 연인 관계가 되어 본격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올해 크리스티 경매에 데뷔한 웨이언트의 인물화 ‘Summertime’은 예상견적가의 다섯 배인 150만 달러에 거래됐다. 2년 전 한 컬렉터에게 1만2천 달러에 팔렸던 그림이 불과 2년 만에 125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3년 전인 2019년, 웨이언트는 뉴욕의 햄튼 바닷가에서 400 달러에 그림을 팔던 작가였다. 1년 후인 2020년, 웨이언트는 한 작품을 1만2천 달러에 팔 수 있게 되었고, 다음 해인 2021년에는 웨이언트의 다른 작품들도 5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대로 거래가 되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안나 웨이언트가 래리 가고시언과 연인 관계가 되어 타블로이드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인데, 그로부터 1년 후인 올해, 웨이언트의 ‘Summertime’이 크리스티 경매에 다시 나와 150만 달러에 팔린 것이다. 휴양지에서 400 달러에 그림을 팔았던 웨이언트로 하여금 1년 후 1만2천 달러를 벌게 해줬던 바로 그 그림이다.

플로라 유크노빅도 안나 웨이언트도 대부분의 예술가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순식간에 뛰어오른 초특급 럭키 스타다. 현존하는 아티스트들이 가장 진출하고 싶어 한다는 가고시안 갤러리의 대표 래리 가고시안을 연인으로 둔 안나 웨이언트의 경우는, 재능을 평가하기에 앞서 연인으로 인한 유명세 덕을 입은 바 없다고 보긴 어려워서 여타 작가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있다니 미술품의 가치와 가격에 관한 이모저모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성공 포인트는 시그니처 화풍?

젊은 시절 나는 창작자 내지는 창작자를 지향하는 이들로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 있었다. 응용미술 쪽이었지만 순수 미술 분야의 친구들도 많았었는데, 그 친구들이 하던 고민의 귀착점은 늘 자신만의 시그니처 화풍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작가의 정체성이 될 주제나 화풍을 포착하고, 그것이 그 세계에서 눈길을 끌고 운까지 따라 상업화에 성공하면 유명세와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니 고민의 시작과 끝이 상업화 코드를 찾는 것이라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유크노빅이나 웨이언트처럼 초고속 스타가 되는 것이야 기적에 가까운 판타지지만, 한 작가의 화풍이 컬렉터나 대중의 눈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는 지점까지 다다르는 것도 쉽지 않다. 반면, 시그니처 주제나 화풍을 굳힌 작가가 상업적 성공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벽과 만나게도 되는데, 누구나 알아보는 스타일만 반복해서 그리는 자기 복제에 빠져들기가 쉽다. 쉽게 말해, 시그니처를 그려야만 잘 팔리니까 작가 스스로가 다른 걸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 없는 굴레에 갇히는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진보할 때 유의미해지는 창작자의 자아에 반하는 행보이고, 상업적 성공이 주는 경제적 안정에 예술가의 영혼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있는 형국으로 굳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분야에서 얻은 유명세로 단기간에 미술계의 스타로 등극하는 이들의 사례는 어떠한가. 이들의 손쉬운 성공이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작가들의 사기를 꺾어놓는 일도 씁쓸한 광경이다. 이는 모두 미술품이 유명세를 기반으로 한 투자 상품이 될 때 빚어지는 부조리로, 결과적으로 미술 시장을 얄팍한 게임판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미술품을 투자 대상의 개념으로만 접근할 때 결국 그 각개는 미술품 시장을 게임판으로 만드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어릴 때의 취미 중 하나는 방에 틀어박혀 화집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고대미술과 근대미술을 아울러, 한 화가의 화풍 전체가 흐름으로 익혀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작품 하나가 유독 강렬하게 각인될 때가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인상적인 작품 하나가 같은 화가의 다른 작품들까지 하나의 정서로 이어주어 애정의 면적을 넓히도록 유발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그랬다.

에드워드 호퍼 'New York Movie'. 출처=whitney.org
에드워드 호퍼 ‘New York Movie’. 출처=whitney.org

지난 10월 19일,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은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이라는 테마로 미국의 근대 사실주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기획전을 열었다. 다분히 미국적이자, 실제로도 미국 근대미술의 상징적 대표 화가 중 하나이기도 한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초중반 급변하는 온갖 예술 사조가 미술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사실주의를 구현해냈다. 에드워드 호퍼가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표현했던 빛을 다루는 방식과 고요한 서사는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울림을 준다.

문득 상상해본다. 언젠가 어떤 시점에, 푸릇한 신인 화가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깔린 특유의 음영 대비와 나직한 외로움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 차용한 화풍을 들고나와 화랑가를 들썩이게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고. 호퍼의 세심한 붓질과 차분한 풍경에 과감하거나 변칙적인 붓질이 덧대어져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하는 경매장의 스타로 출현해 미술계를 뒤집어 놓는다면 말이다. 원작품에 담긴 심혈이 오마주로 코드화될 때, 원작 뒤에 서 있는 정령은 기뻐할까 난처할까. 백번을 질문해봐도 답을 얻을 순 없다.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까.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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